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보험업계 현안으로 떠오른 자살보험금 미지급 문제를 속시원하게 해결할 용의가 과연 있는가 없는가.
금융당국은 삼성생명 등 생명보험사들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 가능하면 업계 자율로 지급을 유도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생보사들이 현재 관련 정관은 금융당국의 지침에 따른 것일 뿐이라며 자살보험금 지급을 회피하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보험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정부당국의 강력한 지급 독려 및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많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7일 국회 정무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최근 불거진 일부 생명보험사의 자살보험금 미지급과 관련해 "보험사가 약관을 가능한 한 지키는 것(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신 위원장은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ING생명보험은 자살이 재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데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러나 이날 신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보험업계는 '알쏭달쏭하다'는 반응과 함께 파장이 일고 있다. 그가 "보험사에서 약관을 가능한 한 지키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한 것은 언뜻 보면 해당 생보사들이 미지급한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맞다는 얘기로 들린다. 앞서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제재심의위 결과에 따라 보험소비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합당하게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만큼 당국은 보험사가 약관에 잘못 명시한 만큼 자살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분위기로 보인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통해 보험사들이 지급하지 않은 자살사망보험금이 2179억원에 이른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그렇다면 ING생명에 대한 제재 결정이 나오면 나머지 20개 생보사들은 이만큼의 보험금을 지급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 위원장의 말에서 '가능한 한'이라는 전제를 두고 있어 해석여하에 따라서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만약에 '가능하지 않다면' 자살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로도 들리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ING생명의 '자살보험금 미지급건' 논의와 관련 지난 달 26일에 이어 7월 초 제재심의위에서도 제재건을 미루고 있다. 금융당국이 눈치를 보며 제재 결정을 미루고 있는 데다, 신 위원장의 알쏭달쏭한 발언 등으로 보험권은 연신 당국과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실속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실정이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생명보험사들이 자살자 유가족에게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이들은 뼈에 사무치는 한을 안고 살게 됐다. 한마디로 가족이 죽어서도 서러운데 여기에 보험금마저 받지 못한다면 이는 유가족들을 몇번 씩이나 울리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자살보험금은 정관상 사망시 지급을 하도록 돼 있다. 가입자가 가입시 분명히 이를 알고서 확인한 다음 사인을 하는 것이 필수과정이다. 더군다나 이는 임의규정이 아니라 강제규정이다. 그런데도 생보사들은 자살보험금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법치국가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고 용납돼서도 안될 일이다.
이같은 모든 문제점을 감안 할 때 자살보험에 가입한 국민과 가족들은 피눈물이 날 수 밖에 없다.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공약은 물론 취임 초기부터 국민의 눈물을 닦아준다고 대국민 약속을 했다. 세월호 참사에서 보듯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는 것이 국가와 정부의 가장 큰 책임이자 의무가 아닌가.
그런데 거대 생명보험사들이 자신들이 정관에서 약속을 하고 보험을 판매한 뒤 가입한 국민들에게 약속을 헌신짝처럼 뒤집고 이익을 챙기기에 혈안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 위원장이 "보험사에서 약관을 가능한 한 지키는 게 맞다고 본다"고 모호하게 발언한 것은 책임있는 금융당국 총수의 국회답변이라고 할 수가 없다.
원래 재무부 출신인 신 위원장은 이 시점에서 처신을 똑바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모피아(재무부+마피아) ' 출신들의 민간기업 낙하산 진출과 정경유착 및 부패가 큰 사회문제가 되는 지금 자살보험금 미지급 파문 같은 서민을 울리는 절박한 사안의 처리를 놓고 혹시라도 생보업계의 편을 드는 인상을 준다면 이는 경제민주화 및 정의사회의 실현이라는 국정 목표와는 크게 충돌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신 금융위원장과 최 금감원장이 '자리(職)'를 걸고라도 최우선 과제로 시급히 자살보험금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게 관련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금융위나 금감원이 자살보험 가입 유가족들은 물론 국민적 관심이 매우 큰 이 문제를 만일 적당히 묻어두고 시간을 벌어보자는 속셈이 있다면 이야 말로 국민적 저항에 부딪치고 박근혜 정부에도 커다란 부담을 초래할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금융당국의 최고 책임자인 두사람에 대해서 옛 선비정신을 강조하고 싶다. 선비란 순수 우리말이며 한자로는 '士(선비 사)'나, '儒(선비 유)'로도 쓰인다. 관직에 나간 선비가 사대부(士大夫)라면, 선비(士)는 학문과 실천을 중요시하고 적당한 때가 되면 벼슬길에 나가기도 하는 인재인 셈이다. 선비는 바른 길이 목표며 명예였다. 따라서 관직 여부에 연연하지 않았다.
보험사들은 보험가입 2년 후 자살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재해사망특약이 들어간 보험상품을 판매했다. 하지만 자살사망 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 준다는 계약을 어기고 일반사망보험금을 지급해왔다. 보험사들은 2010년4월 자살시에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도록 표준약관을 개정했다. 변경 전 약관에 따라 자살시 재해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 계약 건수는 4월 현재 총 281만7173건이다. 대형사는 158만1599건, 중소형사는 58만9572건, 외국사는 64만6002건으로 집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