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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에도 나이가 있나요?...'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어디 사세요'
돈에도 나이가 있나요?...'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어디 사세요'
  • 정종석
  • 승인 2023.08.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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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궁 아파트 주민이 아니면 빌런...집에 울고, 집에 좌절하는 사람들.... 50년 주담대의 DSR 우회를 차단하려면, 연령제한이 아닌 DSR 산정주기를 조절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도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 온 세상을 집어삼킨 대지진, 그리고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오직 황궁 아파트만은 그대로다. 소문을 들은 외부 생존자들이 황궁 아파트로 몰려들자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는 입주민들. 생존을 위해 하나가 된 그들은 새로운 주민 대표 ‘영탁’을 중심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막아선 채 아파트 주민만을 위한 새로운 규칙을 만든다.

덕분에 지옥 같은 바깥 세상과 달리 주민들에겐 더 없이 안전하고 평화로운 유토피아 황궁 아파트. 하지만 끝이 없는 생존의 위기 속 그들 사이에서도 예상치 못한 갈등이 시작되는데...!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 규칙, 따르거나 떠나거나.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이 필수다. 식량을 찾는 외부 탐사 시 투철한 희생정신도 가져야 한다. 남을 해쳐야 하는 잔인한 순간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내가 먼저 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 살인은 점점 무감각해져만 간다. 먹을 것 때문에 벌어지는 싸움은 원시시대로 회귀한 현대의 씁쓸함을 뜻한다.

인간성 퇴보의 다양한 양상이 펼쳐짐에 따라 누구나 악인과 선인을 넘나든다. 안과 밖이 확실하게 구분된 거대한 성이 된 아파트는 차츰 썩어간다. '우리'와 '너희'만 있고 '나'와 '너'는 없는 이분법과 파시즘을 만들어낸다.

최근 개봉한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아파트를 무대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을 다룬다.

1970년대 여의도의 시범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고 강남 아파트 개발이 활발해지면서 70- 80년대 투기 대상이 됐다. 현재 아파트는 대한민국에서 집 이상의 의미를 투영한 꿈이 돼버렸다.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고급 아파트에 사는 자와 못 사는 자 같은 새로운 계급, 부의 척도이다.

영화는 아파트를 의미하는 콘크리트와 이상 세계 유토피아를 붙여 아이러니함을 극대화한다.

사는 지역과 주택 형태에 따라 나뉘는 주거의 계급화...주거 형태에 따라 정치적 성향 결정

#‘집’을 매개로 한 부동산 열병은 내 집 마련의 소박한 꿈과 한탕을 노리는 탐욕이 뒤범벅돼 있다. 한국 사회가 뜨겁게 빠져들었던 ‘부동산 불패 신화’의 이면에는 화려한 부동산 무용담이 있다. 소득 대비 최고 수준의 주택 임대료에 허덕대는 사람들도 있다. ‘집’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지난 2010년 나온 ‘어디사세요’는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또 집을 욕망하고, 그 욕망에 좌절하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이 해 3월부터 5월까지 경향신문에 19회에 걸쳐 연재된 기획물 '어디 사세요?-주거의 사회학'을 단행본으로 구성한 것이다. 이 책은 부동산 불패 신화 이후 집 문제를 심층적으로 재조명했다.

이익 만을 좇는 재개발과 오르는 전셋값을 따라잡지 못해 밀려나는 사람들의 주거 문제를 중심으로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집’으로부터 시작되는 사회적 이야기들을 다각도로 살펴본 내용들이다.

이로부터 13년이란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지만 현실은 그때나 지금이라 마찬가지다. 투전판으로 변질된 주택시장, 건설업계와 정관계의 토건 동맹, 사는 지역과 주택 형태에 따라 나뉘는 주거의 계급화, 주거 형태에 따라 정치적 성향이 결정되는 주거의 정치학 등을 다루며 부동산에 저당 잡힌 우리 시대 주거의 풍경이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집을 가진 이도, 집을 갖지 못한 이도 쉽지 않은 게 한국에서의 삶이다. 세입자들은 집주인의 변덕과 횡포에 시달리고, 오르는 전셋값을 마련하지 못해 월세로 밀려나고 또 반지하와 옥탑으로 밀려난다.

