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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엔저(円低) 비상, 남의 일 아니다...‘바다 건너 불’이 ‘발등에 불’
日 엔저(円低) 비상, 남의 일 아니다...‘바다 건너 불’이 ‘발등에 불’
  • 권의종
  • 승인 2022.04.05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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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화 약세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 차원의 대응 긴요...수출 비중 높고 일본과 경합 큰 산업 지원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가난한 일본’. 요즘 들어 언론에 부쩍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싸구려 일본’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정도다.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던 엔화가 달러화 대비 6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추가 하락 가능성도 거론된다. 달러·엔 환율이 135~140엔까지 떨어질 거라는 예상도 있다. 원·엔 환율도 1,000원 밑으로 빠졌다. 2018년 12월 4일 980.33원을 기록한 이후 3년 3개월 만에 최저치다. 

종전과는 판이한 양상이다. 지난날 엔화가 기축통화로 대접을 받았던 데는 일본의 경상수지가 흑자기조를 이어갔고 세계 최대 규모의 대외순자산을 보유했던 점과 관련이 컸다.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일본의 대외 투자자산이 본국으로 송금되어 엔화 강세를 뒷받침했다. 다 지난 옛날얘기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원유와 곡물 등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운데 심화한 엔저 현상이 일본의 무역수지 악화를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일본의 2월 무역수지가 6천682억엔 적자를 기록했다. 작년 8월부터 7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그동안 일본은 무역수지에 적자가 나도 자본수지에서 흑자를 보여 경상수지는 플러스였다. 이제는 경상수지 흑자 가능성도 희미하다. 전망은 엇갈린다. 코로나19 등으로 억눌렸던 경기가 회복되면서 엔저 현상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연준의 긴축 가속화 가능성, 무역수지 악화 등이 엔화의 추가 하락 요인으로 작용할 거라는 예상도 제기된다.

안되는 데는 이유가 많다. 엔저 원인에 대한 진단 또한 구구하다. 크게 3가지다. 우선은 일본의 완화적 통화 정책에 책임을 돌린다.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등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 정책을 긴축으로 방향을 트는 가운데 유독 일본만 반대로 가는 데서 원인을 찾는다. 실제로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를 피해 엔화를 팔고 떠나는 자금이 늘었고 그 결과 엔화 가치가 하락했다. 

안전자산으로 대접받던 엔화, 달러 대비 6년 만에 최저 수준...추가 하락 가능성마저 거론

긴축기조는 이어질 기세다. 일본은 20년 넘게 디플레이션에 시달려 왔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는 앞으로도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해 완화적 통화 정책을 이어갈 뜻을 내비쳤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8%, 유럽은 6%에 가깝지만, 일본은 1%가 채 안 된다”라며 “미국과 유럽이 금리를 올리는 등 통화 정책에 나서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일본이 따라 할 이유는 전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일본 중앙은행이 자국의 채권 금리 상승을 방어하기 위해 국채를 매입하는 점도 엔저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의 하나다. 최근 일본의 자산구조가 변화한 것도 엔저 현상에 한몫 했다. 일본 내 재산들이 현금, 주식 등 가처분 자산 비중이 높았던 구조에서 해외 직접투자, 비트코인 등 외화 헷지용으로 자산 구조가 변하면서 단기 유동성 여력이 약화됐다.

두 번째 이유는 심각하다.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 원유와 원자재 가격상승의 영향을 크게 받는 점이다. 장기간에 걸쳐 누적된 무역적자에 더해 국제 원유와 원자재 수입 가격 부담이 엔화를 찍어누르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국가부채까지 높은 나라다. 2021년도 기준 일본의 국가부채 비율은 257%에 이른다. 동일선상의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부분이다. 

마지막 요인은 일본 경제의 대외적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이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전 만해도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점하는 비중이 15%가 넘었다. 경제 대국의 막강한 위상을 과시했다. 지금은 그 자리를 중국에 내준 상태다. 중국 위안화가 엔화를 대체하면서 엔화는 글로벌 안전자산 순위에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신세가 처량해졌다.

달러당 엔화 가치 하락...일본 수출기업엔 유리하나,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는 불리하게 작용

한가로이 남 얘기나 할 때가 아니다. 원화 가치 추락 또한 심각하다. 원화가 많이 떨어졌으나 엔화가 더 떨어지다 보니 체감이 힘들 뿐. 엄중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엔저 현상이 국내 산업계에 미칠 파장에 긴장해야 한다. 엔화 약세는 일본 수출기업에 유리하고 일본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달러 당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해외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달러 표시 가격이 낮아진다. 그만큼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다. 

일본과의 수출 경합도가 높은 석유화학, 철강, 기계, 자동차 등의 업종이 '엔저 영향권'에 들 가능성이 크다. 한국 수출의 상위 100대 품목 중 일본 수출 상품과 겹치는 품목이 55개에 이른다. 이들 품목 수출이 한국 총수출의 54%를 차지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엔화 가치가 10% 하락할 때마다 한국의 무역수지는 약 15억 달러 정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여기에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의 엔저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태도다. 

환율 개입은 어렵다. 원화와 엔화는 외환시장에서 직접 거래되지 않아 달러화 대비 가치를 비교한 재정환율로 두 통화의 상대적 가치가 산출된다. 우회적으로나마 개입 여지가 있는 원·달러 환율과 다르다. 엔화 약세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긴요한 이유다. 수출 비중이 높거나 일본과 경합이 큰 산업에 대한 지원이 절실하다. 무역금융 확대와 신용보증 특례지원을 통한 유동성 확보와 함께 물류 바우처 확대, 해외 바이어 연계 등의 지원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 경제의 태생적 한계를 늘 유념해야 한다.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내수시장이 협소하다. 해외에서 돈을 벌어와야 먹고 살 수 있는 고단한 구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해 한국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이 87.5%에 달했다. 엔저 비상을 ‘바다 건너 불’로만 지켜봤다간 큰코다칠 수 있다. 우리 ‘발등에 불’로 알고 이를 끌 궁리를 서둘러야 한다. 역대 최고 수출에도 1분기 무역수지가 14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남 생각할 겨를이 없다. 당장 우리 코가 석 자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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