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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 논값이 한판 피자값만도 못해...‘경자유전(耕者有田)’원칙 이대로 좋은가
한평 논값이 한판 피자값만도 못해...‘경자유전(耕者有田)’원칙 이대로 좋은가
  • 권의종
  • 승인 2021.09.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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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미래의 한국 농업은 변화를 기회 삼아 도생(圖生)에서 도약으로 가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농사의 백미는 수확이다. 황금 들녘에 가을걷이가 시작되었다. 잔뜩 팬 노란 벼 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 가운데로 콤바인이 지나면서 방금 수확한 낟알들이 포대에 폭포처럼 쏟아진다. 벼 포대를 가득 실은 트럭이 미곡처리장으로 바삐 내달린다. 거기서 벼를 말리고, 겨를 벗기고, 포장을 마치고 나면 식탁에 오를 쌀로 태어난다.

올해는 쌀값이 괜찮은 편이다. 벼 수매가격이 지난해보다 조금 올랐다. 농민들은 그래도 아쉬움이 크다. 영농 자재비와 인건비가 오른 탓에 수지타산이 기대에 못 미친다. 수매가격이 좀 더 올랐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비자도 불만족이다. 소비자 가격이 뛰었다. 농수산식품유통공사의 통계를 보면, 최근일 기준 쌀 20kg의 평균 도매가격은 5만7천 원 수준이다. 1년 전보다 대략 6천 원, 최근 5년 평균치보다 1만 3천 원가량 높아졌다.

올해 쌀 생산량은 평년작을 넘을 거라는 예상이다. 올해 국내 벼 재배 면적이 지난해보다 6천ha가량 늘었다. 전년보다 벼 재배 면적이 늘어난 것은 2001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올해는 집중호우나 병해충 피해도 적었다. 농민들은 생산량이 늘어 쌀값이 떨어질까도 걱정한다. 이러니 농사는 잘돼도 걱정, 안돼도 걱정이다. 잘되면 가격 하락으로, 안되면 수입 감소로 곤란을 겪곤 한다.

정작 농민을 힘들게 하는 건 시대착오적 농업 원칙이다. ‘경자유전(耕者有田)’이 그중 하나다. 경작자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게 현실과 안 맞는다. 헌법에서도 이를 금과옥조처럼 규정한다. 121조 1항에서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명시한다. 비농업인의 투기적 농지 소유를 막기 위해 도입되었으나, 이게 지금 와서는 농업발전을 막고 있다.

‘경작자 만이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 농지 원칙...대만은 폐지, 한국은 ‘금과옥조’

경자유전의 원조 격인 대만도 1993년 이를 폐지했다. 위헌 논란이 불거지자, ‘농업용 토지는 농업용으로만 사용한다’는 ‘농지농용(農地農用)’ 원칙으로 전환했다. 농지매매 시 자경(自耕) 능력을 입증해야 했던 것을 농업용 목적으로만 사용하면 누가 매입하든, 즉 자경이든 임대든 상관없게 바꿨다. ‘농유(農有)’에서 ‘농용(農用)’으로 전환, 농지를 최대한 보전하면서 농업환경 변화에는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효과가 있었다. 농지매매가 활발해졌다. 귀농인과 청년 농업인의 농촌 유입도 활성화되었다. 자작농 제한이 풀려 농사를 짓고 싶으면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대만 행정원 통계에 따르면, 농가인구는 2005년 340만 명에서 2018년 276만 명으로 줄었으나, 농가 가구 수는 같은 기간 76만 가구에서 77만여 가구로 늘었다. 경지 없는 농가도 4,706가구에서 8,360가구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우리 농촌 현실은 여전히 갑갑하다.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가 이를 잘 말해준다. 지난해 농가인구는 231만 명으로 2005년에 비해 100만 명 넘게 줄었다. 같은 기간 농가 가구 수도 127만 가구에서 103만 가구로 쪼그라들었다. 농업경영주 평균연령은 61세에서 66.1세로 5세 이상 높아졌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42.5%로 2005년 29.1%에서 급증했다. 귀농인과 청년 농업인 등 신규 농업인구의 유입은 영농경력 증명 등 농지매매 규제로 더디기만 하다.

경자유전이 잘 지켜지지도 않는다. 전체농가의 51.4%가 임차 농가로 경작자의 주류를 이룬다. 농촌 고령화로 농지를 부지하기도 버겁다. 고령 농업인은 땅만 갖고 있지 타인 경작이 태반이다. 농업인 사망으로 도시 거주 자손에게 상속되는 농지도 늘고 있다. 농지소유자의 재산권 침해 또한 심하다. 농지가격이 형편없다. 호남 농업진흥지역 3.3㎡ 논값이 지름 33㎝ 피자 한 판값만도 못하다. 부재지주의 경우 돈 판돈에서 양도소득세를 물고 나면 손에 쥐는 게 없다.

‘농유(農有)에서 농용(農用)으로’...농지는 최대한 보전하면서 농업환경 변화에 적극 대처해야

농지법 위반은 반복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농지법 태풍이 관가와 정치권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공무원과 LH 등 공공기관 임직원이 개발 예정 지역에 농지를 사뒀던 게 대거 적발되었다. 21대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도 27%인 81명이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농지를 소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의 농지 소유 사실이 밝혀져 자신 사퇴한 국회의원도 있다.

농지 비중의 적정성도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 농가인구 비율은 대략 4% 내외다. 전체 국토면적에서 논과 밭이 차지하는 비중은 18.6%를 점한다. 산지가 63.3%에 달하는 한반도의 특성을 고려하면, 80% 이상의 땅이 농사 외에는 쓸 수 없다는 계산이 선다. 그렇다면 우리의 농지 비중이 비슷한 산업구조를 가진 대만의 4%, 일본의 11%에 비해 작다고 보기 어렵다.

경자유전의 붕괴 조짐도 보인다. 2020년 1인당 쌀소비량이 57.7kg, 하루로 치면 1공기 반에 불과하다. 한국인의 ‘주식’이라 하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연간 육류소비량은 4.3kg으로 쌀 소비에 근접한다. 시장마다 수입 농산물이 넘쳐난다. 기업농 탄생도 힘든 상황이다. “농지법과 관련 법률을 보면 경자유전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다”며 “농지나 토지 소유 범위 제한이 있으면 농업을 기업 형태로 끌고 가기 어렵다”고 주장하는 대선주자도 있다.

갑작스러운 경자유전 폐지는 위험할 수 있다. 농지가격 급등, 농업 축소 등에 대비해야 한다. 농업인구 감소 등 환경 변화를 고려한 토지 이용 효율도 짚어봐야 한다. 식량 자급, 식량안보를 지키며 농업발전과 농민소득 보장도 이뤄내야 한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 말마따나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죽은 것과 같다. 한국 농업은 변화를 기회 삼아 도생(圖生)에서 도약으로 가야 한다. 서바이벌(survival)보다 리바이벌(revival)이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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