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등 나머지 계열사들은 적자 등으로 배당 형편 안 돼...대우조선 인수 등에는 상장, 계열사 및 지분매각 등으로 버텨
[금융소비자뉴스 이동준 기자] 지난 12일 단행된 현대중공업그룹의 사장단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정몽준(70) 현대중공업그룹 최대 주주의 장남인 정기선(40) 현대중공업지주 부사장의 사장 승진이었다. 정 사장은 승진과 함께 현중그룹의 양대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와 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로 내정됐다. 정 사장은 이에앞서 선박A/S 전문회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대표직을 지난 2018년부터 맡아왔다.
정 사장은 지난 2017년 양대 지주사 부사장직에 오른 지 4년 만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현중그룹은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와 중간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을 거쳐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으로 지배구조가 이어진다. 현대오일뱅크와 현대건설기계, 현대글로벌서비스 등은 현대중공업지주가 곧바로 관장하는 자회사들이다.
정 사장은 이번 인사로 지주사와 중간지주사 대표이사를 맡으며 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지게 됐다. 이번 인사를 두고 현중그룹의 3세 경영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정 사장은 지난 2013년 현대중공업에 입사, 2015년 상무로 승진했다.
아버지 정몽준 최대주주의 현재 공식직함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과 울산공업학원 명예이사장이 전부다. 다른 그룹들처럼 명예회장 같은 직함도 없다. 주식지분도 최상위 지주사인 현대중공업지주의 보통주 26.60%(지난 10월1일 기준) 뿐이다. 이 지분을 통해 34개 국내외 현중 계열사들을 장악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지주의 주요 주주 지분율(21년10월1일 보통주 기준 %)
정몽준 |
정기선 |
권오갑 |
국민연금(6월말) |
소액주주(6월말) |
26.60 |
5.26 |
0.06 |
10.63 |
45.13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문제는 증여세...현금증여의 최고 증여세율은 50%+α인데, 일단 50%로 간주해도 1,52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아들 정기선 사장 역시 현대중공업지주에만 5.2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아버지에 이어 2대주주다. 양대 지주사의 대표이사가 되었으니, 이제 아버지 지분만 넘겨받으면 명실공히 현중그룹의 오너가 될수 있다.
정 사장이 현재의 지분율을 확보한 것은 2018년 3월29일이다. 이날 시간외 대량매매로 KCC그룹이 갖고있던 현대중공업지주 83만1,000주를 샀다. 현대중공업지주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주당 42만6천원에 모두 3,540억원이 들어갔다.
당시 부사장으로 갓 승진했으니 연봉으로 모은 돈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공시내용에 따르면 아버지 정몽준 이사장이 3,040억원을 증여해 주었고, 나머지 500억원은 주식을 담보로 맡기고 NH투자증권에서 대출을 받았다. 주식담보대출은 6개월 만기이지만 현중그룹처럼 신용도가 좋은 곳은 계속 연장할수 있다. 이자만 내면서 지금도 계속 연장중이다.
문제는 증여세다. 현금증여의 최고 증여세율은 50%+α인데, 일단 50%로 간주해도 1,520억원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증여받은 사람이 내야한다. 당시 정 사장은 매입한 주식지분중 2.12%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세금연부연납 담보로 공탁하고 2023년까지, 5년동안 나누어 세금을 내겠다고 신고했다. 처음 납부때를 포함, 6회에 걸쳐 나누어내는데, 매년 250억원 정도 들어간다.
당시 정 사장은 계열사 한 곳서 대표이사, 두 곳서 부사장이었으나 연봉을 합쳐봐야 기껏 수십억원일 것이다. 연봉으로는 어림도 없다. 믿을 곳은 지분이 있는 현대중공업지주의 주주배당 밖에 없다. 지주사가 배당을 많이 하려면 매출과 당기순이익을 많이 올려야 한다.
현대중공업지주는 원래 로봇사업부가 있어 자체 수입이 쏠쏠했다. 하지만 작년 5월 로봇사업이 물적분할돼 독립회사가 된 이후로는 별도 수익사업이 없는 순수 지주회사다. 보통 순수 지주사의 수입(매출)은 주로 계열사들이 보내주는 배당금과 브랜드로열티 등이다. 로열티수입은 한계가 있고, 배당에 주로 의존한다.
