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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부터 꼬여버린 새만금 32년 잔혹사, ‘희망고문’ 멈출 때 
명칭부터 꼬여버린 새만금 32년 잔혹사, ‘희망고문’ 멈출 때 
  • 권의종
  • 승인 2023.09.0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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잼버리는 실패로 끝났으나 이를 계기로 새만금의 허상 버리고 실상 찾아야...“더디 가도 바로 가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노령에 피는 햇살 강산은 열려, 금만경 넓은 벌에 굽이는 물결, 복 되라 기름진 땅 정든 내 고장, 억만년 살아나갈 정든 내 고장” 1962년 10월에 만들어진 ‘전북도민의 노래’ 첫 소절이다. 작곡가 김동진의 친일 인명사전 등재와 작사자 김해강의 친일 행적 논란으로 2019년 사용 폐기된 노래의 가사를 지금 와서 뜬금없이 소환하는 것은 ‘새만금’이라는 명칭 때문이다. 

노랫말 첫 마디에 등장하는 금만평야(金萬平野). 동진강 하류의 김제평야와 만경강 하류의 만경평야가 합쳐진 지명이다. 금만평야 서쪽에 지어진 새만금은 김제~만경에 이르는 금만평야보다 훨씬 크고 넓은 새 땅이 생긴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그렇다면 공식명칭이 ‘새금만’이 돼야 하나 ‘새만금’으로 앞뒤가 바뀌었다. 행정구역상으로도 김제시에 만경읍이 속해 있다. 

명칭부터 꼬여버린 새만금 32년의 개발사는 질곡의 잔혹사다. 애초부터 정치적 산물로 출발했고, 이후로도 8개 정권의 희생양이 돼왔다. 시련의 시작은 노태우 정부 때다.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호남 달래기' 일환으로 전북 표심을 얻기 위해 선거 엿새 앞두고 새만금개발 공약이 발표됐다. 청와대에 입성한 노태우 정부는 태도가 돌변했다. 쌀이 남아돌자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개발을 미뤘다. 

새만금개발사업은 1991년 7월 당시 김대중 신민주연합당 총재의 건의로 논의가 제기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같은 해 11월 28일 새만금개발의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이 열렸다. 순항은 잠시. 사업 6년 차인 1996년 돌연 복병을 만났다.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경기 지역의 시화호가 ‘죽음의 호수’로 변하자 환경 단체가 새만금개발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비전·전략 없는 새만금, 용도 불분명 상태에서 뚝 막고 길 내고 땅 메워

지루한 법정 다툼은 2001년부터 2006년까지 이어졌다. 결국,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새만금개발은 합법적 추진의 길이 열렸다. 소송은 6년 정도 걸렸으나 새만금개발은 10년가량 지체됐다. 2006년 4월 물막이 공사가 끝났고, 2007년 노무현 정부는 새만금 땅의 용도를 농업 100%에서 농업 70%, 산업 30%로 변경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새만금개발사업이 속도를 내는 듯했다. 새만금을 '동북아 경제 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 발표됐다. 70%로 정했던 농업용지 비율이 30%로 낮추고 산업용지 비율을 늘렸다. 개발 의지는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2009년 초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새만금개발은 뒷전으로 밀렸다. 2010년 새만금 방조제 전 구간이 완공됐다. 2011년 새만금 종합개발계획이 확정됐고, 2012년 새만금특별법이 제정됐다. 

박근혜 정부 들어 새만금개발사업은 다시 속도를 냈다. 문재인 정부는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했다. 윤석열 정부 취임 후 1년여 동안 새만금개발사업에 6조6,000억의 민간자본 산업 투자가 이뤄졌다. 새만금 국가산업단지 1·2·5·6공구가 제1호 투자진흥지구로 지정됐다. 남북도로 완전 개통에 이어 새만금 산단이 이차전지 특화단지로 지정됐다. 하지만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파행으로 끝나면서 새만금개발에 급제동이 걸렸다. 

정부가 새만금 국제공항·신항·신항 철도 건설 등을 포함한 ‘새만금 기본계획’을 재수립하기로 했다. 애초 잼버리 대회 유치와 지역 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공항과 신항만 건설 등이 추진됐으나, 새만금 사업의 적정성을 재검토하기로 한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공항·철도·도로 등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사업의 필요성과 타당성, 균형발전 정책 효과를 다시 따질 기세다. 

새만금개발 방향, 네덜란드 자위더르제이(Zuyder Zee) 벤치마킹해야

안타까우나 나쁘게만 생각할 일은 아니다. 새만금 관련 7대 SOC 사업에 약 10조 원의 예산 투입이 예정돼 있다. 동서도로와 남북도로는 완공됐으나 국제공항과 새만금 신항, 신항 철도,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새만금 내 지역 간 연결도로 등 5개 사업은 앞으로 5조7,000억 원 이상의 국비를 더 투입돼야 한다. 차제에 철저한 검증을 거쳐 사업 규모와 시행 여부를 결정할 필요가 있다. 

새만금개발에 대한 뚜렷한 방향 설정이 긴요하다. 그동안은 개발에 대한 비전도 전략도 없었다. 설계도도 없이 집을 지어 온 꼴이 됐다. 새만금을 어떤 용도로 활용할지를 놓고 우왕좌왕, 갈팡질팡하며 그저 뚝을 막고 길을 내고 땅을 메워왔다. 1990년대 초 새만금개발사업이 설계될 당시에는 매립지 모두를 농지로 조성하려 했으나 이후 산업용지 비율을 계속 늘려왔다. 농업용지가 산업용지로 바뀌어 가는 양상이다. 

이 대목에서 네덜란드 자위더르제이(Zuyder Zee)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1920년대 대규모 바다 간척 사업을 시작해 1932년 자위더르 방조제를 건설하며 1,650㎢에 이르는 새로운 땅을 만들었다. 이 중 73.4%를 농지로 활용해 농업의 신기원을 일궜다. 해저 모래 산성토양에 농작물이 적합지 않고 목초재배가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 낙농 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했다. 친환경·고품질 농산물을 생산해 유럽 전역에 수출하고 있다. 

새만금을 그만 우려먹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안될 것을 알면서도 될 것 같다는 희망을 주어서 더는 국민과 지역민을 고통스럽게 해서는 안 된다. 1966년 252만 명이던 전라북도 인구가 지금은 176만 명으로 30.1% 줄었다. 전국 지자체 중 최대 감소 폭이다. 지금도 매년 1만5천 명의 인구가 순유출된다. 잼버리는 실패로 끝났으나 이를 계기로 새만금의 허상을 버리고 실상을 찾아야 한다. 더디 가도 바로 가야 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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