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회장이 티브로드에 맡긴 기금 100억은 신탁이고, 기업 고유재산 아니어서 법인세 부과 취소해야
이 건으로 시민단체 고발까지 당한 이 전 회장에게는 다소 유리한 판결. 검찰수사 결과는 아직 소식 없어
[금융소비자뉴스 이동준 기자] 태광그룹 최대주주 이호진 전 회장이 옛 계열사 티브로드에 맡긴 기금은 회사의 순자산을 늘린 수익으로 볼 수 없어 법인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7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김순열 부장판사)는 옛 태광 계열사 티브로드를 흡수 합병한 SK그룹의 SK브로드밴드가 동수원세무서와 서울지방국세청을 상대로 '법인세 부과 처분 등을 취소해 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티브로드는 태광그룹 계열사로 있던 2017년 이호진 전 태광 회장과 '중소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운영 및 지원을 위한 공동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기금 100억원을 기부받았다.
티브로드는 이 중 38억여원을 중소 PP에 지원했고, 2019년 이 전 회장과 합의해 양해각서를 해지한 뒤 미사용 기금 약 62억원을 이 전 회장에게 반환했다.
2020년 티브로드에 대한 법인세 통합 세무조사를 실시한 국세청은 기부금 100억원과 그 이자수입을 티브로드의 익금(회사의 순자산을 증가시킨 거래로 생긴 수익)으로 산입해야 한다고 보고 25억여원의 법인세를 부과했다.
티브로드가 이 전 회장에게 반환한 돈은 주주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며 소득금액 변동 통지도 했다.
2020년 티브로드를 흡수합병한 SK브로드밴드는 이같은 처분이 부당하다며 조세심판원에 심판 청구를 했으나 기각되자 행정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이 전 회장이 티브로드에 100억원을 '신탁'한 것으로 봐야하고, 티브로드가 자기를 위한 용도로 기금을 사용할 수 없었다"며 법인세 부과를 취소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기금이 티브로드의 고유 재산과 분리돼 별도로 집행·관리됐고, 합병을 진행할 때도 회사 가치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돈이 반환된 경위를 고려하면 기금이 티브로드에 실질적으로 귀속돼 순자산을 증가시켰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협의로 배임죄로 처벌받은 이 전 회장이 티브로드가 입은 피해 변제를 위해 기금을 증여한 것이라는 세무당국 주장에 대해서도 "과세관청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당사자들이 선택한 법률관계를 존중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편 2022년 7월13일 태광그룹바로잡기공동투쟁본부와 금융정의연대 등 7개 시민단체는 이호진 전 회장과 최측근인 김기유 전 경영기획실장 등을 2000억원대 횡령 및 배임혐의로 또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2019년 태광 계열사이던 국내 2위 케이블TV 티브로드를 SK브로드밴드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이호진 소유의 위장 계열사인 사모펀드 JNT인베스트먼트(이하 JNT)를 동원해 태광과 티브로드에 약 2천억원의 손실을 끼쳤다고 이들은 고발 이유를 밝혔다.
이호진 측근들이 포진한 이 사모펀드의 작전으로 티브로드가 이호진의 사익을 극대화했으며, 이런 의혹은 이미 국세청 조사4국 조사와 다수 언론보도로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고 시민단체 등은 주장했다.
이들은 “이 전 회장이 JNT가 주도한 컨소시엄을 통해 자신의 티브로드 주식을 강제 매수하게 했다”며 “티브로드가 기업공개(IPO) 실패 후 불리한 계약조건에 따라 프리미엄을 사들이면서 손해를 봐야 했다. 이것이 이 전 회장의 배임 혐의가 불거지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등은 굳이 안해도 될 프리IPO, 특히 이호진 보유 지분을 무리하게 팔기위해 불리한 콜옵션 조항을 만들었던 것이 티브로드 손실을 초래했다고 볼수 있다면서 프리IPO(상장전 지분매각) 성사와 콜옵션 조항에 이 전 회장과 그 측근들이 깊숙이 개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고발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착수 여부 및 결과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재판결과는 티브로드 고발건과 관련, 이호진 전 회장측에 일부 유리한 재판결과로 받아 들여진다.
공정위 집계 자산 순위 52위 대규모 기업집단(재벌)인 태광그룹은 지난 10여년간 오너 리스크가 가장 극심했던 그룹중 하나였다. 그룹 최대주주(오너)인 이호진 전 회장이 끊임없이 사고를 치거나 각종 잡음을 직접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굵직한 것만 몇건 나열해 보면 2011년 1400억원대 횡령 배임 고발건이 대표적이다. 이 건 때문에 이 전 회장은 8년5개월의 긴 재판 끝에 3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다. 3년을 꼬박 복역하고 21년 10월에야 만기출소했다. 그 이전 재판과정에서는 보석기간 중에 음주 등이 목격돼 황제보석 논란을 크게 일으키기도 했다.
이 재판중 오너 일가 회사가 만든 김치와 와인을 비싼 값에 계열사들에 강제판매한 이른바 ‘김치 와인 강매사건’이 또 터졌다. 이 회장은 또 차명주식을 허위로 기재해 공정위에 제출한 혐의로 2021년 3월 벌금 3억원의 약식명령을 받기도 했다. 여러 건의 실형과 벌금형 때문에 이 전 회장은 그 뒤 5년간 취업 제한에 대주주 자격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