지주사 출범 첫해인 2017년 현대중공업지주의 별도기준 매출은 4,652억원이었고, 이중 계열사들이 보내준 배당금 수입이 2,727억원이었다. 나머지는 1,972억원의 로봇사업매출과 약간의 브랜드로열티 등이다. 배당금을 보내준 계열사는 현대오일뱅크가 2,679억원으로 배당금수입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현대중공업지주의 매출, 순익과 배당금 구조(단위 별도기준 억원)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1년 상반기 |
매출 |
4,652 |
5,793 |
4,926 |
3,759 |
2,245 |
당기순이익 |
2,194 |
1,305 |
5,908 |
864 |
4,888 |
배당금지급 |
0 |
2,705 |
2,705 |
2,614 |
1,307 |
배당금수익 |
2,727(현대오일뱅크 2,679억원등) |
3,126(현대오일뱅크 3,126억원) |
2,288(현대오일뱅크 2,233억원, 현대건설기계 55억원) |
3,107(현대오일뱅크 1,507억원, 현대글로벌서비스 1,600억원) |
2,204(현대오일뱅크704억원,현대글로벌서비스1,500억원) |
<자료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각사 사업 및 감사보고서>
오일뱅크는 매년 수천억원씩 지주사에 배당. 당기순이익보다 많을 때도.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작년부터 대타로 투입
현중그룹의 주력사들인 현대중공업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은 그 몇해전부터 심각한 경영부진에 빠져 배당을 할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이후도 마찬가지다. 이듬해인 2018년에도 현대오일뱅크만 지주사에 3,126억원의 배당금을 지급했다. 지주사는 이 돈을 바탕으로 2019년초 주주들에게 2,705억원의 배당을 했다. 정기선 사장도 이 때 153억원의 첫 배당금을 받았다.
2019년(배당금지급은 20년초)에는 현대오일뱅크 2,233억원, 현대건설기계 55억원 등 2개 계열사만 지주사에 배당을 했고, 이 배당을 바탕으로 지주사는 2,705억원의 배당을 했다. 작년에는 현대오일뱅크(1,507억원)와 현대글로벌서비스(1,600억원) 2개사가 지주사에 배당을 보냈다. 이 돈을 토대로 올초 지주사는 2,614억원의 주주배당을 실시했다.
2018년이후 매년 한차례 연말배당만 실시하던 현대중공업지주는 올 상반기에 중간배당 제도를 처음 도입했다. 올 상반기에 지주사에 배당금을 보내준 계열사 역시 현대오일뱅크(704억원)와 현대글로벌서비스(1,500억원) 두 곳으로, 이 수익을 바탕으로 지난 6월말 모두 1,307억원의 중간배당을 실시했다.
올들어서는 배당금이 두 번이나 지급된 셈이다. 정기선 사장은 올4월 작년 연말배당 153억원에 이어 6월말 중간배당 76억원 등 229억원을 수령했다. 얼추 올해 증여세 부담액에 육박하는 액수다. 작년초와 19년초에는 각각 153억원을 수령했다.
지금까지 3년동안 모두 535억원을 배당으로 받았다. 배당지급이 19년 4월부터 시작됐으니 18년과 19년의 증여세부담액 500억원은 주식담보대출금으로 대충 해결했겠지만 작년에는 좀 모자랐을 것이다.
올해초 현대중공업지주가 주주배당을 대폭 늘려 주주친화정책을 앞으로 대폭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갑자기 발표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연말배당 외에 중간배당을 더해야 겨우 정 사장의 증여세를 낼수 있기 때문이다.
2018년 12월 연말배당 결정 때는 현대중공업지주가 임시주총을 열어 자본잉여금 2조원을 이익잉여금으로 돌리는 편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그해 현대오일뱅크의 배당금 3,126억원과 로봇사업 수익 2,666억원 등으로 매출이 5,793억원에 달했으나 당기순이익이 1,305억원에 불과해 예정된 2,705억원의 주주배당을 하기에 많이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영지표(별도기준 억원)
|
2018년(말) |
2019년(말) |
2020년(말) |
21년 상반기(말) |
매출액 |
185,188 |
190,461 |
124,910 |
90,369 |
당기순이익 |
3,174 |
2,185 |
-4,574(적자) |
1,965 |
이익잉여금(기말기준) |
28,829 |
28,267 |
21,592 |
22,620 |
<자료 사업보고서>
작년 1600억, 올상반기 1500억원씩 지주사에 배당. 작은 회사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거액 배당. 정사장이 대표여서 더 구설수
현대오일뱅크는 지주사 출범 첫해부터 지주사 배당에 한해도 빠지지 않고 있다. 작년 코로나사태로 현대오일뱅크도 4,574억원의 대규모 적자가 났을 때도 1,507억원의 지주사 배당금을 떠안아야 했다.
현대오일뱅크는 현중 계열사들중 거의 유일하게, 작년만 제외하고 매년 수천억원대의 당기순이익을 올리던 계열사다. 올 상반기 별도기준 당기순이익도 1,965억원에 달했다. 지난 6월말 기준 이익잉여금도 2조2,620억원이나 쌓여 있다.
그러나 정유회사는 업종의 특성상 매년 수백억원~수천억원대의 설비교체 투자 등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업종이다. 탈탄소시대에 대비해 업종다각화나 업종전환 투자도 준비해야 한다. 이런 요인들을 감안하면 수천억원대 흑자는 결코 많다고 볼수 없다.
2019년에는 당기순익이 2,185억원이었는데, 지주사 배당 지급이 2,233억원이었다. 순익보다 더많은 배당을 지주사에 한 것이다. 2018년에도 3,174억원 순이익에 지주사 배당이 3,126억원이었다.
작년 현대글로벌서비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거의 매년 독박을 쓰고 거의 탈탈 털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그나마 지주사에 사업수익을 안겨주던 로봇부문이 분사하고, 단골 물주 현대오일뱅크도 대폭 적자에 빠지자 현중그룹은 더 다급해 졌다. 이때 대타로 등장한 것이 출범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매년 매출이 급증하고 흑자도 수백억원씩 내던 현대글로벌서비스다. 이 회사는 하필 2018년부터 정기선 사장이 공동대표로 있던 회사였다.
