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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개혁 논란을 보면서
의료개혁 논란을 보면서
  • 정근식
  • 승인 2024.03.26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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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식 칼럼] 정부가 의과대학 증원의 구체적인 대학별 배정을 발표한 이후에도 갈등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의료개혁과 의대 증원 사이의 간극이 크고 대학별 증원 배분의 과정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의료를 이끌어온 주요 대학과 의료계는 자신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단행된 정부의 증원규모 결정과 진정한 소통 부재의 대학별 증원 배분에 대하여 허탈한 심정을 고백했다. 의료개혁에 동의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지방 의대 중심의 증원을 환영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와는 달리, 의대 교수들이나 의료계는 정부가 국가 백년지대계를 졸속으로 그리고 과도하게 총선을 의식하여 정치적으로 결정했다고 인식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과연 의료 전문직의 자존심을 도외시하고 핵심적인 연구대학들을 배제한 채 의료개혁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가, 2,000명을 일시에 증원하고 그것도 바로 내년부터 실행할 수 있는 인적 물적 역량이 정부와 지방 의과대학들에 있는가의 여부이다.

파격적 증원, 환영 한편엔 인프라와 부작용 우려도

의료개혁을 의대 증원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다. 2020년 당시 문재인정부는 매년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을 증원하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의료계의 거부로 무산되었다.

윤석열정부가 의대 증원을 압박하자 지난 1월 전국 의과대학 학장들은 입학정원 증원 ‘적정’ 규모는 350명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2,000명 증원을 결정하였다. 너무 파격적이고 급진적이었다. 의료계는 현 입학정원의 65%에 해당하는 인원을 한번에 증원하는 것은 감당할 수 없다고 반응했다.

정부는 미래의 의료수요를 예측하여 증원규모를 결정하였고, 필수의료와 공공의료, 그리고 지방의료의 위기라는 3중적 과제를 해소하기 위하여 지방의 7개 거점국립대학의 정원을 200명으로 정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지방 거점국립대학을 내세운 것은 의미있는 것이지만, 배정원칙이 너무 일률적이고 기계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오랫동안의 논의로 합의가 어느 정도 형성된 공공의대 설립 방안은 가능성이 희미해지고 있고, 의대가 없는 지역의 문제를 총리가 언급했지만, 립서비스로 끝날 수도 있다.

이번 결정을 보면, 현 정원의 두 배 이상 증원된 사례가 17개 대학에 달한다. 현재에도 각 대학들이 질적으로 우수한 교수들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기간에 교수요원 1,000명을 확보할 수 있는가? 부족한 인프라를 1~2년 사이에 메꿀 수 있는가? 교육 인프라 개선이 선행되지 않은 무리한 의대 정원 확대는 의대별 양극화 심화는 물론 부실 의대·의사를 양성할 것이란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은 정치적 합의와 국민적 지지여부에 달려 있고, 최종적인 열쇠는 정부의 비용부담 의지와 능력일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이번 결정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넘어 사회 전체에 파장을 몰고 오고 있다. 젊은이들의 의대 입학의 꿈이 커질수록 우리의 교육생태계는 교란을 넘어 파괴될 가능성이 커진다. 이미 이과계열 엘리트의 대부분을 의대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도한 의대 증원은 21세기 한국의 과학계를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증원된 2,000명은 서울대 자연계열 입학생 수(1,844명)나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개 과학기술원의 신입생 규모(1,700여 명)보다 큰 것이다.

전문직 권력,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로 삼아야

이번에 발표된 의대증원 방안은 순항할 수 있는가? 많은 국민들이 비록 의료개혁이라는 추상적인 목표에 동의하더라도 그 구체적인 수단과 방법, 절차가 적절하지 않다고 간주하게 되면, 계획을 실행하기 어렵게 된다. 또한 그것이 총선을 앞두고 이루어진 포퓰리즘적 결정이라고 인식할수록 그 결정의 정당성이 사라진다.

의대 증원에 대한 일부의 환영은 지방 발전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한 것이지만, 그것은 필요한 비용을 정부가 지원할 것이라는 기대를 전제로 이루어진 것이다. 만약 충분한 예산 지원 없이 확대된 정원을 감당하라고 한다면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혼란을 야기한 책임 논란만 커지게 된다.

우리는 지난 정부의 검찰개혁 파동에서 최고의 전문직 권력과 연관된 개혁은 이들을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나 동반자로 함께 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웠다. 이 교훈의 수혜자인 윤석열 정부가 이 엄중한 교훈을 벌써 잊어버렸다는 사실은 아이러니이다.

대학별 증원 배정이 발표되자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한탄이 쏟아졌다. 그러나 과연 그 다리가 전공의와 의대 학생들이 건너가야 할 다리인가, 대통령과 정부 책임자가 건너가야 할 다리인가. 이미 운명의 주사위는 굴러가기 시작한 듯 하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글쓴이 / 정 근 식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 서울대 전 통일평화연구원장
-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

- 저서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국제연대〉(공저, 한울, 2018)
〈평화를 위한 끝없는 도전〉(공저, 북로그컴퍼니, 2018)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진인진, 2018)
〈냉전의 섬 금문도의 재탄생〉(공저, 진인진, 2016)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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