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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이천 서씨(利川徐氏)-172,072명
(45)이천 서씨(利川徐氏)-172,072명
  • 정복규
  • 승인 2014.09.1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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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서신일(徐神逸)은 신라 52대 왕인 효공왕(재위기간 : 897~912) 때에 아간대부(阿干大夫)를 지냈다. 그러나 나라의 운이 다함을 알고 이천 효양산에 복성당을 짓고 은거하면서 자칭 처사라 하고 후진 양성에 여생을 바쳤다. 그래서 후손들이 은거지인 이천을 본관으로 삼았다. 시조의 묘소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효양산에 있으며 음력 10월 1일에 향사 한다.

시조에 관해서는 설화가 전해 내려온다. 그의 처음 조상인 서두라(徐豆羅)는 아성(阿城 : 이천의 옛 이름) 대장군으로 있었다. 서신일 대에 이르러 산촌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사슴 한 마리가 화살을 맞은 채 사냥꾼에게 쫓겨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화살을 빼주고 먹이를 주며 극진히 간호해 준 다음 산으로 놓아주었다. 그 날 밤 꿈에 백발의 산신령이 나타나서 "오늘 그대의 집에 왔던 사슴은 나의 자식으로 사냥꾼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되었는데 다행히 그대의 은덕으로 살게 되었으니 그대의 자손이 대대로 재상을 지내리라"고 했다.

나이 80이 되도록 슬하에 혈육이 없던 그는 그날부터 부인의 몸에 태기가 있어 아들을 낳았다. 그가 정민공(貞敏公) 서 필(徐弼)이요, 서 필의 아들이 바로 유명한 서 희(徐熙) 장군이다.

서 희(942~998)는 고려 초 요나라의 침략 당시 뛰어난 외교력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했다. 993년 요나라의 80만 대군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서 희는 요나라 군사들이 계속해서 항복만을 요구해 오는 것을 보고 그들의 속셈을 간파할 수 있었다. 고려가 항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소손녕은 안융진 공략에 나섰다. 그러나 요나라는 이 전쟁에서 대패한다.

소손녕의 속셈을 꿰뚫고 있던 서 희는 적진으로 나아가 담판을 짓게 된다. 서희는 요나라의 근본적인 침략 목적은 고려와 송나라의 국교 단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반박과 설득을 통해 요나라에게 철군 명분을 주었다. 소손녕은 마침내 철군하게 된다. 그러나 여진이 그 곳에 머무르고 있는 이상 완전한 고려의 땅이 아니었다. 서 희는 압록강 동쪽 280리의 개척에 나서 여진족을 몰아내고 3년 만에 강동 6주를 완성하였다.

서 희의 아들 4형제 중 맏아들 서 눌은 성종 때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형부시랑이 되어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그 뒤 상서이부시랑을 거쳐 국자제주(國子祭酒 : 교육기관의 종3품 벼슬)에 이르렀다. 딸이 왕비가 되자 덕종 초에 검교태사가 되고 이어 문하시중에 올랐다.

고려 인종조에 동지추밀원사를 거쳐 평장사에 오른 서 공은 서 눌의 증손이다. 그는 담력이 크고 지략과 무예에 뛰어나 당대에 명성을 떨쳤으며, 문신의 교만함을 탄핵했다. 예빈시윤 서찬의 둘째 아들인 서 견은 안향의 문하에서 글을 배워 공양왕 초에 사헌부장령이 되었다. 조선 세종 때 우군도총제를 지내고 우의정에 추증된 서선과 연산군 때 대사간을 역임한 서지, 대사성 서 강도 뛰어났다.

서경충은 임진왜란 때 좌부장으로 함흥ㆍ홍원 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서 일은 독립운동가로서 1911년 만주 간도에서 명동중학교를 설립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중광단을 조직하였고 김좌진 등과 북로군정서를 설치,1920년의 청산리 싸움에서 승리하는데 기여했다.

