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의성 김씨(義城金氏)-253,309명
(31)의성 김씨(義城金氏)-253,309명
  • 정복규
  • 승인 2014.08.25 14:50
  • 댓글 0
  • 트위터
  • 페이스북
  • 카카오스토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조 김 석(金錫)은 신라 경순왕의 아들이며 고려 태조 왕 건의 외손으로 의성군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의성을 본관으로 했다. 의성은 경상북도 의성군의 지명이다. 의성김씨는 후손 김용비(金龍庇), 김용필(金龍弼), 김용주(金龍珠) 형제 대에 이르러 파가 갈린다.

의성김씨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김안국이다. 그는 김굉필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연산군 때 별시문과에 급제했다. 사림의 대표적인 인물로 전라도관찰사로 있다가 기묘사화 때 조광조의 일파라는 이유로 파직되기도 했다. 성리학 뿐 아니라 천문, 병법, 국문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동몽선습, 모재집, 모재가훈 등의 저서를 남겼다. 조광조와 같이 지치주의(至治主義)를 주장했으나 급격한 개혁에는 반대했다. 그의 문하에서 김인후, 유희춘 등이 배출되었다.

그의 동생인 김정국 역시 김굉필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으며 중종 때 황해도, 경상도 관찰사를 거쳐 병조, 형조참판을 지냈다. 기묘사화 때 관직에서 물러나 후학을 가르쳤다. 성리대전절요, 사재집 등의 저서가 있다.

임진왜란 2년 전에 황윤길과 함께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金誠一)은 이황 문하에서 공부하고 호당에 뽑혔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다. 동인이었던 그는 서인 황윤길과는 달리 침략의 위험이 없다고 보고했다. 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에서 그의 책임을 추궁했으나 같은 동인인 유성룡의 변호로 화를 면했다.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1979~1962)은 유림으로 일제시대 반일투쟁의 선봉에 섰던 애국자요 학자였다. 8·15해방 후에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으며 성균관대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의 유림을 규합하여 137명의 연명으로 독립청원서를 작성하여 국내의 향교에 배포했다. 이를 갖고 중국으로 망명한 뒤 김규식을 통해 파리 평화회의에 우편으로 제출했다.

이 사건으로 곽종석 등 수백 명의 유학자들이 체포되었는데, 이것이 제1차 유림단 사건이다. 같은 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하여 임시정부 의정원 경상도 의원으로 선출된다. 이후 교통위원으로 선임되어 활동했으며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의 파쟁을 조정하는 데 앞장섰다.

1925년에는 임시정부 의정원의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1926년 이동녕· 김구 등과 청년결사대를 국내에 파견하여 친일파와 일제의 통치기관을 박멸하기로 결정한다. 이에 따라 나석주로 하여금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폭파하도록 했다. 1927년 상하이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일본 영사관원에게 체포되어 국내로 압송된다.

14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대전형무소에서 복역 중 모진 고문을 받아 앉은뱅이가 되었다. 1934년 9월 병세가 악화되어 형 집행정지로 출옥했다. 미소공동위원회 참가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문제에 대해서는 한민당 및 이승만 계열과 정치적 입장을 달리했다.

1952년 부산 정치파동 때 이시영·조병옥 등과 함께 반독재 호헌 구국선언문을 발표하여 이승만 정권과 투쟁하다 테러를 당한다.

