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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제주 고씨(濟州高氏)-325,950명
(24)제주 고씨(濟州高氏)-325,950명
  • 정복규
  • 승인 2014.08.0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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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고을나(高乙那)는 널리 알려진 삼성혈 전설에 나오는 주인공이다. 우리나라 고씨는 모두 탐라국 고을나왕의 후손으로 한집안 한 핏줄을 자랑한다. 고씨를 세분하면 성주공파, 전서공파, 영곡공파, 문충공파, 장흥백파, 화전군파, 문정공파, 상당군파, 양경공파 등 아홉 개의 종파가 있다.

그러나 모두 고을나왕의 후손이기 때문에 고씨끼리는 종씨라고 하지 않고 일가라고 부른다. 고씨는 현재 합본하여 '제주고씨 중앙종문회'를 만들었다. 제주도에는 고씨종묘(高氏宗廟)가 있어 매년 4월이면 전국은 물론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고씨들이 모여와 제향을 올린다.

조선 초 고득종은 세종 때 한성판윤 등을 지냈으며 명나라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고태필, 고태정, 고태보, 고태익 등 네 아들이 모두 문과에 급제하여 전성시대를 누렸다.

명창 고수관(1764~1849)은 성음(聲音)이 섬세하고 아름다우며 딴 목청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여‘딴청일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당시 8명창 중 한사람으로 문장에도 뛰어나 즉석에서 많은 한시를 짓기도 했다. 신재효는 '광대가'에서 고수관이 중국의 시인 백낙천에 비교될 정도로 판소리에 뛰어났다고 밝혔다.

춘향가 중에서 특히 ‘사랑가’를 잘 불렀으며 늙어서는 병으로 코 먹은 소리를 냈는데 후세의 사람들은 이것까지 흉내를 내었다. 고수관의 출생지인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초록리에는 생가터, 묘지와 함께 그가 득음을 했다는 꽃샘터가 남아 있다.

구한말 우국충정의 의병장 고석진(1856~1924)은 전북 고창군 신림면 태생으로 을사년에 면암 최익현의 수제자로 활약했다. 학문이 심오하고 품성이 고매하여 면암 최익현이 ‘남중명사’라 극찬했다.

고영근은 명성황후의 살해에 가담했던 훈련대 2대대장 우범선을 일본까지 추적하여 목을 벤 인물이다. 우범선은 명성황후의 시신이 불태워질 때 현장에 있었고 이후 일본으로 망명, 자객 고영근의 손에 죽기 전까지 8년 동안 안락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미술사학자 우현 고유섭(1905〜1944)은 일제시대에 우리 미술사 분야를 본격적으로 연구하여 학문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학자이다.

가요‘짝사랑’의 가수 고복수는 경북 울산 출신이다. 울산에는 그의 노래비가 1991년에 건립되었으며 해마다 11월에‘고복수가요제’가 열리고 있다. 고석규(1932-1958)는 26세로 요절한 문학평론가이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하고 단신으로 월남한 그는 일찍이 문단에서 촉망을 받았다. 130편 가량의 시를 남겼으나 그의 재질은 시보다 평론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걸레스님‘중광’의 본명은 고창률(高昌律)이며 제주도에서 출생했다. 26세 때 경상남도 양산의 통도사로 출가했으나 불교의 계율에 얽매이지 않는 기행 때문에 승적을 박탈당했다. 승려이자 화가인 그는 ‘미치광이 중’을 자처하며 파격으로 일관하며 살았다. 2002년 3월 9일 타계한 뒤 양산 통도사에서 다비식이 열렸다.

우즈베키스탄의 자치공화국인 카라칼파크스탄의 고려인3세 고계월(여,2012년 현재 62세.마리나 고) 씨도 제주고씨 후손이다. 그의 부친 알렉산드르 고씨는 1937년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에 따라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주했고 이계월씨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는 72년 농업건설부 공무원으로 들어가 81년 카라칼파크스 공화국 서열 3위의 자리에 올랐다.

수도경비사령관과 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쳐 삼군사령관을 지낸 고명승 대장과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고진석은 형제 사이로 전북 부안에서 출생했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고태정(高台鼎) : 문과(文科) 세조5년(1459) 식년시 을과(乙科) 장원급제, 고영석(高永錫, 1842 壬寅生) : 문과(文科) 고종3년(1866) 알성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고운정(1850 庚戌生) : 문과(文科) 고종15년(1878) 별시 갑과(甲科) 장원급제, 고승안(高承顔, 1850 庚戌生) : 문과(文科) 세종8년(1426) 식년시 병과(丙科), 고경준(高景峻, 1839 己亥生) : 문과(文科) 철종14년(1863) 별시 을과(乙科), 고진문(高進問, 1606 丙午生) : 문과(文科) 인조26년(1648) 식년시 병과(丙科), 고덕칭(高德稱, 1606 丙午生) : 문과(文科) 세종29년(1447) 식년시 정과(丁科), 고몽현(高夢賢, 1606 丙午生) : 문과(文科) 태종2년(1402) 식년시 동진사(同進士), 고응화(高應華, 1723 癸卯生) : 문과(文科) 정조1년(1777) 증광시 병과(丙科), 고득종(高得宗, 1723 癸卯生) : 문과(文科) 세종9년(1427) 중시 을과(乙科) 등 모두 227명이 있다. 문과 35명, 무과 81명, 사마시 56명, 역과 38명, 의과 6명, 음양과 2명, 율과 9명이다.

