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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나주 임씨(羅州林氏)-236,877명
(34)나주 임씨(羅州林氏)-236,877명
  • 정복규
  • 승인 2014.08.25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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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임 비(林庇)는 고려 충렬왕 때 대장군이었다. 시조의 9세손 임 탁이 해남 감무를 지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회진으로 낙향하여 살았다. 그래서 후손들이 나주를 본관으로 삼았다. 본래는 회진임씨(會津林氏)였으나 회진이 나주에 속하면서 나주임씨로 바뀌었다. 그러나 지금도 일부 후손들은 회진을 본관으로 한다.

임 붕은 조선 중종 때 경주 부윤과 광주목사를 지냈다. 임 제는 조선 선조 때 예조정랑 겸 지제교를 지냈다. 당시 동서 양당의 싸움을 개탄하고 명산을 찾아다니며 여생을 마쳤다. 명문장가로 이름을 날렸다. 임 붕은‘화사(花史)’, ‘수성지(愁城志)’, ‘백호집(白湖集)’, ‘원생몽유록’, ‘남명소승’등의 글을 남겼다.

석촌 임 서는 병조좌랑을 지냈다. 그 후 인조반정으로 안동부사가 되었다. 같은 해에 황해도 관찰사가 되어 적폐(積幣)의 시정과 농사의 장려에 힘썼다. 이괄의 난 때 공을 세워 동지중추부사가 된다. 임서의 아들 임 담은 인조 때 문과에 급제, 유 탁의 모반사건을 척결하고 이조판서, 의금부판사를 지냈다.

조선조 나주임씨의 후손 중에서 상신(相臣)에까지 오른 인물로 임한호가 있다. 그는 정조 때 수찬, 북평사, 암행어사 등을 지냈다. 순조 3년에는 대사간이 되었으며 그 뒤 강원도 관찰사를 거쳐 1821년(순조 21년)에 우의정에 올랐다. 임득명은 시, 서, 화의 삼절(三絶)로 불리었다.

독립운동가이자 군인, 정치가, 외교관으로 활약했던 임병직(1893~1976)은 충청남도 부여군 출신이다. 1919년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비서관을 지냈다. 임시정부 구미위원부 위원으로 활동하며 미국 19개 도시에 한민친선회의 조직을 지원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학살과 고문 등의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임권택 영화감독은 나주임씨를 세계적으로 빛낸 인물이다. 그가 만든 영화로는 증언, 왕십리, 낙동강은 흐르는가, 족보, 깃발 없는 기수, 만다라, 아벤고 공수군단, 안개마을, 길소뜸, 티켓, 씨받이, 연산일기, 아다다, 아제아제바라아제, 개벽, 서편제, 태백산맥, 축제, 춘향뎐, 취화선 등이 있다.

현대 인물은 임갑수(국회의원), 임종기(국회의원), 임인채(국회의원), 임채정(국회의원), 임덕규(국회의원), 임재정(국회의원), 임채홍(국회의원), 임인규(국회의원), 임무웅(국회의원), 임종엽(전북도의회의장), 임부택(육군소장), 임종린(해군중장, 한미연합해군사령관), 임재문(육군중장), 임인조(육군중장), 임창규(육군소장), 임광택(육군소장), 임경섭(해군소장), 임상섭(공군소장), 임채수(육군소장), 임종천(육군소장), 임운택(육군준장), 임병국(육군준장), 임치규(육군준장), 임동원(통일원장관, 국정원장), 임인택(건설교통부장관), 임춘성(전북지사), 임주일(한국전력처장), 임득춘(순창군수), 임종협(김포군수), 임갑섭(교육장), 임경호(경기지사), 임성택(김제군수), 임경규(전남도의원), 임덕용(전남도의원), 임근택(전남도의원), 임석희(목포시의원), 임완규(판사), 임종옥(부장판사), 임광규(변호사), 임종선(부장판사, 변호사), 임헌택(부장판사), 임수태(판사), 임연섭(검사), 임채진(검사), 임채균(판사), 임종윤(판사), 임석무(법무부차관), 임용규(원자력박사, 과학기술처차관보), 임진규(국립원호원장), 임석우(부지사), 임인택(상공부차관보), 임정규(성균관대교수), 임종철(서울대교수), 임원택(서울대교수), 임영택(성균관대교수), 임동채(성균관대교수), 임채원(숙명여대교수, 문학박사), 임균택(대전대교수, 철학박사), 임종찬(문학박사), 임종부(법학박사), 임종대(광주교대교수), 임광택(전남대법대학장), 임영배(공학박사, 전남대교수), 임인택(이학박사, 조선대교수), 임평기(이학박사, 원광대교수), 임광행(보해회장), 임석춘(제일투자금융고문, 신한은행고문), 임철규(연합통신상무, 금성자판기사장), 임정택(농학박사), 임창택(농화학박사, 미시카고대교수), 임종만(문학박사), 임경택(정치학박사, 목포대교수), 임광호(의학박사, 조선대교수), 임만택(조선대교수), 임채균(의학박사), 임채상(의학박사), 임동익(의학박사), 임정택(의학박사), 임학택(의학박사), 임종호(의학박사), 임흥섭(의학박사), 임종섭(의학박사), 임광순(신민주전선편집위원장), 임윤수(예총충남지부장), 임무청(예총전남지부장), 임현기(서예가, 국전초대작가), 임홍규(서예가), 임승택(서양화가), 임채원(현대그룹상무이사)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24世 진(鎭), 25世 수(洙), 26世 상(相), 27世 병(炳) 묵(默), 28世 규(圭), 29世 종(鍾), 30世 택(澤), 31世 채(采), 32世 섭(燮), 33世재(在), 34世 현(鉉), 35世 해(海), 36世 동(東), 37世 환(煥) 이다.

