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박도윤 기자] 코로나19 사태 기간 동안 우리나라 가계가 이전보다 100조원 이상 더 저축했으나 대출을 적극적으로 갚기보다는 예금이나 주식 등 금융자산을 불리는 데 쓴 것으로 조사됐다.
향후 이 금융자산이 주택시장에 유입돼 주택 가격을 상승시키고 가계부채 해소를 지연시켜 금융 불안정을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팬데믹 이후 가계 초과저축 분석과 평가' 보고서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3년간(2020∼2022년) 가계부문 초과저축 규모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4.7∼6.0%, 민간소비의 9.7∼12.4% 수준인 101조∼129조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가계가 팬데믹 이전 추세를 웃도는 저축을 했다는 것으로, 그 원인으로는 팬데믹 직후의 소비 감소와 지난해 소득 증가 등이 꼽혔다.
하지만 한은은 가계지출 증가율 등으로 미뤄 우리나라 가계가 초과저축을 추가적 소비 재원으로 활용한 부분은 크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2020∼2022년 명목 가계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은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3.6%)보다 높은 평균 4.6%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계가 이 저축을 주로 대출 상환에 쓴 것도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금리 상승으로 부채 상환 유인이 커졌지만, 우리나라 가계의 디레버리징(차입 축소·상환)이 주요국보다 상대적으로 더딘 모습"이라며 "2020∼2022년 가계의 금융자산과 부채가 동시에 크게 늘었는데, 이는 우리 가계가 초과저축을 부채 상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대신 가계는 초과저축을 주로 예금·주식 등 유동성이 좋은 금융자산의 형태로 보유한 것으로 추정됐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계의 금융자산은 2020∼2022년 현금·예금·주식·펀드를 중심으로 1006조원 늘었다. 2017∼2019년(591조원)의 거의 두 배 수준이다.
조주연 한은 동향분석팀 과장은 "팬데믹 기간에 가계는 100조원 이상의 초과저축을 축적했고, 이를 금융자산 형태로 보유하고 있다"며 "이는 가계가 실물경제와 금융의 큰 불확실성 때문에 향후 추이를 관망하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유동성 좋은 금융자산 형태의 초과저축은 앞으로 실물경제 측면에서 부정적 소득 충격이 있을 때 완충 역할을 해민간 소비의 하방 위험을 줄여줄 것이라면서도 동시에 금융 불안의 잠재 요인으로 지목됐다.
조 과장은 "최근 주택가격 상승 기대가 커지는 가운데, 가계 초과저축이 대출과 함께 주택시장에 재접근하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주택가격 상승, 가계 디레버리징 지연 등으로 금융 안정에 부정적"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