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풍연 칼럼] 내가 법조를 오래 출입한 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이번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개정은 분명 잘못 됐다. 국회 본회의 통과, 정부 법안 공포라는 절차를 거쳤지만 졸속 그 자체였다. 민주당은 숫적 우위를 바탕으로 밀어붙였고,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이었다. 이 과정에서 공정과 상식은 없었다. 정작 이 나라의 주인인 국민들이 끼어들 여지도 막았다. 오로지 그들의, 그들에 의한 법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법을 새로 만들고 바꿀 때는 먼저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 입법의 대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들이 생략됐다. 국민의 의사를 묻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들은 말로만 국민을 외친다. 검수완박법은 국민을 위한 법이 아니다.
오히려 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빼앗았다고 할 수 있다. 경찰 수사가 미진하고, 불만이 있더라도 더 이상 하소연 할 데가 없어졌다. 그럼 누가 손해를 보는가.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입는다. 빈대를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검찰이 오만했던 것은 맞다.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왔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다. 나도 칼럼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그렇다고 검찰의 손발을 거의 모두 자르는 것은 또 다른 입법 독재이자 횡포다. 앞으로 거악 척결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정치권력이나 선거사범 등은 거리를 활보하고 다녀도 손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이 검찰처럼 수사를 할 리 없다. 따라서 여야 정치권은 함께 웃을 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은 3일 오전 국회 본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인 형사소송법 개정안까지 처리했다. 앞서 지난 달 30일에는 검찰청법을 통과시켰었다. 검수완박법 처리가 끝난 순간이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오후 국무회의를 열어 ‘검수완박법’을 공포하자 법조인들은 “문 대통령이 스스로에게 ‘검찰 수사 면제권’을 부여했다”고 비판했다. 맞는 지적이다. 문 대통령도 기대했던 바 아니겠는가.
박성진 대검 차장 검사(검찰총장 직무대리)는 오후 4시 30분 서초동 대검에서 브리핑을 열고 “국회는 물론 정부에서조차 심도 깊은 토론과 숙의 과정을 외면하는 등 법률 개정의 전 과정에서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이 준수되지 않아 참담할 따름”이라며 “앞으로 헌법소송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검토하는 등 적극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앞서 대검은 이날 오전 전국 검찰 구성원 3376명이 보낸 호소문을 청와대에 전달하고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헌법에 규정된 재의 요구권을 행사해 주실 것을 마지막으로 간곡히 호소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검수완박법은 보수건 진보건 가진 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제도로서 기능한다. 특히 정치 권력의 한 귀퉁이라도 차지한 자들은 쾌재를 부를 만한 제도이다”.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신평 변호사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대한민국 형사법 체계는 이처럼 하루 아침에 무너졌다.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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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약력>
전 서울신문 논설위원,제작국장, 법조대기자,문화홍보국장
전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전 대경대 초빙교수
현재 오풍연구소 대표
<저서>
‘새벽 찬가’ ,‘휴넷 오풍연 이사의 행복일기’ ,‘오풍연처럼’ ,‘새벽을 여는 남자’ ,‘남자의 속마음’ ,‘천천히 걷는 자의 행복’ 등 12권의 에세이집평화가 찾아 온다. 이 세상에 아내보다 더 귀한 존재는 없다. 아내를 사랑합시다. 'F학점의 그들'. 윤석열의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