본관 나주는 전라남도 나주시 지명이다. 백제 멸망 후 당나라가 이곳에 대방주(帶方州)를 설치하였으며,686년(신라 신문왕 6)에는 통의군(通義郡)으로,757년(경덕왕 16) 이후로는 금산군(錦山郡) 또는 금성군(錦城郡)으로 부르며 무주(武州 : 광주)의 관할로 두었고, 회진현(會津縣)·여황현(艅縣)·철야현(鐵冶縣) 등이 부속으로 영입되었다.

1018년(현종 9) 나주목으로 고쳐 5개의 속군(무안·담양·곡성·낙안·남평)과 11개의 속현(철야·반남·안노·복룡·원율·여황·창평·장산·회진·진원·화순)을 거느렸다. 고려·조선시대를 통하여 주로 목(牧), 부(府)로서 전남 지역 행정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1981년 나주읍과 영산포읍이 통합하여 금성시로 승격하여 나주군에서 분리되었고, 금성시는 1985년 나주시로 개칭되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어 나주시로 개편되었다.

나주 본관 성씨는 나주강씨(羅州姜氏), 나주김씨(羅州金氏), 나주나씨(羅州羅氏), 나주내씨(羅州奈氏), 나주노씨(羅州盧氏), 나주독고씨(羅州獨孤), 나주류씨(羅州柳氏), 나주문씨(羅州文氏), 나주박씨(羅州朴氏), 나주방씨(羅州方氏), 나주배씨(羅州裵氏), 나주백씨(羅州白氏), 나주서씨(羅州徐氏), 나주성씨(羅州成氏), 나주손씨(羅州孫氏), 나주송씨(羅州宋氏), 나주신씨(羅州申氏), 나주아씨(羅州阿氏), 나주양씨(羅州梁氏), 나주엄씨(羅州嚴氏), 나주염씨(羅州廉氏), 나주오씨(羅州吳氏), 나주이씨(羅州李氏), 나주임씨(羅州林氏), 나주임씨(羅州任氏), 나주장씨(羅州張氏), 나주전씨(羅州全氏), 나주정씨(羅州鄭氏), 나주정씨(羅州丁氏), 나주조씨(羅州趙氏), 나주주씨(羅州朱氏), 나주진씨(羅州陳氏), 나주차씨(羅州車氏), 나주추씨(羅州秋氏), 나주한씨(羅州韓氏), 나주호씨(羅州扈氏), 나주홍씨(羅州洪氏), 나주황씨(羅州黃氏) 등이다.

집성촌은 전남 곡성군 고달면 일원, 전남 나주시 다시면 일원, 전북 남원시 산동면 월석리,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전남 장성군 남면 삼태리, 전남 완도군 완도읍 망석리, 전남 완도군 청산면 국산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설화리, 충남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 전남 무안군 삼향읍 유교리, 전남 무안군 몽탄면 이산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218명이다. 문과 49명, 무과 16명, 사마시 132명, 역과 8명, 의과 4명, 음양과 8명, 주학 1명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나주임씨는 1985년에는 총 62,208가구 262,877명, 2000년에는 총 73,556가구 236,877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가구는 1만 가구 이상 늘었으나 반면에 인구는 오히려 3만 명 가량이 줄었다. 조사 과정에서 어떤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0년 현재 지역별 인구를 보면 서울 48,948명, 부산 24,508명, 대구 9,605명, 인천 11,942명, 광주 11,378명, 대전 5,153명, 울산 5,389명, 경기 41,394명, 강원 3,457명, 충북 2,790명, 충남 7,813명, 전북 14,070명, 전남 17,468명, 경북 8,630명, 경남 23,599명, 제주 733명이다. 부산과 경남 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그 다음 광주와 전남 지역에도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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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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