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을 믿지 마세요"...은행의 배신과 금융 불신시대
"은행을 믿지 마세요"...은행의 배신과 금융 불신시대
  • 정종석
  • 승인 2019.08.3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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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구-윤석헌, 모두 금소법 핑계 대며 책임 회피...국민들이 깨어나 금융소비자주권 확립해야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무너졌다.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은행권의 건전성과 대외신인도가 높아졌지만, 살아남은 은행들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쳐야 했다.

이런 위기의 교훈이었을까. 현재 금융시장에서는 경기 부진과 증시 하락을 예상해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상품들이 많다.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확산되면 그 공포를 사면 된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다.

앞날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변동 장세에서 하락에 베팅하는 투자 기법은 자금을 항상 운용해야 하는 기관투자가들에게 필요하다. 경기가 부진하다고 손을 놓은 채 돈만 잃게 되면 결국 증권사나 은행 등에 돈을 맡겨놓은 일반 개인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탓이다.

문제는 시장 교란을 일으켜서 불안에 투자하려는 조작 수준의 투자가 비난을 받는다는 점이다. 심할 경우 금융당국 조사나 고발 등의 조치를 받을 수도 있다. 최근 일부 은행과 증권사가 판매 운용한 DLS(파생결합증권)가 수천억원의 손실을 내면서 소비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이미 여러 은행과 증권사들은 키코 사태, 동양그룹 파산, 홍콩지수 폭락,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관련 금융상품에 막대한 손실을 내면서 소비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바 있다.

주식시장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란 격언이 있다. 쉽게 말해 '위험수당'이라고 하면 틀림이 없다. 위험이 높은 주식일수록 수익률이 높다는 뜻이다. 법원 경매에서도 비슷한 경우들을 보게 된다.

위험과 수익률은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불가분의 관계다. 결국 투자자가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돈을 꽤 벌 수 있는 금융상품은 그만큼 돈을 크게 잃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차생상품 판매 은행들, 과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인 걸 몰랐을까'

우리·하나은행 등이 판매했던 파생결합펀드(DLF)로 논란이 불거질 때 가장 궁금한 것은 은행들이 과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인 걸 몰랐을까‘ 하는 점이었다. 사태가 일어나자 노후자금인 퇴직금을 통째로 잃은 경우 등 안타까운 사연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일부 은행들이 원금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펀드를 팔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독일 국채 연계 DLS의 경우 일정 기간 금리가 -0.2% 포인트 이상이면 연 4.2% 수익이 보장되지만, -0.7% 포인트 이하로 떨어지면 원금 전액을 날리는 구조다. 피해자들은 은행이 이런 고위험 상품을 “독일 경제의 건전성에 투자하는 안정적 상품”이라고 설명하며 절반가량을 65세가 넘는 은퇴자들에게 판매했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날린 1,200억원의 대부분은 반대 포지션을 구입한 유럽 투자자들이 챙겼을 것이다. 이 상품을 판 국내 은행은 투자원금의 1~1.5%인 수수료 15억원 남짓을 벌었을 뿐이다.

이번 파생상품 피해 사태를 놓고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투자자도 위험이 전혀 없는 고수익상품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며 “(DLS와 DLF가) 이번에는 특별한 상황에서 손실이 발생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높은 수익을 주는 상품이다. 판매사는 투자자에게 큰 수익을 얻을 기회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윤석헌 금융위원장도 사모펀드 산업을 키우려다가 소비자들을 희생한 게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최 위원장과 윤 원장은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됐다면 이번 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다. 이 법은 금융기관의 불완전 판매시 위법계약 해지권, 징벌적 과징금 부과 등을 담고 있으나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당국자들의 말은 은근히 자신들의 책임을 국회에 떠넘기는 측면이 없지 않다.

독일국채 금리는 경기침체 국면에서 하락하는 특성을 지닌다. 경기침체기에는 투자자들의 자금이 안전자산에 몰려 국채에 대한 수요도 늘어난다. 통상 시중금리와 함께 움직이는 CMS금리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업계에서 DLS 상품은 중수익 중위험을 추구하고 원금보장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으나 이번 사태로 저수익 고위험 상품이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결국 금융사들이 단순 실적을 올리기 위해 무분별한 판매를 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다. DLS 등 금융상품은 복잡한 구조로 돼 있다. 금융지식이 풍부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상품이다. 이것을 소비자에게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가입을 권유해 피해가 발생하는 것이다.

은행이나 정부나 모두 책임을 소비자에게 미루며 빠져나가기 급급한 눈치

글로벌 경기침체의 징후가 나타난 순간부터 DLF판매를 중단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감독 당국으로서는 먼저 판매 은행의 불완전 판매 여부를 조사해 피해자를 구제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번 사태로 금융상품의 불완전판매가 다시금 쟁점으로 떠올랐다. 과거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홍콩 지수 하락에 따른 ELS(주가연계증권) 손실 사태와 마찬가지로 은행의 고위 임원들이 경질을 당하거나 중징계를 받을 가능성도 더욱 커졌다

과거 키코나 동양사태 등과 같이 파생상품과 관련한 대규모 손실이 반복되는데도 금융감독원을 비롯한 금융당국은 이번에도 금융관계자들을 불러다가 꿀밤을 주고 사태를 수습했다고 할 것이다. 이를 방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하지 않고, 사고가 발생할 때만 감독에 나서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이제 은행 맹신주의를 버려야 한다.  이번 파생상품 사태를 계기로 "은행을 너무 믿지 마세요"라는 말이 다시금 유행할 지도 모른다. 막상 노후자금을 잃은 피해자들은 사방을 둘러봐도 어디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다. 

은행이나 정부나 모두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격언을 들먹이며  책임을 소비자에게 미루며 슬그머니 빠져나가기에 급급한 눈치다. 결국 이 땅에서 앞으로 금융사기를 당하지 않고 살려면 국민들이 깨어나 금융소비자주권을 확립하는 길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비록 늦더라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는 금언이 있다. 누가 이런 상품을 만들도록 지시하고 판매를 허용했는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금융감독당국이 이제 와서 잘못을 국회를 떠넘기기보다는 먼저 스스로 책임를 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책당국의 반복되는 잘못은 단순히 실수가 아니며 노후자금 등 국민들의 생명줄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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