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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救災)에 정성을 들이지 않아서야
구재(救災)에 정성을 들이지 않아서야
  • 박석무
  • 승인 2024.02.05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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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이태원 참사에 대한 특검법이 거부당해 다시 국회로 되돌아간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나는 오늘 또 『목민심서』를 꺼내 읽어봅니다. 200년 전에 재난을 당한 억울한 사람들에게 국가는 어떤 일을 해야 하고 그 사건의 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아보고 싶어서였습니다.

『목민심서』 「애민(愛民)」 편에는 사회적 약자로 여섯 종류의 사람들을 열거하고 그 여섯 부류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국가나 사회, 담당 공무원들이 어떻게 하는 일이 옳은 것인가를 제대로 밝혔습니다. 「애민」 편이야말로 200년 전에 다산이 복지사회와 복지국가의 꿈을 정확하게 설계해 놓은 내용임에 분명합니다.

노인, 유아, 궁한 사람, 환자와 장애인, 상을 당한 사람, 재난을 당한 사람 등 어느 누구 하나 사회적 약자가 아닌 사람들이 없습니다. 국가는 바로 이들을 사랑해서 제대로 보살펴주고 편안하게 살도록 하는 일이 가장 큰 일임을 알게 해주고 있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당한 가정의 유족들은 바로 상을 당한 사람들이니 ‘애상(哀傷)’ 조항에 해당하고 또 재난을 당했으니 ‘구재(救災)’ 조항에도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불쌍한 일은 바로 가족이 죽은 슬픔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돌봐주고 보살펴주는 일도 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혹시 비참한 일이 눈에 띄어 측은한 마음을 견딜 수 없거든 마땅히 즉시 구휼을 베풀고 다시 주저하지 말 것이다”라고 말하여 비참한 죽음에 측은한 마음조차 지니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재난에는 종류가 많습니다. 수재·화재·지진·화산폭발 등 온갖 자연재해도 많지만, 인간의 잘못으로 일어나는 인재(人災) 또한 적지 않습니다. 이태원 참사야말로 전형적인 인재임은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일입니다. 그런 재난에 국가가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으로 비통한 일입니다. 국가로부터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한 유족들이 혹한 속에서 자신들의 주장을 들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이 나라는 국가가 있는 것인가를 다시 한번 물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릇 재해와 액운이 있으면 불탄 것을 구하고 빠진 것을 건지기를 스스로 불타고 빠진 것 같이 할 것이요 조금도 늦추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비록 남의 자식들이 죽었지만 자신의 자식들이 죽은 것처럼 지체없이 손을 넣어 조금이라고 슬픔을 가시게 할 일을 했어야 합니다.

사건이 발생한 때가 언제인데, 지금이라도 재난의 원인을 밝히고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자는 특검법까지 거부해버렸으니, 도대체 유족들의 마음을 어떻게 해야 달랠 수 있을까요. “환난(患難)이 있을 것을 생각해서 예방하는 것이 또한 이미 재앙을 당하고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나은 것이다(思患而預防 又愈於旣災而施恩).”라는 다산의 말씀으로 보더라도 원인을 규명하여, 앞으로의 재난 예방책이라도 제대로 세워야 하는 것 아닌가요.

애초부터 예방책도 없었는데, 재난에 돈으로 은혜나 베풀겠다니 앞뒤가 맞지 않은 일입니다. 은혜 베푸는 일만 중요하게 여긴다면 다산의 구재와는 분명히 맞지 않는 일입니다. 거부권 행사에 야당들은 ‘비정’의 처사라고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울부짖고 호소하는 유족들의 비통한 모습들을 보지도 않고 있는가요. 제발 상을 당한 집안을 보살펴주고 재난을 당한 사람들을 구제해주어야 합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박 석 무

(사)다산연구소 명예 이사장
·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 다산학자
· 고산서원 원장

· 저서
『다산의 마음을 찾아―다산학을 말하다①』, 현암사
『다산의 생각을 따라―다산학을 말하다②』, 현암사
『다산에게 배운다』, 창비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목민심서, 다산에게 시대를 묻다』 , 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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