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김영준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로 촉발된 일가의 논란에 대해 22일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장녀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과 차녀 조 전무를 그룹 내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땅콩회항’ 당시 2014년 그룹 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집행유예 기간에 경영복귀를 한 것처럼 네티즌들은 "더 이상 안 속는다"면서 이번에도 악화된 여론을 달래기 위한 미봉책에 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네티즌들은 또 아들인 "조원태(대한항공 사장)는?"이라며 왜 조양호 회장의 딸들만 사퇴시키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네티즌은 "조양호 회장과 그의 부인, 아들 조원태도 경영에서 빠져야 한다"는 댓글을 달았다.
조 회장은 이날 오후 사과문을 통해 “이번 저의 가족들과 관련된 문제로 국민 여러분 및 대한항공의 임직원 분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서 대단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며 “대한항공의 회장으로서, 또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제 여식이 일으킨 미숙한 행동에 대하여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저의 불찰이고, 저의 잘못”이라고 사과했다.
그는 “조현민 전무에 대하여 대한항공 전무직을 포함하여, 한진그룹 내의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하도록 하고,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도 사장직 등 현재의 모든 직책에서 즉시 사퇴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조현민 전무는 대한항공을 비롯해 그룹 내 7곳 계열사에서 대표이사 등을 맡고 있으며, 조현아는 지난달 29일 칼호텔 사장으로 선임되며 활동을 재개한 바 있다.
조 회장은 또 석태수 한진칼 대표이사를 보직에 임명해 전문경영인 도입 요구에 부응한다는 계획을 전했다. 조 회장은 “차제에 한진그룹 차원에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강화하고, 특히 외부인사를 포함한 준법위원회를 구성하여 유사사태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겠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과문은 관세청이 한진그룹 일가가 항공기를 ‘개인택배’ 삼아 고급의류와 가구 등 개인물품을 들여오며 탈세를 일삼았다는 혐의에 대해 조현아·원태·현민 3남매의 자택와 대한항공 사무실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인 지 하루 만에 나온 것이다. 또 차녀 조현민이 광고사 직원에 물컵을 던진 사건이 사회적 파문을 일으킨 지 열흘 만의 반응이다. 조양호 회장은 그간 관련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이날 오전에는 조 회장이 서울 공항동 본사 7층에 있는 자신의 집무실에 방음공사를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여론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은 형국이었다.
그러나 여론은 이에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각종 포털의 댓글에는 “일가가 다 손을 떼고 전문경영인에게 넘겨라” “이번에는 안 속는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재계 관계자는 “여론이 악화되기 전 대응할 적절한 타이밍을 놓쳤고 이미 사면초가에 놓인 상황이 됐다”면서 “근본적인 해법 없이는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를 다시 얻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재계 소식통은 “조양호 회장은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 등과 협의해 주요 계열사에 독립성을 지닌 사외이사 등을 대거 앉혀 경영 투명성을 확보하는 방법 등을 모색해야 한다”면서 “차라리 회장이 물러나는 등 완전 전문경영체제를 보장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할 정도로 한진그룹이 심각한 단계”라고 강조했다.
다른 소식통은 “조양호 회장은 얼마전 회사돈을 갖고 자택 관련 공사를 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은 바 있다”면서 “보다 진정성 어린 사과 조치 및 갑질 근절 조치를 내놨으면 한다”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