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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권 카르텔' 깨려면 '전관예우'부터 없애라
'이권 카르텔' 깨려면 '전관예우'부터 없애라
  • 권의종
  • 승인 2023.08.0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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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근 빠진 아파트, 정신 빠진 LH, 수렁 빠진 입주자...낯부끄러운 대한민국 자화성의 일면 노출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살다 살다 별일도 다 본다. 철근이 빠진 채로 시공된 아파트가 등장했다. 그것도 정부 기관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곳이다. LH가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아파트 91개 단지를 전수 점검한 결과, 15개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전단 보강근 누락을 확인했다. 정부는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민간 아파트까지 조사를 진행한다. 

무량판 구조는 보가 없고 기둥이 직접 슬래브를 지지하는 방식이다. 토공을 덜 하면서도 층고를 높이고 사용 공간을 넓힐 수 있는 장점이 있다. 2017년 전후에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만들 때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보가 없어 하중을 견디기 위해 전단저항력을 작용시키는 철근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중요한 철근이 빠진 것이다. 

부실이 확인된 15개 단지에서는 구조 계산을 잘못하거나 단순 누락, 도면 표현 누락, 다른 층 도면으로 배근하는 등의 이유로 기둥 주변에 철근을 제대로 넣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철근이 누락된 단지의 가구 수가 1만1,168가구다. 철근 누락 사유가 복합적이다. 발주처인 LH의 관리·감독 부실, 설계사의 미흡한 설계, 감리사의 새로운 공법 이해도 부족, 시공사의 전문성 부족 등 시스템 전반에 문제가 있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부실 원인으로 LH 출신을 영입한 업체들이 사업 수주 과정에서 혜택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전관예우(前官禮遇)’ 의혹을 제기했다. 감사원 감사도 청구했다. 경실련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2021년에도 2015∼2020년 LH 설계용역 수의계약 536건, 건설사업관리용역 경쟁입찰 290건에 대한 수주 현황을 분석, LH 전관 영입 업체 47곳이 용역의 55.4%(297건), 계약 금액의 69.4%(6,582억 원)를 수주했다고 밝힌 바 있다. 

놀랍게도 한국에만 있는 '전관예우', 부실과 부조리의 온상

전관예우는 놀랍게도 한국에만 있는 용어다. 원조는 법조계다. 법조계 전관예우는 국회의원 특권에 못지않게 심각하다. 성남 대장동 사건 '50억 클럽' 인사들 모두가 고위 법조계 출신 변호사라는 게 단적인 예다. 전관 변호사들은 자신이 전관임을 대놓고 홍보한다. 대형 로펌은 사법연수원 기수별로 법원·검찰 출신을 최소 1명 이상 채용, 동기 판사나 검사의 사건에 투입한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전관을 선임해야 승소한다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평소에는 전관예우를 비판하면서 막상 자기에게 일이 생기면 태도가 돌변하고 만다. 어떻게든 판사·검사와 가까운 전관 변호사를 선임하려 한다. 외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대법원 산하 사법정책연구원의 ‘해외의 전관예우 규제사례와 국내 규제방안 모색’ 보고서가 이를 잘 설명한다. 

미국의 경우 선출직이나 임기제인 주 법원 판사는 물론 종신직인 연방 법관도 사임·은퇴 후 변호사 개업을 한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적이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 판·검사가 퇴직 후 변호사로 개업하는 사례가 있기는 하나 물의를 빚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전관 출신 변호사는 ‘영업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에 손님이 잘 몰리지 않는다는 평가다. 

독일 경우도 판사의 변호사 개업을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정년까지 근무하는 관행이 확고해 변호사로 개업하면 동료 법관의 눈총이나 언론의 비판을 받는 분위기다. 우리나라는 퇴직 시 재직한 법원·검찰 관련 사건 수임을 1년간 금지하는 게 고작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규제 강도가 약한 편으로 전관 개업으로 사법 공정성이 흔들릴 소지가 그만큼 커질 수 있다.

법조계, 건설업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똬리 튼 '이권 카르텔'

전관예우는 법조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 ‘전관 활용’을 꼭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공직에서 추적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사항이다. 국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효익이 크다. 실제로 공직 퇴직자 활용으로 효과를 보는 예가 적지 않다. 국무조정실은 2022년 8월 전직 중앙부처 고위 관료 등으로 구성된 규제혁신추진단을 발족했다. 그 후 1년 동안 1,027건의 규제를 개선, 약 70조 원의 경제적 효과를 거둘 거라는 전망이다. 

전국퇴직금융인협회 활동상도 눈부시다. 2022년 중 어르신, 장애인, 한부모 가정, 돌봄센터 등 금융 취약계층에 금융사기 예방 교육과 생활금융 교육을 267회 실시했다. 청소년 금융교육도 723회 시행했다. 독거노인, 조손가정 등 사회 취약계층에 대한 생활용품 지원 등 사회공헌활동 또한 활발했다. 올해도 금융취약자 생활금융교육 2천 회, 청소년 금융교육 1천 회를 계획한다. 사회취약자 및 농어촌 봉사활동도 확대한다. 

'전관’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예우’가 문제다. 예우의 이면에는 대개 ‘이권 카르텔’이 똬리를 틀고 있다. 공직에 있었던 인물들이 퇴임 후 기존 업무와 연관된 기업 등에 들어간 뒤 전관의 지위를 이용, 부당한 이익을 챙기는 경우다. ‘유능’의 기준이 실력이 아닌 인맥과 정치로 통하는 후진적 현실이 안타깝다. 낯부끄러운 대한민국 자화성의 일면이다. 

정부는 2011년 공직자윤리법을 개정, 공무원은 퇴직 후 2년 동안 퇴직 전 5년 동안 근무한 부서와 연관된 기업에 취직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다. 실효성이 없다.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간다. 4급 이상 공무원에 대해 대형 법인에 취업 시 심사를 받도록 했으나, 탈락자가 없다시피 하다. 부실과 부조리의 온상인 '이권 카르텔'을 깨부수려면 전관예우부터 없애야 한다. 낙하산 공습(公襲)이 비행(非行)으로 옮겨붙지 않으려면 미리미리 불씨를 제거해야 한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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