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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대선후보와 금융당국자들 꼭 읽어보라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대선후보와 금융당국자들 꼭 읽어보라
  • 권의종
  • 승인 2022.01.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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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사들 사상최대 흑자행진 속 벌어지는 예대금리...정부가 공급자·소비자 잇는 ‘사잇꾼’ 돼야
금리 급등에 금융소비자 부담 가중돼...“금리 결정에 간섭하기 어렵다”는 건 정부의 책임 회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적이 아니라 경협, 즉 경쟁하면서 협력하는 게 중요하군요.” “그렇지, 에너미(enemy)는 안 돼. 라이벌(rival)이어야지. 라이벌의 어원이 리버(river)야. 강물을 사이에 두고 윗동네 아랫동네가 서로 사이가 나빠. 그런데도 같은 물을 먹잖아. 그 물이 마르고 독이 있으면 동네 사람이 다 죽으니, 미워도 협력을 해. 에너미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살지만, 라이벌은 상대를 죽이면 나도 죽어. 상대가 있어야 내가 발전하지. 같이 있는 거야. 기업도 마찬가지라네.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는 에너미가 아니라 라이벌이야. 큰 조직은 작은 조직의 모험 정신을, 작은 조직은 큰 조직의 시스템을 배우며 수시로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해야 해.”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의 위 소절을 읽으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천 마디 말로도 설명이 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어찌 이리 간결하고 명쾌히 정의할 수 있단 말인가. 지혜의 말씀에 고개가 절로 숙어진다. 죽음을 앞둔 금 시대 큰 스승의 마지막 메시지를 접하는 것 같아 가슴이 미어진다.

이게 어디 기업에만 국한되는 얘기일까. 어찌 보면 금융에 관한 이야기일 수 있다. 공급자와 소비자가 라이벌이 아닌 에너미로, 경협이 아닌 대적으로 살아가는 한국 금융의 볼품없는 자화상을 꾸짖는 질책으로 다가온다. 코로나 팬데믹과 경기침체로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 금융소비자를 상대로 금융회사는 사상 최대의 흑자 행진을 벌이고 있다. 예금금리는 낮게 쳐주면서 대출금리는 높게 매겨 과도한 예대마진을 챙기고 있다. 

수급자간 금융 불균형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한층 노골화되고 있다. 0.5%를 유지하던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다섯 달 만에 1.25%로 두 배 반 올랐다. 기준금리가 오를 때마다 은행이 예·적금 금리도 올리긴 했으나 대출금리 상승 속도가 더 빨라 예대금리차가 시나브로 커져 왔다. 현재도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1%대인데 신용대출 금리는 연 5%대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금융시장의 공급자와 소비자는 에너미가 아닌 라이벌...대적 아닌 경쟁과 협력으로 상생해야

요즘처럼 금리가 급상승하는 상황에서는 예금금리가 오른 이상으로 대출금리가 오르는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예대금리차의 간극이 여간해서 좁혀지기 어렵다. 한국은행 자료만 봐도 쉽게 확인된다. 실제로 이달 기준 5대 은행의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3.89%로 전년 동기 2.76% 대비 약 1.13%포인트 늘어났다. 반면 예금금리의 경우 평균 1.68%로 전년동기 0,9% 대비 0.78% 포인트 증가에 그쳤다.

예금금리가 오르면 변동형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등 주요 대출금리도 덩달아 치솟는 구조도 문제다. 연결 고리에 대출의 기준금리로 활용되는 코픽스가 있다. 코픽스는 은행이 대출을 위한 자금을 모으는 데 든 비용을 나타내는 지수다. 코픽스는 국내 8개 대형 은행의 정기예금·금융채 등의 금리를 가중 평균해 산출된다. 이 중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는 게 예금이다. 예금금리가 오르면 코픽스와 대출금리가 차례로 오르는 이유다.

해결의 실마리를 금융 공급자와 소비자가 생명공동체라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예금금리와 대출이자의 차익이 커지면 우선 당장은 은행에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소비자 부담 증가가 여신 부실화로 이어지면 종국적으로 은행에도 부메랑으로 돌아온다. 같이 죽는 길이다. 한은 통계에 따르면, 2021년 11월 기준 가계대출 75.7%, 기업대출 67%가 금리 상승 위험에 노출된 변동금리 상품이다.

정부가 해결사로 나서야 한다. 그러라고 있는 금융당국이 무슨 연유에서인지 소극적이다. 과도한 개입과 간섭으로 관치의 오명을 뒤집어쓴 처지인데도 유독 금리 문제에서만큼은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그래도 말은 그럴싸하다. “예대금리차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사실상 자율에 맡겨진 은행의 금리 결정에 간섭이 쉽지 않다"는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누가 봐도 분명한 책임 회피다. 
 
예대 차익 커지면 당장은 은행에 유리하나...여신이 부실화로 이어지면 결국은 은행에 부메랑

이를 지적하고 나무라야 할 언론은 문제의 핵심에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그저 변죽만 울리는 수준이다. 대출금리가 오르면 ‘영끌’ ‘빚투’ 등으로 무리하게 집을 마련한 2030 세대의 피해가 심각해질 거라는 투의 보도나 하고 있다. 걱정인지 조롱인지 얼른 분간이 안 간다. 

급기야 정치권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벌어지는 예대금리차를 해결하겠다는 공약이 등장했다. 한 대선 후보가 "시중은행들이 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차이를 주기적으로 공시하도록 하겠다"며 "또 기준금리 변동 시 예대금리차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경우에는 담합의 요소가 있는지 등을 면밀히 살피도록 해서 금융소비자를 보호할 계획"이라 밝혔다. 양은 차지 않으나 공약(空約)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어령 선생님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한 해답을 주신다.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뭔 줄 아나. 인터페이스야. 위치로 보면 목!. 머리와 가슴을 잇는 이어주는 목!, 손과 팔을 잇는 손목, 발과 다리를 잇는 발목, 모든 국가, 모든 기업, 모든 개인은 이 ‘목’이 가장 중요해. 사람 꼼짝 못 하게 할 때 어떻게 하나? 목에 칼을 씌우고, 손목에 수갑 채우고, 발목에 쇠고랑 채우지. 인터체인지를 묶는 거야.” “우리 어릴 때 놀 때 어른들이 “사이좋게 놀아라” 그러잖아. 그 사이가 ‘목’이야. 목이 막히지 않은 게 편안한 상태야.” 

요지인즉 정부가 금융시장 혼란을 방관만 할 것이 아니라, 나서서 공급자와 소비자의 목을 잇는 공존과 상생의 ‘사잇꾼’이 돼달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현자의 논지를 금융당국이 차분히 음미해야 할 것이다. 주제넘은 사설인 줄 알지만,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를 소일삼아 읽어주기를 바란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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