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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국으로서 대만의 자존심
주권국으로서 대만의 자존심
  • 허영섭
  • 승인 2018.08.2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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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섭 칼럼] 이번에는 엘살바도르로부터 전해진 단교 소식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다며 중국과의 수교 방침까지 발표됐다. 무엇보다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아흐레에 걸친 중남미 순방 일정을 마치고 사흘 전 귀국하자마자 단교 방침이 통고됐다는 자체로 대만 국민들로서는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차이 총통이 파라과이의 신임 마리오 베니테스 대통령 취임식 참석에 이어 벨리즈를 방문해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사이 바로 이웃 수교국인 엘살바도르에서는 중국과의 비밀 막후교섭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대만 정부는 이번 차이 총통의 순방을 통해 중국의 끈질긴 압력에도 불구하고 건재하다는 모습을 과시하려던 참이었다. 차이 총통이 왕복길에 로스앤젤레스와 휴스턴을 경유하면서 미국 행정부로부터 최대의 예우를 받은 것도 사실이다. 대만 총통으로는 천수이볜(陳水扁)에 이어 15년 만에 미국에서 공개 강연을 했으며, 항공우주국(NASA)을 둘러보는 등 ‘경유 외교’의 활약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3월 대만여행법에 서명한 이후 처음으로 이뤄진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이라는 점에서도 눈길을 끌 만했다.

그런 점에서 엘살바도르의 단교 조치는 대만의 이러한 시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 배후에 자리 잡은 중국의 치밀한 계획에 따라 이뤄진 결과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엘살바도르가 지리적으로 미국의 앞마당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서는 미국으로서도 허를 찔린 셈이다. 최근 무역분쟁으로 미국과 극심한 마찰을 빚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 회심의 일격을 날린 것이다. 대만에 대해서도 더 이상 미국에 의존해 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지고 보면 차이 총통의 이번 중남미 순방 결과가 그렇게 흔쾌했던 것만은 아니다. 파라과이 신임 대통령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차이 총통을 ‘중국-대만 총통(President of China-Taiwan)’으로 표기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베니테스의 결례도 결례지만 대만 외교부가 이에 대해 슬쩍 얼버무리고 넘어가려 했던 태도가 더 심각하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나라들에 있어서는 ‘China-Taiwan’이라는 표현이 ‘Republic of China’의 축약형으로 사용된다”는 해명까지 내놓았으니 말이다.

지금은 베니테스의 트위터에서 ‘China-Taiwan’이라고 썼던 원래 계정은 삭제되고 ‘Republic of China’라는 정식 국호로 대체된 내용이 올라 있다. 그동안 관례적으로 사용돼 왔고, 대만 측에서도 양해가 가능한 사안이라면 굳이 원래 내용을 삭제할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이다. 사태가 이런 식으로 확대되고 보니 일부러 두둔하고 나섰던 대만 측의 처사가 더욱 어색해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차이 총통이 로스앤젤레스 체류 중 대만 제과업체인 85도씨에 격려차 들렀다가 소동을 불러일으킨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에 속한다.

차이 총통이 85도씨 점포를 방문해 종업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공개되면서 중국 네티즌들의 비난에 직면하게 되자 85도씨 측에서는 중국이 내세우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한다는 이례적인 성명까지 내놓는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에 둔 매점의 불매운동을 막겠다는 의도였지만 오히려 대만 고객들의 불만까지 자극한 꼴이 되고 말았다. 2년 전 선거 당시 걸그룹 멤버인 쯔위가 청천백일기를 흔드는 모습이 공개된 여파로 중국 네티즌들의 반발이 일어났고, 그 결과 대만 유권자들을 응집시킨 덕분에 자신에게 유리한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좀 더 신중한 처신이 필요했던 상황이다.

이런 문제들을 떠나서도 최근 대만 정부가 ‘중국-대만’이라는 표현에 극도의 거부감을 내비치던 처지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중국이 외국 항공사들과 호텔, 백화점 등에 대해 대만의 국가 표시를 삭제하고 ‘China, Taiwan'으로 표기하도록 압력을 넣어 끝내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대만이 중국의 지나친 횡포를 규탄했고, 이런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말라고 세계의 민주 시민들로부터 격려와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차이 총통 본인도 정식 국호보다 ‘President of Taiwan'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나름대로 독립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스페인어권 국가들에 대해서는 ’China-Taiwan’이라는 표현도 괜찮다고 예외를 인정한다면 스스로 옹색한 모습을 드러내는 꼴이다.

이제 엘살바도르가 수교국 대열에서 벗어남으로써 대만 수교국은 17개 나라로 줄어들었다. 차이 총통의 취임 이후 2년여 동안만 해도 상투메 프린시페, 파나마,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에 이어 아번이 5번째 이탈 사례다. 앞으로도 중국의 외교적 압박은 거세면 거세졌지 약화되진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이 먼저 ’China-Taiwan’이라는 예외를 인정한다면 그동안 주장해 왔던 독립노선 논리가 혼선을 빚게 될 것이다. 국가적 자존심도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 칼럼은 "자유칼럼그룹의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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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gracias1234@edaily.co.kr)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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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안 관계에서 대만의 입장을 지지해 왔던 세계 민주시민들에게도 실망을 안겨주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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