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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짓’은 누가 하는가
‘무례한 짓’은 누가 하는가
  • 류동길
  • 승인 2022.10.2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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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동길 칼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감사원으로부터 서면조사 요청을 받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는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 시도는 무례하다”고 맞장구치고 “정치 보복”, “공포 정치” 등의 험악한 표현들을 남발하며 문 전 대통령을 감싸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전직 대통령은 감사에서 제외되는 불가침 성역이 아니라고 받아쳤다.

논란이 일자 감사원은 입장문을 통해 질문서를 보낸 것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의 기본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은 감사원의 질문서에 답변을 보냈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질문서 수령을 거부했다는 전례들을 소개하면서, 다른 전직 대통령들은 문 전 대통령처럼 고압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과연 ‘무례한 짓’을 한 것인가? 대한민국 공무원이 북한군에 사살되기 전에 구출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월북몰이’를 한 정황과 증거가 뚜렷한 상황에서 국정 최고책임자였던 전임 대통령에게 질문서를 보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퇴임한 대통령이 적법하고 정당한 수사기관의 수사나 감사원의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법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건 법 위에 군림하라고 특권을 부여한 게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무례하다’고 주장하는 건 질문서를 보내서도 안 되고 어떤 걸 물어서도 안 된다는 얘기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국가기관인 감사원에 대해 ‘감히 얻다 대고!’라는 식의 특권 의식을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없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사건 당시 고등학생이던 피살 공무원의 아들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직접 챙기겠다”고 다짐했지만 말짱 빈말이었다. 그 대신 관계 자료를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해 15년간 공개를 막았으니 뒤통수를 단단히 친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의 과거 발언을 보라. 2016년 11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의 대면 조사 요청을 거부하자 “대통령이라고 예우할 게 아니라 피의자로 다루면 된다. 퇴임 후 불기소 특권이 없어지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이 했던 발언을 기억한다면 국민에게 무례하기 짝이 없는 ‘무례하다’ 같은 오만한 반응을 보일 수는 결코 없었을 것이다.

감사원은 지난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의 여러 증거가 왜곡·은폐됐다는 내용의 감사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문 정부는 고(故) 이대준 씨를 구조하기 위한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고, 북한군이 이 씨를 사살하고 시신을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도 청와대 국가안보실 주도로 국방부와 해경 등이 은폐⸳조작해 ‘자진 월북’으로 몰아 대국민 발표를 했고, 국방장관과 국정원은 첩보 보고서 등 관련 자료 106건을 삭제했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국가기관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감사원은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 등 5개 기관 20명에 대해 직무 유기, 직권 남용, 허위 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서 전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로 윗선 수사를 본격화한 검찰은 진실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문 전 대통령이 이 사건을 보고 받은 것은 2020년 9월 22일 오후 6시 36분이고, 이 씨가 피살된 것은 오후 9시 40분께다. 그 3시간여 동안 문 전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가도 밝혀야 한다.

이 사건은 진실을 밝히면 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정치적 쟁점이 돼 있다. 진실을 제대로 가려내지 못하면 우리는 ‘국가가 왜 존재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월북몰이’ 정황이 분명하게 드러났는데도 민주당은 “정치 탄압용 감사”라며 “월북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고 억지를 쓰고 있다. 월북이라는 증거를 대지 못하면서 월북이 아니라는 증거를 대라는 게 말이 되는가. 참으로 어이없다.

무례한 짓이 어디 이뿐인가? 정치판에서 옳고 그른 것을 가리는 잣대가 부러진 건 오래전이다. 정치판의 말싸움과 막말, 거짓말은 여전하고 나날이 그 도를 더해 간다. 국정감사장에서도 무례한 짓들은 넘쳐난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들이 서로 삿대질하고 ‘아무 말 잔치’를 벌이는가 하면, 증인이나 수감기관 관계자들을 상대로 함부로 고함치고 윽박지른다. 어느 국민도 그렇게 국민 위에 군림하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걸핏하면 국민을 들먹인다. 대한민국 국민이 왜 이런 꼴을 보고 살아야 하나. 이런 못된 버르장머리는 차제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류동길 (yoodk99@hanmail.net )

숭실대 명예교수
남해포럼 공동대표
(전)숭실대 경상대학장, 중소기업대학원장
(전)한국경제학회부회장, 경제학교육위원회 위원장
(전)지경부, 지역경제활성화포럼 위원장

저 서

경제는 정치인이 잠자는 밤에 성장한다, 숭실대학교출판부, 2012.02.01
경제는 마라톤이다, 한국경제신문사, 2003.08.30

`정치가 바로 서야 경제는 산다` 숭실대학교출판국, 2018.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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