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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약육강식'...‘갑질’하는 나라, 선진국 될 수 있을까
여전한 '약육강식'...‘갑질’하는 나라, 선진국 될 수 있을까
  • 권의종
  • 승인 2024.03.1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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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갑질 횡포...갑질 관행을 청산치 않고는 진정한 선진국 될 수 없어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공직 인사에 희망이 보인다. 정부가 고위공무원 승진심사 때 소통과 협업 역량을 갖췄는지를 평가한다. 부처 이익만 추구하고 기관 내·외부 고객을 상대로 '갑질'하는 공직자는 국·과장이 될 수 없도록 걸러낸다. 국·과장 역량평가 때 평소 생각이나 행동이 부처 이기주의와 우월적 사고를 하고 행동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본다는 방침이다

언제부턴가 공권력이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해져 있다. 법 집행과 행정 서비스가 공정치 못하다는 불만과 비난이 잇따른다. 공권력의 위압과 공무원의 갑질로 상처받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민생 안정, 행정 편의, 주민 중심 등은 관청 외벽에 내걸린 현수막 슬로건 불과하다. 

산하기관을 대하는 공직자 태도가 유독 오만하고 권위적이다. 인사권과 예산권, 업무감독과 경영평가를 무기로 독단과 전횡을 일삼는다. 시시콜콜 따지며 불퉁불퉁 대한다. 공기업에서 자율성은 씨가 말랐다. 고위직은 으레 정부나 정치권 인사들 차지. 기관장 자리는 내부 출신에겐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렵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는 공무원이 누리고, 멸시 천대 십자가는 산하기관이 져야 한다. 순종을 미덕으로 인고를 숙명처럼 여겨야 하는 서글픈 처지다. 

‘을’인 산하기관이 업무적으로 간섭과 감독을 받는 거야 어쩔 수 없다. 비하와 하대는 견디기 어렵다.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어느 얼빠진 공무원의 망언이 두고두고 회자된다. 하는 짓거리가 치졸하기 짝이 없다. 산하기관 직원에게 출퇴근 때 운전을 시키고 자녀 숙제를 하도록 하는가 하면, 명절 때 가족과 먹을 한우 고깃값을 파견 나온 공기업 직원에 부담시켰다가 감사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극히 일부의 사례일 것이나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존귀 영광' 공무원, '멸시 천대' 공기업

지방의회의 갑질은 공무원은 저리 가라다. 2023년도 지방의회 종합청렴도 평가 결과가 뜻밖이다. 이 조사에서, 지방 공직자 16%는 지방 의원이 권한을 넘어서는 부당한 업무 처리를 요구하거나 갑질을 하는 것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계약 업체 선정에 부당하게 관여(9%)하거나 특혜를 위해 부당하게 개입(8%)하는 때도 경험했다고 대답했다. 

갑질은 공직자 전유물이 아니다. 공무원에 대한 민원인의 갑질 또한 못지않다. 부처마다 민원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시달리는 공무원이 부지기수다. 극한 갑질에 극단 선택을 하는 사례가 꼬리를 문다. 민원 유형도 가지가지. 전국시군구공무원노동조합연맹이 지난해 공무원 1,873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 조사가 방증하는 바다. 10명 중 9명은 최근 6개월간 혼잣말 욕설 등 폭언(88.9%)을 경험했다고 했다. 반복 전화(85.8%), 장시간 전화(85.4%), 인격 모독(80.8%)도 공무원이 자주 겪는 악성 민원 사례로 꼽았다.

공무원은 민원인에게 괴롭힘을 당해도 속수무책이다. 참고 넘어가는 경우가 거의 전부다. 인사혁신처가 지난해 2월 공무원 1만98명을 대상으로 한 ‘공무원 감정 노동에 대한 실태 조사’만 봐도 심각성이 감지된다. 공무원 61.1%는 악성 민원에도 ‘아무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런데도 책임은 오롯이 공무원 개인 몫. 부처는 여론을 의식해서인지 공무원 보호보다 처벌과 징계에 치중한다. 

갑질은 힘을 가진 권력 집단에서부터 시작됐다. 관련 설문을 보면, 정치권(94%), 대기업(93%), 사법부(90%), 언론(85%)이 최대 갑질 집단으로 꼽힌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이익단체(81%), 정부·공무원(75%), 노동조합(74%)도 따가운 눈총을 피해가지 못한다. 중소기업(63%)과 소비자(57%)도 강도는 약하나 갑질 집단으로 지목을 받고 있다. 

갑질은 지독한 고질병, 무서운 망국병

갑질 횡포가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다. 본사-대리점(93%), 고용주-직원(93%), 고용주-인턴·견습생(87%) 등 기업·고용자 관련 갑질이 성행한다. 감정노동자와 소비자 관계(85%), 비정규직과 정규직 관계(84%), 임대-임차 관계(75%), 직장 상사-후배직원 사이(74%) 등 생활형 갑질도 난무한다. 

한국리서치가 2018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벌인 웹 조사 결과만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의 갑질 문화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50%가 “매우 심각하다”고 했고, 46%가 “대체로 심각하다”고 답했다. 갑질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지 물어본 설문 내용도 놀랍다. “매우 자주 당하고 있다”는 응답은 6%, “가끔 당하고 있다”는 응답이 46%, “한두 번 당해본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38%였다. “전혀 경험한 바 없다”는 응답은 10%에 그쳤다. 

갑질이 줄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호소할 데가 마땅찮다는 점이다. 갑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언론과 인터넷이 들끓고 정부나 사법부가 엄단 의지를 밝히나 그때뿐이다. 이내 흐지부지되고 만다. 피해자도 해당 기관의 담당 부서에 도움을 청하거나 사법 조치 등 공적 제도를 활용하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여긴다. 피해자를 규합한 집단행동이나 SNS-언론 폭로 등의 제도 밖 수단에 더 의존하려 한다. 

갑질은 약육강식 원리가 지배하는 동물의 세계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인간 사회, 특히 민주 국가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악행이다. 갑질 관행을 청산치 않고는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런 예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갑질은 지독한 고질병, 무서운 망국병이다. 어서 뿌리를 뽑아야 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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