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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바꾼다고 학생 늘어나나...지방 국립대, 저축은행 선례 살펴야 
이름 바꾼다고 학생 늘어나나...지방 국립대, 저축은행 선례 살펴야 
  • 권의종
  • 승인 2023.04.1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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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대들이 ‘국립’으로 간판을 바꿔 달면 일시적 도움 될지 모르나 근본 처방 못 돼...‘표리부동보다 명실상부’, 형식이 실질을 이길 수 없어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불황일수록 잘되는 업종이 있다. 간판업이다. 장사가 안돼 업주가 자주 바뀌다 보면 간판 교체가 빈번해진다. 소매업만의 일일까. 대학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교육부가 국립대의 학교명을 변경하는 내용을 담은 ‘국립학교 설치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학령인구 감소로 신입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는 지방 국립대가 학교명에 ‘국립’을 추가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학교명 변경을 신청한 곳은 총 13곳. 강릉원주대 공주대 군산대 금오공대 목포대 목포해양대 부경대 순천대 안동대 창원대 한국교통대 한국해양대 한밭대 등이다. 이들 대학은 학교명에 이미 ‘국립’이라는 명칭을 사용 중이다. 사립대와 구분하기 위한 일종의 홍보 수단으로 ‘국립’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정부령 개정은 사후적 추인에 불과하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들 대학은 상징물, 관인 등에도 ‘국립’ 명칭을 쓸 수 있게 된다. 

오죽했으면 대학들이 학교 이름까지 바꾸자 했을까. 공감이 간다. 존폐 위기에 내몰린 지방대학의 절박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들 13개 대학의 평균 신입생 충원율은 2020학년도 99.7%에서 지난해 95.5%로 떨어졌다. 안동대는 99.9%에서 79.8%로, 군산대는 99.8%에서 83.3%로 충원율 하락 폭이 두드러졌다. 

지방대들이 ‘국립’으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되면 인지도 면에서 일시적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근본 처방은 못 된다. 그러기에는 인구절벽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가 심각하다. 국내 출생아 수가 지난해 24만 명대로 추락했다. 이는 2022학년도 기준 102개 수도권 4년제 대학 입학정원 19만7,333명과 35개 지방 국립대 입학정원 6만673명을 더한 25만8,006명보다도 적은 수다. 

교명 변경보다 급한 과제는 교육 혁신과 자구노력

교명 변경보다 시급한 과제가 수두룩하다. 교육서비스 질부터 높여야 한다.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응하는 혁신과 학생 중심 교육을 선행해야 한다. 정원 감축 등 구조조정 노력도 필수다. 13개 대학의 총정원은 2020년 2만2,615명에서 지난해 2만2,631명으로 되레 16명 늘었다.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대학이라 해서 자구노력은 안 하고 덜렁 교명 변경을 요구하는 대학이나, 이를 넙죽 승인하는 교육부나 사려 깊지 못한 건 마찬가지다. 

학령인구 감소 대비도 해야 한다. 2006년부터 16년간 282조 원의 천문학적 예산을 쏟아붓고도 합계출산율 0.78명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빚은 정부의 저출산 대책을 너무 믿어선 안 된다. 해마다 줄어드는 국내 고교 졸업생 모집에만 목을 맬 게 아니다. 해외로도 눈을 돌려야 한다. 다국적 학생을 유치해 외국어로 강의하는 선도적 대학들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간판 교체’의 흑역사는 금융권이 원조일 수 있다. 시중은행 대부분이 이름이 바뀌었다. 저축은행의 역사는 명칭 변천사라 할 수 있다. 모태는 '무진(無盡)회사. 무진회사는 지하 금융의 허점을 활용해 탈세와 고리 대출을 일삼았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정부가 ‘신용금고’를 만들었다. 신용금고는 은행이 아니어서 은행법 보호를 받지 못했으나 은행법 의무도 지지 않다 보니 불법 자금 유통 경로로 악용되기도 했다.

1972년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8.3 사채 동결 조치가 발동되면서 지하 금융, 이른바 사채시장을 제도권 금융으로 흡수하면서 신용금고가 ‘상호신용금고’라는 이름으로 바뀌면서 양성화됐다. 2001년 3월 상호신용금고법이 상호저축은행법으로 개정되면서 이름이 다시 상호신용금고에서 ‘상호저축은행’로 바뀌었다. 2009년 상호 단축이 허용되면서 지금의 ‘저축은행’이라는 이름이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여러 차례 이름 바뀐 저축은행, 태생적 한계 여전

이름이 여러 차례 바뀌어도 저축은행의 태생적 한계는 여전하다. 일반 은행보다 불리한 여건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 불평등 구조다. 은행에서 거절된 신용도 낮은 고객을 대상으로 고금리로 대출을 하는 수 밖에 없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고수익·고위험 사업에 치중하게 되고, 이를 위해 고금리 예금을 유인해야 하는 악순환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그만큼 부실 확률이 높아지고,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 기관 존립까지 위협받는 곤경에 처하게 마련이다. 

작금 저축은행이 처한 상황도 비슷하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부동산 PF 사업장의 지연과 중단 우려 등으로 고위험 사업장 비중이 높은 저축은행권이 부실화로 연쇄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저축은행의 자본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지며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주장이 꼬리를 문다. 실제로 소규모 저축은행을 중심으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급감하는 상황이다.

저축은행이 겪는 어려움을 은행으로 이름을 바꿔 단 탓으로만 돌릴 순 없다. 그렇다고 그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도 없다. 은행도 아니면서 은행 이름을 달고 있다 보니 소비자에게 은행으로 오인되는 혼선을 빚을 수 있다. 높은 이자율만 보고 분식회계를 한 부실 저축은행의 후순위채에 투자했다 막대한 피해를 봤던 2009년 저축은행 사태가 바로 그러한 예다. 

형식이 실질을 능가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형식이 실질에 영향을 미친다. 겉에 드러나는 이름과 속에 있는 실상이 일치해야 하는 이유다. 국립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학생을 모집하려는 대학은 은행 이름을 달고 나서 저축은행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름이 중요하나 이름만 중요한 건 아니다. 표리부동보다 명실상부가 낫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서울이코노미포럼 공동대표
- 전국퇴직금융인협회 금융시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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