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530조 ‘슈퍼 예산’...나랏돈 소중한 줄 알아야
내년엔 530조 ‘슈퍼 예산’...나랏돈 소중한 줄 알아야
  • 권의종
  • 승인 2019.08.1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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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에 재산은 못 남겨줄 망정, 빚 대물림 신중해야...정부예산 증액은 최소 규모 그쳐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우리 사회는 경조사에 민감하다. 경조사를 제대로 못 챙기면 사회생활이 힘들다. 대인관계에 치명적 손상이 간다. 오래된 인간관계도 한 순간에 끝장난다. 어쩌다 마주치면 서로가 어쩐지 서먹하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기 어렵다.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잘못을 안 하기 위해 엑셀로 경조사 명단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남의 경조사에 부지런히 쫓아 다녀야 남들도 내 경조사를 찾아 온다. 내가 가야 남이 오고, 내가 안 가면 남도 안 온다. 본인 경조사에 온 사람의 대소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 돈만 보내고 안 가면 상대방도 돈만 보내고 안 온다. 나 역시 돈만 보내온 지인의 경조사에는 잘 안 가게 된다. 한동안 연락이 없던 지인의 청첩을 받으면 기분이 언짢다. 인지상정이리라.

경조비 금액에도 예민하다. 내가 5만원을 내면 상대방도 5만원, 내가 10만원을 내면 상대방도 10만원을 건네오게 마련이다. 경조사비 지출은 거의 회수된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2007∼2016년 재정패널 자료를 이용해 경조사비 지출과 수입을 분석한 결과가 그렇다. 경조사 지출액이 1만원 늘 때 회수액은 9,880원으로 나타났다. 가령 10만원의 경조사비를 지출했다면 9만8,800원이 회수된다는 얘기다. 정확한 ‘품앗이’다.

낸 만큼 돌려받고, 받은 만큼 내야하는 우리의 경조사 문화. 나무랄 일만도 아니다. 되레 상부상조라는 경조사 본 취지에 합당하다. 다만 날로 야박해지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과거에 비해 소득 수준은 향상되었는데도 돈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여전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자기 돈에는 인색, 국민 돈은 ‘화수분’... 내년 예산 530조 원까지 늘려 잡으려는 여당의 속셈

인색한 것은 자기 돈에서 뿐이다. 남의 돈 쓸 때는 후하기 그지없다. 정부나 국회도 그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내년도 예산이 ‘초(超) 슈퍼’ 규모가 될 조짐이다. 여당은 내년도 예산 규모를 최대 530조원까지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다. 2020년도 예산안 비공개 당정협의에서 이 같은 요청을 정부에 전달했다. 올 예산 469조 6000억원보다 60조원가량 많다. 12.9% 증가다. 2011년~2017년 6년간 100조원 오른 예산이 불과 3년 만에 130조원 느는 셈이다.

2022년까지 재정지출 연평균 증가율을 7.3%로 잡았던 기획재정부조차 난색을 표할 정도다. 명분이야 나름 그럴듯하다. 경기 대응과 혁신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내년 예산은 확장적 재정운용 기조로 가져가야 한다는 목소리다. 예산 집중성을 높이고 시급성을 반영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과 일본 수출규제 등 대외여건 악화를 감안, 재정지출을 대폭 늘리는 데 당정이 공감했다는 설명이다. 자기들 마음대로다.

어려운 경제 여건을 고려해 총지출 증가율을 두 자릿수로 가져가 예산 규모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부가 균형 재정을 맞추려고만 하는데, 경제가 어려울 때는 재정 적자를 감수하더라도 공격적 확장 재정이 필요하다는 견해다. 누가 국회의원 아니랄까봐 청산유수의 말솜씨다. 논리와 근거가 희미하다. 재원조달 방법도 안 보인다. 실제로 530조원을 바라기보다 깎일 걸 대비해 일단 높은 액수를 부르고 보자는 심사일지 모른다.

적재적소에 필요 예산의 적기 투입은 지극히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의 지갑은 화수분이 아니다. 불필요하고 감축 가능한 예산은 없는지부터 살피는 게 바른 순서다. 불요불급 예산을 절감해 필요 부문에 전용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그러고도 부족할 때 증액을 검토하는 게 타당하다. 그런 노력이 없다보니 예산이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게 마련이다. 추경도 해마다 되풀이된다. 자기 돈이라도 그럴까.

정기국회는 싸움터 방불...자기 부처와 지역구 예산확보에 혈안, 정작 국민은 안중에도 없어

9월 정기국회에 예산이 제출되면 본격적인 싸움은 그때부터다. 자기 부처나 지역구의 예산 확보에 다들 혈안이다. 모두가 싸움꾼으로 변신, 굶주린 사자처럼 먹잇감 찾기에 분주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계수조정소위원 자리는 의원들 사이에 최고의 ‘꽃보직’으로 통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서로 하겠다고 난리법석이다. 자천타전의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된 지 이미 오래다.

예산이 확정되어도 싸움은 계속된다. 자기가 힘써서 된 일로 자랑해야 하는 일이 남아있다.  길거리마다 대형 현수막을 내걸고 치적을 알려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자화자찬이 통할 리 없다. 이제 국민들도 그 정도는 다 안다. 감사나 감동을 기대했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국민을 얕잡아보는 태도에 다들 역겨워한다.

돈 대는 사람은 국민인데, 정부와 국회가 생색을 내는 게 볼썽사납다. 주객전도의 꼴불견이다. 공무원은 국가나 사회의 심부름꾼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도 국민을 위해 일하라고 뽑아준 일꾼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 대변자가 되는 게 의당한 일이다. 나라 돈을 내 돈처럼 여기고 예산 편성과 심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게 국민에 대한 도리다. 이를 망각하면 더 이상 국민을 위한 정부도,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도 아니다.

예산이 늘면 그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그 걸로도 모자라면 국채 발행이나 한국은행 차입을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돈은 지금 세대가 빌려 쓰고, 빚은 미래 세대가 갚아야 한다. 후세에 재산은 못 남겨줄망정, 빚 대물림만큼은 신중을 기하는 게 맞다. 모름지기 정부예산 증액은 극도로 자제하되, 꼭 필요한 경우 최소 규모에 그쳐야 한다. 내 돈이 귀하면 남은 돈도 중하다. 나라 돈은 더 소중하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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