현대 인물은 서민호(국회부의장), 서진수 (한국은행총재), 서성우(문학박사, 하버드대교수, 성균관대 총장), 서경보(철학박사, 동국대 총장), 서향순(양궁국가대표 올림픽금메달리스트), 서영택(국세청장), 서성환(태평양그룹총수), 서우순(복천학원 설립자), 서기원(숭문중고교 설립자), 서성길(봉선학원 부천여상 고교 설립자), 서덕구(고원진선중학교 설립자), 서봉화(독립운동가), 서기창(독립운동가), 서성모(고원군수, 독립운동가), 서병하(독립운동가), 서강조(독립운동가), 서달수(학생독립운동가), 서준산(서울식품공업 회장), 서준호(조해산업 회장), 서해길(충남대교수), 서정일(경희대교수), 서봉연(서울대교수), 서연호(한양대교수), 서태영(부산대교수), 서두환(에너지연구소물리실장), 서두옥(제주대교수), 서남규(MIT공대교수), 서진헌(텍사스공대교수), 서광벽(공학박사), 서종범(경북대교육대학원장), 서인석(순천대교수), 서준호(서강대교수), 서경림(제주대교수), 서광민(강원대교수), 서정규(계명대교수), 서수지(계명대교수), 서원벽(의학박사), 서성인(한양대교수), 서성봉(경북대교수), 서기옥(의학박사), 서성훈(경희대교수), 서경수(동국대교수), 서성무(중앙대교수), 서운택(대구대교수), 서익환(한양대교수), 서해호(원광대교수), 서정기(광주교대교수), 서원호(대전실업전문대교수), 서태상(동국대경주분교교수), 서봉호(항공대교수), 서주노(해군사관학교교수), 서용택(인창중고교교장), 서한제(순천금당고등학교교장), 서병재(광양다압다사중학교 교장), 서강희(전주남중학교 교장), 서동훈(소설가), 서혜경(피아니스트), 서혜정(음악박사), 서영종(서예가), 서원규(내과의원장), 서홍준(소아과의원장), 서정열(신경외과의원장), 서용하(서용하의원장), 서정진(삼선의원원장), 서창용(자선의원원장), 서근호(동부시립병원안과과장), 서창선(성제의원장), 서재선(삼원의원장), 서강석(천혜의원장), 서정구(대한이화학사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주요파는 문한공파, 사인공파, 공도공파, 비인공파, 시랑공파, 사직공파, 전서공파, 예빈공파, 평장공파, 판서공파, 부사공파, 부령공파, 참봉공파, 소윤공파, 절효공파, 양경공파, 창사공파, 현령공파, 교리공파 등이다.

집성촌은 경기도 여주군 흥천면 일원,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일원, 전북 정읍시 이평면 마항리, 전북 김제시 진봉면 일원, 전북 고창군 무장면 일원, 전남 함평군 학교면 일원, 전남 나주시 봉황면 각동리 마동-안골-수각, 전남 나주시 봉황면 철천리, 전남 여천시 삼일면 일원, 전남 영암군 서호면 일원, 전남 보성군 벌교읍 영등리, 전남 곡성군 곡성읍 구원리, 전남 곡성군 곡성읍 신기리, 전남 완도군 금일읍 일원, 경북 군위군 군위읍 수서리, 경북 군위군 군위읍 대북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오산리, 경북 경주시 현곡면 하구2리 서당골, 경북 상주시 화동면 일원, 경남 밀양시 하남읍 일원, 경남 거창군 가북면 일원, 충북 옥천군 청성면 화동리 등이다.

본관 이천(利川)은 경기도 이천시의 지명이다. 568년(신라 진흥황 29) 신라에 의해 남천주(南川州)로 바뀌고, 604년(진평왕 26) 북한산주(北漢山州)로 개칭되었다. 935년(고려 태조 18) 태조가 후백제를 정벌할 때 이천군(利川郡)이라 하였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음죽군이 폐지되어 이천군에 합병되었다. 1996년 이천시로 승격되었다. 이천을 본관으로 하는 성씨는 이천김씨(利川金氏), 이천서씨(利川徐氏), 이천임씨(利川林氏)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101명이 있다. 문과 24명, 무과 33명, 사마시 44명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이천서씨는 1985년에는 총 34,157가구 144,205명, 2000년에는 총 53,407가구 172,072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1만9천여 가구, 2만8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36,380명, 부산 7,558명, 대구 3,944명, 인천 4,560명, 경기 16,479명, 강원 3,847명, 충북 2,936명, 충남 4,715명, 전북 11,070명, 전남 41,957명, 경북 5,415명, 경남 4,185명, 제주 1,158명이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41,465명, 부산 8,082명, 대구 5,322명, 인천 9,221명, 광주 14,853명, 대전 4,033명, 울산 1,987명, 경기 34,632명, 강원 3,820명, 충북 3,319명, 충남 3,184명, 전북 9,541명, 전남 22,142명, 경북 5,091명, 경남 3,990명, 제주 1,390명이다. 인천, 경기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다음 광주와 전남 지역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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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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