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 원로 경영인 이종환의 노벨상 능가하는 ‘관정상’ 꿈
97세 원로 경영인 이종환의 노벨상 능가하는 ‘관정상’ 꿈
  • 권의종
  • 승인 2019.10.3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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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회장의 투철한 도덕의식, 솔선수범의 공공 정신, ‘노블레스 오블리주’ 큰 그릇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에게도 이런 기업인이 있는 줄 몰랐다. 올해 97세의 원로 경영인 이종환 회장을 두고 하는 얘기다. 관정 이종환교육재단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평소 기업인하면  부정적 이미지부터 떠올리는 일반의 인식을 보기 좋게 깨부순다. 부자들이 세운 장학재단을 편법세습이나 세금탈루의 도구로 도매금으로 매도했던 옹졸함이 낯 뜨겁다. 

이 회장은 1959년 플라스틱 제조로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대부분 전자제품의 핵심소재인 초박막 커패시터 필름 등을 만드는 삼영화학을 경영한다. 재산의 97%가 넘는 1조원 이상을 재단에 쾌척했다. 19년간 1만 명이 넘는 장학생들에게 2400억 원이 넘는 장학금을 지급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를 통 털어 최대 규모의 장학재단이다. 2015년에는 서울대에 600억 원을 들여 도서관도 지어줬다. 아직도 학내 최대 기부자로 등재 중이다.

장학금을 지원받은 학생 중 향후 10년 이내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를 누구보다 갈망해 왔던 그다.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하는 인재가 생기지 않도록 돕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꿈꿔왔다. 그러던 중 이번에는 더 큰 포부를 밝혔다. 세계적인 과학상, 가칭 ‘세계관정과학상을 창설하는 청사진을 펼쳤다.

2022년부터 생명과학상, 수리물리학상, 화학상, 응용공학상, 인문사회과학상을 수상할 계획이다. 5개 분야에 걸쳐 매년 각 수상자에게 15억 원 안팎의 상금을 수여한다. 상금 규모만 놓고 보면 6개 분야에서 각 100만 달러, 도합 600만 달러에 달하는 노벨상 규모를 능가한다. 남달리 앞서 깨달음이 큰 선각자적 발상이다.

세계적인 과학상, 가칭 ‘세계관정과학상’ 창설 청사진...남달리 앞서 깨달음 큰 선각자적 발상

내년 6월까지 재단 산하에 국내외 최고 권위자로 구성되는 세계관정과학상위원회를 구성한다. 각 분야별 국내 최고 권위의 대학과 학술단체에 의뢰해 수상자를 심사 선정할 계획을 잡고 있다. 재단 수익이 연 300억 원을 상회하기 때문에, 매년 지급하는 연간 장학금 130억 원을 감안하더라도 과학상 운영 여력이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2002년 사재 3천억 원을 출연, 교육재단을 설립했을 때도 세상이 놀랐다. 그 후로도 출연금을 꾸준히 늘렸다. 기금 규모가 1조원을 넘었다. “천사처럼 돈을 벌지 못했어도 천사처럼 돈을 쓰겠다”는 각오로 사회 환원을 시작했다고 한다. 겸양의 말씀이다. 말은 그래도 그는 이미 투명한 기부 천사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 제조로 번 돈을 스웨덴 과학아카데미에 기부했지만, 이 회장은 정당한 기업 활동으로 부를 창출해 출연치 않았나.

큰 상에 비해 뜻이 소박하다. 평소 장학재단을 운영해 오면서 가졌던 기대와 안타까움이 상을 만든 배경이다.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인재가 나오기를 열망했다. 이를 뒷받침할 기업인 배출도 간절히 소망해왔던 터다. 노벨상이 과학이론 중심이라면 새로운 상은 응용과 실용화에 공헌한 사람에게도 문호를 넓힐 생각이다. 아시아와 제3세계 출신의 과학자에게도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일 요량이다.

백세를 눈앞에 둔 그는 아직도 청춘이다. 평소 '양자 컴퓨터' 같은 미래 산업을 자주 언급한다. 반도체 이후 등장할 양자 컴퓨터 시대를 지금부터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역설이 감동적이다. 국내 주요 산업들이 성숙기에 접어들어 신수종 산업 발굴을 걱정하는 마당에 후배 경영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지침이다.

지구적 문제 해결 위해 아낌없이 재산 내놓은 선한 사마리아인들...그들 덕에 세상은 아름답게 진화

국가적 자긍심을 드높이는 경사다. 우리는 지금까지 훌륭한 기부 사례를 해외에서나 찾아야 했다. 페이스북 지분 99%, 8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재산을 기부한 마크 저커버그. 1천억 달러가 넘은 재산을 세 자녀에게 1천만 달러씩 주고, 나머지를 헌납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2007년 21억 달러 상당의 주식을 자선단체에 희사한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단골로 인용되었다.

그럴 때마다 자존심이 참 많이 상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대한민국의 토종 기부 사례를 당당히 내세울 수 있게 되었다. 의식 속에 잠재한 콤플렉스를 떨치고, 안정과 균형을 찾는 카타르시스를  만끽하게 되었다. 세계 12위 국내총생산(GDP), 세계 6위 수출규모,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국가로서 그간의 구겨진 체면이 서게 되었다. 이종환 회장 덕분으로.

‘Philanthropy(자선·박애)’와 ‘Capitalism(자본주의)’의 합성어인 자선자본주의(Philanthrocapitalism)용어는 더 이상 남의 나라 부호의 기부 행위를 설명하는데 국한될 수 없게 되었다. 전 지구적 문제해결을 위해 소유 재산을 아낌없이 내놓은 선한 사마리아인들 덕에 세상은 아름답게 진화되고 있다. 이들을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 신의 과업을 돕는 이 시대의 동역자로 표현한다면 지나친 아부일까.

“어떤 재산보다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다”는 저커버그. “'돈을 잘 쓰는 것'을 목표로 인생 후반전을 시작했다”는 빌 게이츠. "재산 물려주면 자식 망친다"는 워런 버핏. “미래를 기준으로 오늘 할 일을 먼저 해야 한다”는 이종환 회장. 이들의 투철한 도덕의식, 솔선수범의 공공정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릇으로도 담아내기 벅차다. 중량초과, 용적초과의 동시 위반이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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