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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느니만 못한 삶, ‘치매의 늪’에서 허덕이는 사람들
죽느니만 못한 삶, ‘치매의 늪’에서 허덕이는 사람들
  • 나병문
  • 승인 2024.03.2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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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문 칼럼] “나는 이제 인생의 황혼으로 가는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1994년 초겨울의 어느 날, 레이건 前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치매에 걸린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대통령 재임 시절 암살범에게 권총 저격을 당한 적이 있었고, 대장암과 전립선암을 앓은 경험도 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말년에 치매의 공격 앞에 허망하게 무릎 꿇는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이들이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한때 영화배우였던 그는 잘생기고 유머 넘치는 신사로 대중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치매의 일종인 알츠하이머병이 깊어지면서 그는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말도 통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거동도 불편해서 집 안에서 미끄러져 골반 수술을 받기까지 했다. 급기야 부인인 낸시 여사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되면서 바깥출입은 고사하고 외부 인사의 방문을 받을 수조차 없게 되었다. 위대한 정치가도 무력하기 짝이 없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 바로 치매다.

치매에 걸린 유명인 이야기는 나라 안에도 드물지 않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이들이 치매의 늪에 빠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그들의 눈부셨던 전성기를 떠올리며 새삼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떠올리곤 한다. 사람과 동물을 구분하는 전형적인 기준이 정신(精神)일진대, 그 정신이 무너짐으로써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더 이상 지킬 수 없게 된다면 그보다 끔찍한 상황이 또 있을까.

문제의 심각성은 그토록 무서운 질환이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는 데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치매 환자가 약 92만 명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2024년 말에 그 숫자는 1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그것만 보더라도, 이제 치매는 운이 나쁘면 만날 수도 있는 드문 병이 아니라, 언제라도 우리를 덮칠 수 있는 흔한 질병이 되어버린 것이다.

치매(癡呆), ‘인간 존엄성’ 짓밟는 치명적 병마

치매란 뇌세포의 손상으로 인지 기능이 소실되는 증세를 말한다. 그로 인해 기억력이 현저히 저하되고, 정서나 성격이 변하거나 행동장애가 발생하는 등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대인관계도 불가능해진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시절엔 ‘노망’이나 ‘망령’이라고 불리며, 나이 들면 으레 겪어야 하는 노환쯤으로 여겨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치매는 단순한 인지 기능의 감퇴 현상이 아니라 매우 특이한 질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치매를 도로 아기가 되는 병이라고도 칭하는 이유는 환자의 사회적 능력을 하나씩 소멸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치매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노화유전연구소>는 치매에 걸릴 위험 요인으로 나이, 가족력, 두뇌 손상 등을 들었다. 치매의 유형도 다양한데,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치매 1, 2위는 ‘알코올성 치매’와 뇌졸중의 원인인 ‘혈관성 치매’였다. 하지만 현재는 노화에 따른 ‘알츠하이머성 치매’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치매도 조기에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치매로 의심되는 증상에 대해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치매는 가장 흔하게 기억력 장애를 보인다. 깜빡 잊은 내용을 주위에서 상기시켜줬을 때 금방 기억해내는 건망증과는 달리, 조금 전에 한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 기억력 장애 말고도 감정조절 불가, 성격 변화, 길눈 둔화 등의 인지 기능 손상이 전형적인 초기 증세다.

고려대안암병원 뇌신경센터 박건우 교수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 중에서 정상적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확 달라졌다면 치매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평소 불같았던 성격이 온순해진다거나 반대로 자상하고 온건했던 사람이 조그마한 일에도 화를 잘 내거나 이기적으로 변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럴 땐 방치하지 말고 병원을 찾아서 전문의의 정확한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국가는 ‘치매와의 전쟁’ 선포하고 총력 대처해야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치매는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무서운 병마(病魔)다. 평소에 잊고 있던 삶의 의미를 새삼 묻게 만드는 ‘정신적 죽음에 이르는 병’인 것이다. 누구라도 치매의 늪에 빠지면 거의 모든 걸 잃게 된다.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지키는 건 고사하고 먹고 입는 것 같은 초보적인 행위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한 가족과 보호자의 정신적, 물질적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 어떤 병보다 비참한 질병이라 할 것이다.

아주대병원 문소영 교수는 “치매에 걸리더라도 이것이 밖으로 덜 발현케 하려면 개인의 인지 기능 보존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치매의 증상은 개인차가 크므로 전문가의 판단에 따라 맞춤형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한다. 그와 관련해서 한양대구리병원 최호진 교수는 “중증 환자의 단기 집중 치료를 위한 시스템의 확립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치매안심병원’과 지역 사회의 인지 중재 치료 시스템을 연결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피력했다.

치매 환자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제는 이 질병이 매우 흔하면서도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아가 그것의 퇴치를 위한 다양하고 실효적인 대책 수립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 먼저, 현재 시행 중인 ‘치매환자 돌봄지원사업’을 대폭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 치매 환자에 대한 인지 교육, 안전 및 생활용품 제공은 물론, 주거환경개선 같은 개인별 맞춤 돌봄 서비스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 정도에서 그치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정부는 ‘치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관련 업무를 수행할 인력과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전폭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 정쟁을 일삼는 그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이 문제만큼은 한목소리를 내주었으면 한다. 살아 있는 동안 맑은 정신을 유지하고 싶은 국민의 간절한 심정을 국가가 외면하면 되겠는가.

필자 소개

나병문(rabmna1958@naver.com)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 연구위원

-SN경영연구원장

-경영학박사, 전 우리은행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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