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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인제’, 8년 만에 책임자 기소...애경산업 증거 없애다 덜미
‘가습기 살인제’, 8년 만에 책임자 기소...애경산업 증거 없애다 덜미
  • 박은경 기자
  • 승인 2019.07.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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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총 1421명의 사망자…안전성에 대한 기업의 인식 부족이 피해 키웠다

[금융소비자뉴스 박은경 기자] 다수의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발생 8년 만에 검찰의 재수사로 책임자 34명을 추가 기소했다.

이에 2016년 첫 사법처리 당시 처벌을 피했던 관련자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23일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SK케미칼 홍지호(68) 전 대표 등 8명을 구속기소했다. 또 정부 내부 정보를 누설한 환경부 서기관 최모(44) 씨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그간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에 대한 의문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전문적인 확증이 없다는 이유로 처벌이 미뤄지며 피해가 확대돼 왔다. 이날 현재 정부에 등록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이달 19일 기준으로 6476명으로 이 중 1421명이 사망했다.

이번 재수사에서 검찰은 최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수사의 중점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원료를 이용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든 SK케미칼·애경산업·이마트 등이었다. 

CMIT·MIT는 최초의 가습기 살균제인 '유공 가습기 메이트'에 포함된 물질이다. '가습기 메이트'는 유해성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관련 기업들이 작년 말까지 수사와 이에 따른 법적 처분을 피해왔다. 그러나 CMIT·MIT 원료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의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고, 환경부가 뒤늦게 관련 연구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지난해 11월 수사가 재개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 권순정 부장검사가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검찰조사결과 유공은 제품의 유해성과 관련해 서울대 수의대 이영순 교수팀의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통보 받고서도 최종보고서(1995년 7월 발간)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1994년 11월 상용 제품을 먼저 출시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유공에게 2000년 가습기 살균제 사업을 인수한 SK케미칼 역시 ‘추가 흡입독성 실험이 필요하다’는 서울대 연구 보고서 등을 건네받았으나 추가 검증 없이 그대로 제품을 만들었다.

2002년부터는 생활용품 제조·판매 노하우가 있는 애경산업이 가세해 SK와 손잡고 '가습기 메이트' 판매를 시작한다. 애경 역시 제품 출시 전에 SK케미칼로부터 서울대 연구 보고서를 받고서도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제품을 출시했다.

이는 영국의 다국적기업 레킷벤키저가 2001년 옥시를 인수한 뒤 2000년 출시된 '옥시싹싹 가습기당번'에 대한 안전성 점검을 하지 않다가 피해를 키운 것과 비슷한 구조다.

위와 같은 안전성에 대한 기업의 근본적인 인식 부족이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게다가 SK·애경은 '가습기 메이트'가 인체에 유해하지는 않은지 문의하는 고객 불만 사항을 다수 접수하고도 아무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애경산업은 그간 "제조가 아닌 유통에만 관여했다"고 주장해왔지만, 검찰이 고광현(62) 전 대표와 그룹 커뮤니케이션을 총괄하던 양성진(55)전 전무를 구속기소하면서 난감해졌다. 두 사람은 본사·중앙연구소 직원 55명의 PC 하드를 교체하고 이메일과 파란하늘 맑은가습기자료,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등을 인멸하거나 은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애경산업은 앞서 "SK케미칼이 제조한 가습기 살균제인 가습기 메이트에 이름만 붙여 판매했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지난 4월 제조사인 SK케미칼을 상대로 7억원대 구상금 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두 기업 간 판매계약서에 "SK케미칼이 제공한 상품 원액의 결함으로 인해 제3자의 생명, 신체에 손해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SK케미칼이 이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며 피해자에게 손해를 배상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는 주장이다.

애경산업이 가습기 메이트로 벌어들인 연매출은 5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위험부담은 커지고 있다. 검찰은 애경산업이 조직적 증거은폐와 제조에 관여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있다. 1997년 애경산업이 자체 제조 판매했던 파란하늘 맑은 가습기의 안정성 의혹도 남아있는 상태다. 검찰은 구속기소한 두사람 외에 안용찬(60) 전 애경산업 대표 등 5명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총무 채권 팀장을 증거인멸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공정위 과징금을 피했던 이마트도 검찰 조사는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마트는 앞서 공정위로부터 과징금 700만원을 부과받자 행정소송을 냈고 처분 시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취소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본부장과 상무, 상무보가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2006년부터 독성 화학물질이 있는 이마트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제품 때문에 5명이 사망하고 17명이 다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마트(3), 애경산업(8) 외에도 SK케미칼 관계자 14명과 법인 2곳이 재판에 넘겨졌다. 필러물산(2), GS리테일(2퓨앤코(1) 직원, 환경부 직원(1), 국회의원 보좌관(1) 등도 기소됐다.

특히 이번 재수사에서 환경부 서기관 최씨는 2018년 11월 애경산업 직원에게 검찰 수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이니 수사에 대비해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들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번 검찰 수사는 2013년 재판 이후 6년 만에 재개한 것으로 당시 학술 연구 결과 부족 및 증거인멸 등을 이유로 수사망을 벗어난 책임자들이 대거 심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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