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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대란과 가계부채
카드대란과 가계부채
  • 이민혜 기자
  • 승인 2014.12.19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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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가계부채 대응, 2003년 카드대란 때와 '판박이'

 
지난 2000년대 초반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로 위축된 경기를 살리겠다며 카드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현금카드대출 등 카드사용액이 대폭 늘어나자 금융당국에서 위험신호를 보냈지만 당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는 미적거렸다. 경기부양을 위축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1년을 허비하는 사이 ‘골든타임’을 놓쳤고, 카드채 사태는 국내 금융시장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내년에는 미국을 비롯해서 국내외에서 금리인상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聯準) 의장이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 인상 시점을 내년 4월 이후로 제시했다. 1차 초점은 내년 4월이다.

옐런이 그 달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리 인상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예고했다. 한국 경제가 미국 금리 인상 충격에 대비할 시간이 짧게는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늦추고 시장에 팽배한 'D(디플레이션)의 공포'를 사전에 차단해야 하는 숙제가 정부와 한국은행의 발등에 떨어졌다. 따라서 정부가 때를 놓치지 말고 가계부채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의 반응은 아직 뜨뜻미지근하다. 기재부 고위관계자는 최근 가계부채 급등과 관련, “아직은 위험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다만 비거치식 대출을 통한 분할상환 확대, 고정금리, 은행권 대출 확대 등을 통해 가계대출 질이 좋아지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이같은 어정쩡한 입장은 카드사용액이 급증하던 2001년 당시와 거의 비슷하다.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위축된 내수경기를 살리기 위해 1999년 5월 카드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신용카드 현금대출한도를 폐지하고 길거리회원 모집을 허용했다. 그러자 카드사용액이 폭증했다.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감독원)가 위기를 감지한 것은 2001년이었다. 2년 만에 신용카드 사용액이 6배 이상 늘자 우려가 커졌다. 금감위는 재정경제부에 신용카드 현금서비스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하지만 재경부는 “현금서비스 한도는 카드사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경부는 대신 감독규정을 강화하기로 했다. 길거리 회원모집을 규제하고, 카드 가입희망자에게 소득확인 서류를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규제개혁위원회가 반대했다. 그렇게 1년을 허송세월을 했고 2002년이 되자 부작용이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시작했다. 카드연체가 급증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대폭 늘었다. 카드빚을 갚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도 잇따랐다.

2002년 5월 정부는 그제서야 카드사용 억제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위기가 진행된 상황에서 나온 규제조치는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카드사들이 개인회원의 신용한도를 축소하고 대출금 회수에 들어가자, 돌려막기로 연명하던 소비자들이 추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경영난에 빠진 카드사는 2개월도 안된 연체채권을 헐값에 매각해야 했고, 그럴수록 부실이 더 커졌다. 감사원은 2004년 금융감독기관에 대한 감사에서 “재경부가 실기했다”고 결론을 냈다.

최경환 경제팀이 지난 8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를 완화하고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은행대출 증가폭이 매달 역대최고치를 기록중이다. 4개월간 증가한 은행 가계대출액만 22조원이다.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은 50조원으로 추정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회예산정책처, 금융연구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 잇달아 ‘가계대출 속도조절론’을 제기했지만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경제 확장기조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라는 측면에서는 이해가 된다. 모처럼 피어난 경기의 불씨를 살리고 싶은 심정을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기재부가 지금이라도 나서지 않으면 이 문제에 아예 대응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당장 내년에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우리로서는 아무런 대책이 없게 된다.

우리 경제의 산업 성장동력의 역동성이 떨어졌다. 중국에 밀리고 일본으로부터의 엔저(엔화 약세) 공세도 심해지는 탓이다. 이는 구조적 문제로 풀이된다. 경제지표로도 드러난다. 1%대의 낮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5개월째 이어진다.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0%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급증하는 가계부채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2003년 ‘카드대란’ 때처럼 매우 안이하다는 점에서 흡사하다. 지난 2003년 카드채 사태로 한국경제는 역대 최장기간 소비위축이라는 몸살을 앓았다. 가계부채를 경기대책으로 생각하지 말고, 따로 좀 떼어서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이 비상한 관심을 갖고 더 늦기 전에 별개의 문제로 다뤄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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