그 밖에 현대 인물은 고희동(화가), 고재욱(동아일보회장), 고한승(아동문학가), 고광만(문교부장관), 고재필(보사부장관), 고원증(법무부장관), 고재일(건설부장관), 고건(국무총리), 고병익(서울대 총장), 고범서(숭전대총장), 고형곤(전북대총장), 고병간(연세대총장), 고황경(서울여대학장), 고재청(국회부의장), 고정훈(국회의원), 고판남(국회의원), 고귀남(국회의원), 고병현(국회의원), 고재호(대법관), 고영구(변호사), 고정권(변호사), 고광우(변호사), 고종석(장군), 고영희(장군), 고준식(포항제철사장), 고광표(대창운수회장), 고판남(한국합판회장), 고영복(서울대교수), 고승제(한양대교수), 고광도(서울대의대교수), 고정훈(천도교교령), 고은(시인), 고상돈(산악인), 고광직(전북은행장), 고흥문(국회의원), 고재석(대법관), 고담룡(국회의원), 고한준(국회의원), 고원준(국회의원), 고재일(건설부장관), 고범준(교수), 고승제(경제학박사), 고광도(장군), 고경영(장군), 고광도(의학박사), 고지형(독립운동가), 고창식(공학박사), 고창현(교수), 고한실(변호사), 고석태(약학박사), 고광삼(교수), 고재홍(교수), 고양곤(교수), 고옥현(교수), 고병규(교수), 고현기(약학박사), 고광준(서예가), 고봉주(서예가), 고동주(서예가), 고임순(서예가), 고명창(장군), 고병호(보학자), 고명균(청산학원장), 고희일(보학자), 고재혁(변호사), 고광림(법학박사), 고광만(문학박사), 고광우(변호사), 고광출(농학박사), 고길훈(장군), 고극훈(의학박사), 고근익(의학박사), 고광표(대창그룹회장), 고두동(시인), 고문룡(의학박사), 고문석(교수), 고병려(교수), 고병국(법학박사), 고태준(경제학박사), 고상겸(동아생명사장), 고석윤(변호사), 고석구(교수), 고연규(교수), 고영수(약학박사), 고영준(변호사), 고옥남(교수), 고광석(이학박사), 고인덕(독립운동가), 고인철(교수), 고일섭(교수), 고재량(변호사), 고중석(고법판사), 고효국(한일식품공업 사장), 고경희(동현치과의원장), 고광준(전북대치과대학교수), 고기종(치과의원장), 고우영(남성중 교감), 고성호(통일교육원 교수), 고수환(무형문화재), 고재섭(슬로푸드아카데미 교장)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집성촌은 충남 금산군 부리면, 전남 장성군 삼계면 능성리, 전남 신안군 임자면 도찬리, 전남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오라동,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안덕면 서광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한동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 전북 군산시 일원 등이다.

본관 제주는 탐라, 제주 등 시대에 따라 다르게 불려왔다. 신라의 속국이었던 탐라국은 938년(태조 21) 고려의 속국이 되었다. 1271년(원종 12)에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몽골에 마지막까지 항쟁을 벌이다가 1273년에 패한 후 제주도는 원나라의 직할지가 되어 목마장(牧馬場)이 설치되었다.

그 후 약 1세기 동안 제주도는 고려와 원나라 사이에 소속이 여러 차례 바뀌는 복잡한 과정을 겪다가 1367년(공민왕 16)에 완전히 고려에 회복되었다. 1946년에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어 제주도로 승격하고 북제주군 및 남제주군을 신설했다.

제주 본관 성씨는 제주강씨(濟州姜氏), 제주고씨(濟州高氏), 제주김씨(濟州金氏), 제주부씨(濟州夫氏), 제주양씨(濟州梁氏), 제주오씨(濟州吳氏), 제주이씨(濟州李氏), 제주진씨(濟州秦氏), 제주초씨(濟州肖氏), 제주한씨(濟州韓氏), 제주현씨(濟州玄氏) 등이다.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의하면 제주고씨는 1985년에는 총 75,910가구 318,015명, 2000년에는 총 100,954가구 325,950명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15년 만에 2만5천여 가구,8천여 명이 늘어났다.

1985년 당시 전국의 지역별 인구 분포는 서울 73,600명, 부산 19,545명, 대구 5,572명, 인천 13,438명, 경기 39,220명, 강원 15,159명, 충북 8,519명, 충남 22,034명, 전북 25,290명, 전남 26,996명, 경북 11,046명, 경남 16,430명, 제주 41,119명이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제주도에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그 뒤 15년 후인 2000년 현재는 서울 68,594명, 부산 18,106명, 대구 6,278명, 인천 23,345명, 광주 5,104명, 대전 9,782명, 울산 6,180명, 경기 64,040명, 강원 12,463명, 충북 9,115명, 충남 12,350명, 전북 20,525명, 전남 10,081명, 경북 9,053명, 경남 10,748명, 제주 40,186명이다. 서울과 경기 지역을 제외하고는 제주도에 가장 많이 살고 있다. 그 다음 전북 지역에도 많이 분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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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정복규 프로필

전북매일 편집국장, 논설위원

● 익산신문 사장

● 현재 새전북신문 수석 논설위원

● 현재 성씨 전문강사(한국의 성씨를 통한 역사탐구)

 ( 저 서 )

한국의 성씨: 성씨를 찾아서

한국의 성씨: 1,2권

• 칼럼집: 숲이 좋으면 새가 날아든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핸드폰이 세상을 지배한다/ 개성있는 인재를 키워라

• 유머집: 각하 코드를 맞추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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