현대 인물은 김재춘(중앙정보부장, 무임소장관), 김명윤(국회의원, 변호사), 김도창(문교부차관, 법제처장), 김창근(국회의원), 김명근(극동건설 대표이사), 김삼상(한국물가협회장, 국회의원), 김충수(국회의원, 한국필터 대표), 김현자(12대국회의원), 김천봉(전주대교수), 김광준(국회의원, 김창환(국회의원), 김용래(서울특별시장, 총무처차관), 김홍식(금복주회장), 김유만(뉴국제호텔대표이사, 학교법인 대성교육재단 이사장), 김원섭(전북대총장), 김원룡(철학박사, 동아대교수), 김중위(국회의원), 김중명(경북대교수), 김인환(농촌진흥청장, 한국종묘협회장), 김치달(문학박사, 고려대교수), 김시진(대통령민정담당수석비서관, 삼화화성회장), 김한주(경기대총장), 김호길(포항공대학장), 김원대(계몽사회장), 김일로(농수산부기획실장, 농어촌개발협회장), 김창갑(교통부차관), 김시형(상공부무역위원회상임위원), 김원환(치안본부제1차장), 김찬규(법학박사, 경희대교수), 김충섭(삼성항공 특수사업부장), 김형근(경북도교육위원), 김종길(삼보컴퓨터 사장), 김석목(서울대물리학과교수), 김시효(태양관광 대표이사), 김성희(전남대교수), 김용현(도로공사이사), 김원(중소기업은행 이사), 김원갑(변호사), 김원국(한양대교수), 김경성(서울대지리학과교수), 김덕모(육군중장), 김태균(제일상호신용금고 사장) 씨 등이 있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항렬자는 31世 락(洛) 영(永) 호(浩) 영(泳) 연(淵) 한(漢), 32世 모(模)병(秉) 동(東) 식(植) 임(林) 상(相), 33世 환(煥) 형(衡) 대(大) 섭(燮) 창(昌) 노(魯), 34世 시(時) 규(奎) 달(達) 재(在) 성(聲) 중(重), 35世 종(鍾) 호(鎬) 용(鏞) 수(銖) 선(善) 희(熙) 현(鉉), 36世 수(洙) 원(源) 택(澤) 태(泰) 순(淳) 하(河), 37世 권(權) 목(穆) 근(根) 래(來) 직(稷) 영(榮), 38世 헌(憲) 엽(燁) 형(炯) 훈(勳) 희(熙) 덕(德) 덕(悳), 39世 규(圭) 혁(赫) 규(珪) 주(周) 재(裁) 은(垠), 40世 건(鍵) 옥(鈺) 일(鎰) 전(銓) 련(鍊), 41世 용(溶) 제(濟) 해(海) 준(浚) 홍(洪), 42世 병(柄) 정(楨) 화(和) 수(秀) 빈(彬), 43世 영(榮) 병(炳) 엽(燁) 문(文) 도(道), 44世 건(建) 배(培) 균(均) 달(達) 중(中)이다.

본관 의성은 경상북도 중앙부에 위치한 고장으로 삼한시대에 소문국(召文國)이었다. 그 후 185년(신라 벌휴왕 2) 신라에 병합되어 소문군(召文郡)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문소(聞韶)로 개칭되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일계현(日谿縣)과 고구현(高丘縣)을 합병해 의성부(義城府)로 승격했으나,1018년(현종 9)에 안동의 속현으로 병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의성현으로 유지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의성군이 되었고,1896년 경상북도 의성군이 되었다.

주요파는 첨사공파, 수사공공파, 충의공파, 찬성공파, 선략장군공파 등이 있다. 집성촌은 경북 의성군 단촌면 상화리, 경북 의성군 단촌면 관덕리, 경북 의성군 사곡면 화전리, 경북 안동시 임하면 천전리, 경북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경북 봉화군 봉화읍 해저리,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충북 음성군 음성읍 동음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모두 410명이 있다. 문과 96명, 무과 33명, 사마시 265명, 역과 4명, 의과 9명, 율과 3명이다. 문과 급제자는 김씨 가운데 경주김씨, 광산김씨, 연안김씨, 김해김씨, 청풍김씨 다음으로 많은 수다.

의성 본관 성씨는 의성김씨(義城金氏), 의성마씨(義城馬氏), 의성박씨(義城朴氏), 의성송씨(義城宋氏), 의성오씨(義城吳氏), 의성이씨(義城李氏), 의성정씨(義城丁氏), 의성홍씨(義城洪氏)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의성김씨는 1985년에는 총 53,633가구 219,947명, 2000년에는 총 79,368가구 253,309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2만6천여 가구,3만4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42,185명, 부산 18,462명, 대구 35,064명, 인천 5,842명, 경기 16,821명, 강원 7,056명, 충북 7,882명, 충남 10,298명, 전북 8,302명, 전남 4,223명, 경북 49,901명, 경남 13,679명, 제주 292명이다. 경북과 대구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45,391명, 부산 19,428명, 대구 43,420명, 인천 10,676명, 광주 2,607명, 대전 6,228명, 울산 6,460명, 경기 37,574명, 강원 5,637명, 충북 8,189명, 충남 6,441명, 전북 6,579명, 전남 1,986명, 경북 40,345명, 경남 11,837명, 제주 511명이다. 대구와 경북 지역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

 

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 핸드폰: 010- 5162- 8632

● 이메일: jungbokyu@hanmail.net


인기기사
뉴스속보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제호 : 금융소비자뉴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은행로 58 (여의도동, 삼도빌딩) , 1001호
  • 대표전화 : 02-761-5077
  • 팩스 : 02-761-5088
  • 명칭 : (주)금소뉴스
  • 등록번호 : 서울 아 01995
  • 등록일 : 2012-03-05
  • 발행일 : 2012-05-21
  • 발행인·편집인 : 정종석
  • 편집국장 : 백종국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윤정
  • 금융소비자뉴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금융소비자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newsfc2023@daum.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