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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이 무슨 동네북인가...구멍 '숭숭' 뚫린 가계부채 총량제
금융이 무슨 동네북인가...구멍 '숭숭' 뚫린 가계부채 총량제
  • 권의종
  • 승인 2021.11.29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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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의도 규제라도 나쁜 결과 올 수 있어...금융을 억누르거나 옥죄면 안 되고 부동산 문제 등 근본 원인 해소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대한민국 금융사전에는 없는 단어가 있다. ‘자율’이다. 대신 그 자리에 ‘관치’가 들어가 있다. 관치도 잘만 하면 환영이다. 나쁜 관치가 문제다. 작금의 금융정책에서 혼선이 잦다. 가계부채 위험 해소를 위한 대출총량 규제가 삐걱거린다. 갖은 애를 쓰고 온갖 수단을 망라했건만 결과가 영 신통찮다. 경기침체와 코로나19의 변수 앞에서 맥을 못 추는 모양새다.

정부는 시장 개입에 적극적이다. 소득 주도 성장이라는 국정과제에 맞춰 가계부채 억제를 위한 대출 총량제를 시행했다. 가계부채 총량제란 무엇인가. 이름 그대로다. 총수입의 일정 상한선 이상으로 부채를 일으키지 못하게 제한하는 것을 말한다. 간단히 말해 수입에 맞춰 부채 범위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2017년 8월 금융위원회는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합리화를 위한 대출 감독규정을 개정했다. 2018년 3월부터는 상환능력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했다. 이후로도 가계부채 대책 후속 조치 및 가계대출 동향 점검을 통해 금융권 여신관리·감독을 강화했다. 그 덕에 연도별 가계부채 증가율이 낮아졌다. 2016년 11.6%에서 2017년 8.1%, 2018년 5.9%, 2019년 4.1%로 하향 커브를 그렸다.

돌연 상황이 반전되었다. 2020년 3월 이후 코로나19가 창궐하며 가계부채 증가율이 되살아났다. 2020년 7.9%로 치솟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생계형 긴급대출이 급증했다. 저금리 등 완화적 금융 여건에 부동산·가상화폐·주식 투자 열풍이 불러온 ‘빚투’, ‘영끌’ 붐까지 겹쳤다. 올 3분기 말 가계부채 잔액이 1,844조9,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전년 동기 대비로는 163조1,000억 원 증가한 수준이다.

가계부채 조이는 대출 총량제 ‘삐걱’...예대마진 확대로 소비자에 피해 주고 은행실적만 좋아져

금융당국이 가만있지 않았다. 가계부채의 고삐를 조이기 위해 금융권에 더 강력한 통제를 주문했다. 지난해 말 은행권 수장들을 소집했다. 올해 증가율을 5~6%대로 관리하겠다는 가계대출 관리계획을 받아냈다. 근거 없는 조치는 아니었다. 은행법 제34조에 따르면 은행은 당국이 정한 경영지도 기준을 지켜야 한다. 대출 리스크관리도 경영지도 대상에 포함돼 있다. 충족지 못하면 이익 배당 제한 등 경영 개선에 필요한 조치를 받아야 한다.

현재는 시중은행 대부분이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에 근접한 상태다. 지난 6월 고신용자에 대한 신용대출을 시작으로 마이너스 통장과 집단대출의 금리를 올리고 한도를 줄여온 결과다. 일부 은행은 주택담보대출과 전세대출 신규 판매를 중단하는 초강수를 뒀다. 연말이 다가오며 총량 관리에 여유가 생기자 목표치를 맞추기 위해 닫혔던 대출 문을 슬며시 열고 있다. 그래봤자 연말까지의 훈풍에 불과하다.

내년에는 대출 한파가 더 거세질 전망이다. 가계부채 총량 관리 목표치가 올해보다 낮은 4∼5%로 관리된다. 경제 불황에 금융 불균형까지 커지는 상황에서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10월 26일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회의를 열고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의결했다. 내년 1월부터 총대출액이 2억 원을 넘으면 DSR이 적용되고, 7월부터는 총대출액 1억 원 초과로 DSR 규제가 확대된다. DSR 산정 때 카드론도 포함된다.

잘 될지 의문이다. 규제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예외 사항이 적지 않다. 실수요자 보호를 위해 올해 4분기에 취급된 전세대출은 총량 한도에서 제외한다. 집단대출 또한 중단 사례가 없도록 관리한다. 결혼이나 장례, 수술 등 실수요로 인정되면 연 소득 대비 1배로 제한한 신용대출 한도에 일시 예외를 허용한다. 중·저신용자 대상 중금리대출 확대 기조도 유지하고 서민·취약 계층 대상 서민금융상품 공급 확대도 지속한다.

가계부채 대응 당연하나...급격한 부채축소가 신용위험과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는 게 고민

가계부채가 늘어 하등 좋을 게 없다. 역기능과 악영향이 우려된다. 가계소비를 제약하고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금융위기의 이면에는 과도한 누적 부채가 늘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처럼 코로나19 장기화와 경제난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가계부채 대응은 당연하다. 다만, 가계부채의 급격한 축소가 실수요자 피해를 키우고 신용위험과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고민이다.

기대보다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가계대출 규제가 금리 인상과 예대마진 확대로 불거지는 양상이다. 신규취급액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평균 금리가 지난 10월 기준 연 3.46%로 지난해 말과 비교해 0.67%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는 연 1.17%로 0.39%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10월 잔액 기준 총수신금리에서 총대출금리를 뺀 예대금리차는 2.16%로 지난해 말보다 0.11%포인트 점프했다. 은행만 웃고 있다.

시장금리가 오른 이상으로 이자 폭이 상승하며 소비자의 체감금리가 높아지고 불만 또한 커진다. 그러자 은행 금리에 직접 개입이 어렵다고 선을 그어온 금융당국이 금리 산정체계 점검에 나설 것을 밝혔다. 영업 현장의 대출금리를 살펴보고 필요하면 모범규준을 개선할 요량이다. 걱정도 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을 틈타 은행의 예대차익 폭이 더 커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든다.

규제는 의료와 같다. 증상 치료보다 원인 치유가 돼야 한다. 가계대출 증가율 등 수치나 규제할 게 아니라 부동산 문제 등 근본 원인을 해소하는 게 맞다. 오기의 규제는 더 나쁘다. 시도해 보고 문제가 생기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한다. 결과가 어찌 되든 계속 밀어붙이는 것만큼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 없다. 좋은 의도의 규제도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터. 규제로 금융을 억누르거나 옥죄면 안 된다. 금융이 무슨 동네북인가.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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