비정규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88만원 세대는 고시원 쪽방으로 내몰린다. 또 젊은이들은 임금에 비해 비싼 주택비용으로 출산을 미루거나 결혼을 포기한다. 어렵게 이룬 내 집 마련의 꿈은 대출금에 허덕대는 하우스 푸어의 현실로 돌아온다.

정말 사는 곳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도 괜찮을까? 사는 곳이 사는 것을 고민하게 하는 시대

#인사말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해방 후 보리고개 시절의 인사말은 “안녕하십니까” 보다는 대체로 “식사하셨습니까“가 많았다.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밥 한끼라도 제대로 먹었느냐는 뜻이다.

이랬던 인사말이 시대가 바뀌면서 “뭐 하세요?”로 변했다. 하는 일, 그러니까 직업이 중요한 능력 중시 시대가 되다 보니 평가 기준이 달라졌다.

그런데 이런 인사말이 또 바뀌고 있다. 얼마 전 한 대기업 임원이 푸념을 했다. “요즘 ‘어디 사세요?’라고 묻는 후배들이 많아요. 우리 땐 능력 있는 선배를 우러러봤는데, 이제는 사는 곳으로 판단하나 봅니다.”

혼기를 맞은 청춘남녀들도 소개팅 뒤 어디 사느냐를 토대로 상대방을 판단한다고 한다. 서울에서도 강남 3구같은 곳에 산다고 하면 애프터미팅 신청이 들어오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만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정말 사는 곳으로 그 사람을 판단해도 괜찮을까? 사는 곳이 사는 것을 고민하게 하는 시대다.

‘집’은 사람들이 생계를 일궈가는 보금자리를 일컫는 말이지만, ‘부동산 불패론’이라는 신화 아래 한국 자본주의를 부풀려온 동력으로 작동해 왔다. 멀리 ‘복부인’이란 말이 떠돌던 시대에서부터 가깝게는 한국 사회를 온통 뒤흔들었던 신도시, 뉴타운 재개발까지 집은 막대한 차익을 남겨주는 투자재로서 위력을 행사해 왔다.

따라잡기 어려운 집값, 소득 대비 최고 수준의 주택 임대료에 허덕이는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 집을 욕망하고, 그 욕망에 좌절하는 우리들은 지금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50년 주담대 연령 제한?...나이와 만기를 연관 지어 젊은 층만 이용하게 하는 것은 부적절

#최근 금융당국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가계대출 증가의 원인으로 보고 젊은층으로 대출연령을 제한하는 내용의 규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은 중장년층 등 일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은 차주가 상환기간이 긴 초장기 주담대를 이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과 대출차주들은 당초 50년 주담대 도입 취지가 고금리 시기에 원리금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고, 주담대를 수십년간 상환하는 차주도 드문 만큼 연령제한은 '역차별'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정책모기지인 특례보금자리론의 경우 50년 만기의 가입연령을 만 34세 이하로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시중은행 50년 주담대는 신한은행을 제외하곤 별도의 나이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당초 50년 주담대 도입 취지가 고금리 기조 속 차주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덜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로 주담대를 수십년간 상환하는 차주도 사실상 거의 드물다. 주담대 폭증의 원인은 50년 만기 상품에 있다기 보단 부동산 규제 완화로 보는 게 맞는 것이다.

따라서 40~50대 중장년 차주들을 중심으로 나이를 기준으로 초장기 주담대 이용을 제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론이 나온다.

주담대 차주의 평균 상환기간은 7년 정도인 것으로 알려진다. 대출을 만기까지 이용하지 않고 그 전에 갚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이와 만기를 연관 지어 젊은 층만 이용하게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요즘 근속기간을 보면 젊은 층이 만기까지 소득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50년 주담대의 DSR 우회를 차단하려면, 연령제한이 아닌 DSR 산정주기를 조절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돈에도 나이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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