작년부터 차출된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첫 해부터 현대오일뱅크보다 더 많은 1,600억원을 지주사 배당으로 떠안았다. 올 상반기 지주사 배당은 현대오일뱅크가 704억원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 현대글로벌서비스는 1,500억원으로 현대오일뱅크의 2배가 넘었다. 정 사장이 자신의 배당수입을 위해 자기가 대표인 회사를 옥죄고, 차출했다고 하면 과언일까?
현대글로벌서비스는 2016년 11월 현대중공업의 조선, 엔진, 전기전자 사업부 AS사업을 떼어내 독립한 회사다. 현중그룹의 조선, 엔진, 전기전자 사업관련 보증서비스 대행, 유상 부품판매, 기술 서비스 제공, 선박 연료유 공급 등이 주사업이다. 작년말까지 지분은 현대중공업지주가 100% 갖고 있었으나, 올들어 지분 38%를 6,533억원에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 들어갈 돈이 많아서였다.
현대글로벌서비스의 경영지표(별도기준 억원)
|
2018년(말) |
2019년(말) |
2020년(말) |
21년 상반기(말) |
자산 |
3,765 |
5,977 |
4.609 |
|
매출 |
4,132 |
7,894 |
9,607 |
4,294 |
당기순이익 |
584 |
875 |
1,144 |
476 |
<자료 감사보고서>
"현대중공업, 현금을 차곡차곡 준비해야 하지만 지분5% 증여세도 제대로 못내 계열사 2곳을 마구 쥐어짜내고 있는 형편"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사업자체가 현중 계열사들과 관련이 많고, 또 전폭지원도 받으면서 매년 매출과 순이익이 급증하고 있다. 별도기준 매출은 첫해인 2017년 2,381억원이던 것이 18년 4,132억원, 19년 7,894억원, 20년 9,607억원 등 3년사이에 4배이상 늘었다. 올상반기 매출도 4,294억원에 달했다.
당기순익도 17년 433억원, 18년 584억원, 19년 875억원, 20년 1,144억원, 올상반기 476억원 등으로 가파른 상승세다. 현대차 계열사들의 전폭지원을 받아 고속성장한 현대글로비스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다른점은 정의선 회장이 최대주주인 현대글로비스와 달리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지주사가 최대주주라는 점이다.
작년과 올상반기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당기순이익은 같은 기간중 지주사에 지급한 배당금 1,600억원 및 1,500억원에 모자란다. 때문에 이 회사는 작년중 851억원의 자본잉여금을 배당이 가능한 이익잉여금으로 부랴부랴 바꾸기도 했다. 회사덩치에 비해 너무 큰 배당의 영향으로 계속 늘어나던 자산과 자본총계(순자산)가 작년말부터 줄어들고 있기도 하다. 기말 현금 및 현금성자산도 19년말에 비해 800억원 가량 줄었다.
현중그룹은 오너일가 배당금 말고도 대우조선해양 인수, 정유사 설비투자 및 업종전환투자 등에도 많은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조선사들은 내후년 쯤에야 대규모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현재로선 부담능력이 있는 곳이 이 2개사 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질구레한 계열사들이 많이 있지만 수백억대 이상 흑자를 내는곳은 이 2곳 외에 거의 없다.
이 두 회사는 앞으로도 정기선 사장 증여세 차출용으로 계속 활용하고, 대우조선해양 인수 등 나머지 대규모 소요자금은 현대중공업과 현대오일뱅크 등의 상장과 계열사매각, 지분매각 등으로 조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현대중공업은 올상반기중 자본잉여금 2.5조원을 투자자금이나 배당용으로 쓸 수 있는 이익잉여금으로 전환했다.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은 100% 자회사 현대중공업파워시스템의 지분 80%를 지난 7월 1,440억원에 사모펀드 등에 매각하기도 했다.
그룹은 조선경기만 어느정도 회복되면 그럭저럭 굴러갈 것이다. 하지만 정기선 사장의 경영권 승계는 앞으로도 첩첩산중이다. 아버지 정몽준 이사장이 올해 만70세여서 아직 시간이 있긴 하다. 그러나 1조5천억원이 넘는 아버지 지분을 모두 넘겨받으려면 상속 또는 증여세만 9천억원이 넘는다. 정 이사장의 지주사 지분이 26.6%밖에 되지 않아 주식물납이나 삼성처럼 주식매각도 어려워 보인다.
IB업계 관계자는 "포스트 정뭉준 체제를 맞은 현대중공업은 지금부터라도 현금을 차곡차곡 준비해야 하지만 지분5% 증여세도 제대로 못내 계열사 2곳을 마구 쥐어짜내고 있는 형편"이라며 "돈은 없는데 주력 업종들이 대부분 사양업종이라 업종 전환도 서둘러야 하는 등 대표이사 사장 승진을 했어도 정 사장의 고민은 깊어만 가고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