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기사 (152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12)인동 장씨(仁同張氏)-591,315명 인동장씨는 상장군 장금용(張金用)계, 직제학 장계(張桂)계로 나뉜다. 장금용은 고려 때 삼중대광 신호위 상장군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인 장 선(張善)이 1072년(고려 문종 26) 금오위 상장군에 올랐다. 그 뒤 후손들이 옥산(玉山)에 정착하여 살면서 옥산을 본관으로 삼았다.조선말에 옥산이 인동으로 바뀌어 인동장씨로 하였다. 그러나 일부는 지금도옥산을 본관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00:33 (11)안동 권씨(安東權氏)-629,291명 안동권씨는 신라 종성인 김씨와 같은 뿌리다. 따라서 시조 권 행(權幸)의 본래 이름은 김 행(金幸)이다. 후백제, 고려, 신라가 정립하던 후삼국 시대에 안동 지역은 전략상 요지였다. 930년의 안동전투에서 당초 열세였던 왕 건이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세력이 있다. 이들이 바로 당시 안동의 호족 김선평을 비롯 김 행과 장 길이다. 그 뒤 왕 건은 이들에게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21 00:29 (10)청주 한씨(淸州韓氏)-642,992명 (10)청주 한씨(淸州韓氏)-642,992명 청주한씨는 그 출발점을 기원전 115년 당시의 기자조선으로 한다.기자조선 마지막 왕인 41대 준왕이 위만에게 나라를 빼앗긴 뒤 금마(전북 익산시)에 마한을 세우고 스스로 한왕(韓王)이라 했다. 그 뒤 마한도 백제 온조왕에게 망한다.이때 8대 원왕의 세 아들은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 각각 귀의한다. 우평은 북원선우씨(北原鮮于氏), 우성은 행주기씨(幸州奇氏),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6 08:48 (9)파평 윤씨(坡平尹氏)-713,947명 시조 윤신달(尹莘達)은 신라 경명왕 2년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통합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태사에 이르렀다. 윤신달은 유금필, 김선평, 장길, 유차달 등 11인과 함께 고려 개국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그의 5세손인 윤 관(尹瓘,1040~1111) 장군은 고려 문종 때에 문과에 급제했다. 그는 1107년(고려 예종 3)에 별무반이라는 특수 부대를 편성한 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6 08:45 (8)광산 김씨(光山金氏)-837,008명 시조 김흥광(金興光)은 신라 신무왕의 셋째 아들이다. 그는 신라 말 무진주 서일동에 은거한다.그 후 고려 태조가 그를 광산부원군에 봉했다.그래서 후손들이 광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김흥광이 서일동에 터를 잡은 후 고려조에 와서 그의 후손들 가운데 8명의 평장사가 배출되자 사람들이 그 곳을‘평장동’이라 불렀다. 무진주 서일동은 현재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6 08:42 (7)진주 강씨(晋州姜氏)-966,710명 강씨(姜氏)의 시조는 고구려 때 용장 강이식(姜以式)이다. 고구려 영양왕 8년(서기 597) 중국 수나라는“상국(上國)인 수나라에 지성과 충절을 소홀히 한다”는 방자한 내용의 국서를 고구려에 보낸다. 이때 강이식은 “이같이 무례한 글은 붓으로 답할 것이 아니라 칼로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왕은 이를 흔쾌히 받아 들였고 강이식은 정예병력 5만 명으로 수나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6 08:37 (6)경주 이씨(慶州李氏)-1,424,866명 시조 이알평은 신라의 육촌장 중 한 사람이다. 이알평은 다른 촌장들과 함께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 공으로 유리왕이 여섯 촌장들에게 성을 하사할 때 이알평에게는 이씨의 성을 하사한다. 1세조는 신라 때 벼슬을 지낸 이거명이다. 시조 이래 대대로 경주에 살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경주를 본관으로 삼았다.경주이씨는 고려 말에 크게 세력을 떨쳤고 조선에 들어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6 08:34 (5)경주 최씨(慶州崔氏)-976,820명 (5)경주 최씨(慶州崔氏)-976,820명 우리나라 최씨의 기원은 박혁거세 탄생 전설에 나오는 신라 6부 촌장 중의 한사람인 돌산 고허촌(突山高墟村)의 소벌도리(蘇伐都利)다. 32년(신라 유리왕 9) 최씨 성을 하사 받은 것으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최씨의 실질적인 시조는 소벌도리의 24세손인 최치원(崔致遠)이다. 최치원을 1세조로 하는 경주최씨에서는 최치원의 첫째 아들 최승로(崔承老)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5 19:59 (4)경주 김씨(慶州金氏)-1,736,798명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 산맥은 ▲김해김씨와 ▲경주김씨다. 따라서 거의 모든 김씨는 이 두 김씨 중 어느 한쪽에 뿌리를 둔다. 그러나 두 김씨는 성은 같지만 뿌리가 전혀 다르다. 김해김씨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시조인 반면 경주김씨는 신라의 왕성인 김알지가 시조다.경주김씨는 신라 왕실의 3성인 박, 석, 김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경주김씨의 시조 김알지도 김수로왕처럼 탄생 설화가 전해진다. 김알지는 서기 65년 신라 탈해왕 9년 금성(金城) 서쪽 시림(계림의 다른 이름)의 나무 끝에 걸려 있던 금궤에서 태어났다. 탈해왕은 이를 기뻐하여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5 19:56 (3)전주 이씨(全州李氏)-2,609,890명 시조 이 한(李翰)은 신라 문성왕 때 사공(司空) 벼슬을 지냈으며 그 후 대대로 신라시대에 벼슬을 해왔다. 시조의 22세손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창건, 중시조가 되었다. 이성계의 직계 선대는 고려 무신정권 초기에 무인이었던 이 린(李璘)이다. 그는 시중(侍中)을 지낸 문극겸의 딸과 결혼하였다. 이 린은 무신난 주도자의 한 사람인 이의방(李義方)의 동생이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5 19:53 (2)밀양 박씨(密陽朴氏)-3,031,478명 밀양박씨는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8대군 중 밀성대군 박언침이 중시조로 밀성대군에 봉해졌다. 밀성은 밀양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밀양을 본관으로 했다.밀양박씨는 모든 박씨 가운데 종가이며 밀양박씨에서 10여 개의 본관으로 갈라진다. 밀양박씨 내에서도 여러 개로 분파되었다. 이들은 또 여러 파로 다시 나뉘어져서 전체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5 19:49 (1)김해 김씨(金海金氏)-4,124,934명 김해김씨는 우리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다. 시조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이다. 가락국은 가야 혹은 6가야라고 하며 오늘날 김해 일대에 해당된다. 김해김씨는 13세조 김유신을 중시조로 하여 그 뒤에 148파로 갈라진다. 그중에서 고려 때의 김목경(金牧卿)을 1세조로 하는 경파(京派=김녕군파)와 그의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1세조로 하는 사군파(=감무공파) 그리고 정복규의 新 \'姓氏의 故鄕\' | 정복규 | 2014-07-05 19:44 처음처음이전이전12345678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