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고무신-막걸리 선거, 잘 받아먹되 투표는 똑바로 합시다
현대판 고무신-막걸리 선거, 잘 받아먹되 투표는 똑바로 합시다
  • 정종석
  • 승인 2022.01.28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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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조 규모의 추경 등 대선을 앞두고 내놓는 정부의 각종 정책이 2022년판 ‘고무신 선거’ 논란 불러일으켜
1월 추경은 지난 1951년 이후 71년 만의 일...국제신용평가사 피치, "한국 대선후보들 ‘퍼주기 공약’" 우려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몇해 전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선거, 민주주의를 키우다’ 기획특별전에선 우리나라 선거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300여점의 자료가 전시됐다. 전시장 한쪽엔 요즘은 보기 힘든 막걸리통과 고무신도 보였다. 모두 불법선거운동에 동원된 물품들이었다.

해방 후 1950년대∼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는 막걸리와 고무신 선거가 유행했다. 유권자에게 막걸리와 고무신, 비누, 부채 등을 나눠주고 표를 부탁하는 것이다. 선거 유세장은 대개 경향 각지의 국민학교(현재의 초등학교) 운동장이었다. (서울 같으면 장충단공원이나 한강백사장에서도 대규모 선거유세가 벌어졌다)

입후보자가 유세를 시작하기 전 플라타너스 나무그늘이 드는 학교담장이나 철봉대 주변에서는 으레 막걸리판이 벌어졌다. 이렇듯 선거가 있을 때면 동네사람들은 유세장에 나가서 너도 한 잔, 나도 한 잔하면서 잔치판을 벌였다.

돈푼이나 있는 선거입후보자가 나눠주는 고무신 한 켤레도 가난한 농가에서는 더 없이 요긴했다. 그 고무신을 신고 논밭에 나가서 일을 하고 장도 보고 어린아이들은 학교도 다녔다. 그 당시에는 물자가 귀해서 고무신 뿐만 아니라 수건 한 장도 아쉬울 정도로 나라경제가 가난했다.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 등 대선을 앞두고 내놓는 정부의 각종 정책이 2022년판 ‘고무신 선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월 추경은 지난 1951년 이후 71년 만이다. 그만큼 코로나 난국을 맞은 가운데 추진하는 이례적인 편성이다.

그런데도 여야는 불만을 드러냈다. 정부의 추경 규모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야는 한목소리로 증액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선 후보가 언급한 35조원 상당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신년 추경 증액에 원칙적으로 찬성하고 있다. 앞서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이번 추경에 반영돼야 할 7가지 요구 사항을 기재부 측에 전달하면서, 소요 재원 규모로 약 32조∼35조원을 거론했다. 야당은 지원 규모 확대와 함께 재원 마련 방법으로 올해 본예산의 세출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선 앞두고 경제지표 좋게 보이게 하거나, 여당의 집권에 도움이 될만한 정책을 선거 전으로 앞당겨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올해 첫 추경안은 1997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 직전에 편성되는 추경이다. 당시에는 외환위기라는 국가비상사태로 추경이 불가피했을 때였다.

재정당국은 그동안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기 위해 중요한 선거 직전에는 추경을 편성하지 않아 왔다. 이번에 그 관행이 깨진 셈이다. 특히 본예산이 전년도 12월에 통과된 상황에서 새해 예산을 써보지도 않은 채 추경을 편성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문제는 이 막대한 추경 말고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지표를 좋게 보이게 하거나, 여당의 집권에 도움이 될만한 정책은 대통령 선거 전으로 앞당겼다는 점이다.

정부는 전기ㆍ가스요금에 이어 철도 요금과 고속도로 통행료, 지방 상하수도 요금도 1분기에 요금 인상을 억제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그동안 누적된 공공기관 적자가 산더미라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 말기 경제 성적표 중 하나인 물가지표를 나아 보이게 하려고 공공요금을 1분기 중 무리하게 억누른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설 명절 전 노인ㆍ장애인 등에 직접 일자리 60만 명 이상을 제공한다. 정부는 올해 3조3000억원 예산을 들여 만든 직접 일자리 106만 개 중 절반 이상을 이달 몰아서 공급한다. 여기에 오는 3월로 예고된 1주택 보유자의 재산세와 종부세 완화 대책도 선거 전인 3월 초에 발표될 수 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반면 계속 끌고가기 부담스러운 정책은 차기 정부로 넘겼다. 전 금융권 대출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 예대율 등 금융 규제 유연화 조치는 3월 말이면 끝난다. 그 사이 불어난 가계ㆍ기업 대출이 금융 지원 종료, 금리 인상과 맞물려 금융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11월 시행한 유류세, 액화천연가스(LNG) 할당 관세 인하 조치도 4월이면 끝난다.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야의 유력 대통령 후보들도 정부의 이런 선심성 정책기조에  사실상 '짝짜꿍'을 하고 있다. 일단 유권자의 환심을 사고 보자는 식의 정책인줄 잘 알면서도 사상 초유의 돈풀기-포퓰리즘 경쟁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막걸리-고무신 선거, 현금봉투 시대를 거쳐 이제 정치인들의 '표()퓰리즘'으로까지 진화

1960년대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어두운 선거문화가 성행한 다른 이면에는 가난했던 당시 생활상을 반영한다. 막걸리 한 잔, 고무신 한 짝으로 유권자의 관심을 호소했던 것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국민들의 생활이 그만큼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보릿고개 시절 후보자가 주는 막걸리 한잔, 고무신 한 켤레에 혹했던 건 어찌보면 인지상정이었다. 그렇게 선거 매수의 흑역사는 막걸리·고무신에서 현금 봉투를 거쳐 이제는 교묘한 포퓰리즘으로 바뀌고 있다. 그때는 주는 이도, 받는 이도 몰래 숨어서 했다. 이것이 부정한 것이고 부끄러움을 알았다. 그런데 지금은 여야가 대놓고 뻔뻔하게 한다는 것이 문제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한국 국가채무비율의 지속적 상승 전망이 신용등급 압박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귀담아둘 일이다. 특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선 후보들의 잇따른 나랏돈 지출 공약에 우려를 표했다.

피치는 최근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발표하며 이례적으로 대선 후보들의 재정지출 공약에 주목했다. 피치는 “대선 후보들이 경제 회복을 위한 재정지원 약속을 지지하고 있어 재정 안정화는 대선 이후에도 빠르게 달성하기 어려울 전망”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대선후보들의 ‘나랏돈 지출 공약’을 우려, 나랏돈 씀씀이를 늘리는 대목을 짚은 것이다.

이제 다음 대통령선거가 40일 밖에 남지 않았다. 한국은 과거 고무신 선거를 했던 그 가난한 나라가 수십년 만에 세계 10대 경제대국 반열에 올라섰다. 이에 걸맞게 막걸리-고무신은 현금봉투 시대를 거쳐 이제 정치인들의 '표()퓰리즘'으로까지 진화했다.

그 당시 막걸리나 고무신을 돌릴 여유가 없는 야당 후보들이 연단에 올라 소리쳤다고 한다. “유권자 여러분, 막걸리는 사양말고 마시되 표는 딴 사람을 찍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 태풍에 부대끼고 휘청대며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유권자 여러분, 여야후보들이 시혜성 포퓰리즘  정책을 베풀면 잘 받아먹되, 투표는 똑바로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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