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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지금 경제위기의 본질은 부동산과 금융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지금 경제위기의 본질은 부동산과 금융
  • 정종석
  • 승인 2021.09.26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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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리먼사태 헝다그룹의 교훈...부동산, 중국 만의 문제 아니고 바로 한국 우리의 문제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지금 중국경제의 뇌관이 되고 있는 헝다(恒大·Evergrande)그룹은 허난성 빈농 출신인 쉬자인(徐家印) 회장이 1997년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설립한 부동산개발회사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 소도시를 중심으로 대출로 땅을 사들여 규모가 작은 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박리다매 전략을 앞세워 중국 제2위의 부동산개발사로 몸집을 크게 불렸다.

헝다는 중국의 부동산 열풍 속 2013~2018년 연평균 38.8%의 매출 증가율을 기록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누렸다. 부동산을 발판으로 식품과 레저·전기차 등으로 이른바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손짚고 헤엄치기’식으로 끝까지 성공을 유지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헝다의 재무 상태가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들은 선분양을 통해 받은 계약금을 투자금으로 이용하는 한편 회사채 발행과 은행 대출로 자금을 조달하다가 재정문제에 봉착했다. 헝다가 천문학적인 부채로 파산위기까지 몰린 가운데 자회사 직원의 임금이나 협력사 대금까지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헝다그룹의 운명이 전환점에 선 건 지난해 8월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내세우는 ‘공동부유(共同富裕)’ 기치에 발맞춰 과열되는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중국 정부가 부동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면서부터다.

헝다그룹 파산설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흔히 ‘대마불사(大馬不死·덩치가 큰 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를 말하며 헝다는 너무 커서 쓰러질 수 없고 쓰러져서도 안 된다고 반박해왔다. 그러나 세상에 쓰러지지 않는 큰 것은 없다. 기초가 부실하고 구조가 잘못되면 중력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무너지기도 한다.

헝다그룹은 작년 말 기준 총부채가 무려 1조9500억위안(약 350조원)에 이른다. 중국 중앙정부의 지난해 재정수입은 7조~8조위안(약 1280~1460조원)으로 헝다그룹 총부채의 3~4배 수준이다. 중국 정부도 살림이 빠듯하다. 돈을 내줄 가능성이 낮다. 

현재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더불어 잘살자’는 공동부유를 선언했다. 지난 1978년 덩샤오핑은 정권을 잡자마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과 아랫목이 따뜻해지면 윗목도 자연스럽게 따뜻해진다는 '선부론(先富論)'을 설파하며 개혁개방에 시동을 걸었다.

그 결과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게 됐다. 하지만 급속한 성장은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를 초래, 중국사회는 양극화 해소가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중국 시진핑 주석,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를 방지하라고 엄명을 내렸는데도 일이 터진 것이 바로 헝다사태

이에 시진핑의 중국공산당은 공동부유론을 주창하면서 ‘모두가 잘사는 중국’을 외치고 있다. 이번 헝다그룹 파산위기 처리 과정이 세계의 관심을 끄는 것은 공산당 수뇌부가 정말로 공동부유론을 실천할 것인지 하는 대목이다.

만일 중국정부가 헝다그룹을 파산시킬 경우 이를 통해 강력한 구조조정의 동력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가 강력하게 개입하면 큰 폭풍이 예상되지만, 그만큼 경제가 받는 충격의 기간이 짧을 수 있다. 반면 인수나 구제자금 투입으로 ‘수술’을 미루면, 단기적으로는 충격이 덜하겠지만 여파는 길게 이어질 수 있다.

시진핑 주석은 지난 2019년 1월 “사태 변화를 예측할 수 없는 국제 형세, 복잡하고 민감한 주변 환경, 엄중한 개혁발전 안정 임무에 직면해 시종 고도의 경계를 유지함으로써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블랙스완(Black swan)’은 예상하기 힘들고 발생할 확률은 매우 낮지만 일단 일이 터지면 큰 충격을 주는 돌발 사건을 뜻한다. ‘회색 코뿔소(Grey rhino)’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거나 소홀히 하기 쉬운 위험을 말한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두 사건 모두 거시 경제에 영향을 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뒤인 올해 1월, 시 주석은 공산당 중앙정치국 집체학습에서 발전과 안전을 강조하며 “각종 위험과 도전을 잘 예측해야 하며 각종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 사건에 잘 대비해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마오쩌뚱 이래 최고의 권력자로 평가받는 시 주석이 이렇듯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를 방지하라고 엄명을 내렸는데도 일이 터진 것이 바로 헝다사태이다. 중국정부가 두려운 것은 헝다 자체가 아니라 이것이 회색 코뿔소 사건으로 파급돼 중국 부동산 시장과 금융회사, 경제가 연쇄 파산하는 충격이다.

여기서 우리는 헝다그룹이 봉착한 위기의 본질을 파악하고 우리나라의 부동산 현실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날이 새면 아파트 가격이 오르고 부동산대란으로 젊은 시대와 민생이 고통을 받고 있는 한국의 현실과 뭔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 홍남기 부총리 등 정부당국자들이 나서서 아파트 가격이 언젠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부동산 사재기 열풍에 경고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점차 올리고 있는 것도 은행돈을 빌려서 집을 사는 심리나 풍토를 개선하려는 것이다.

한국과 다른 선진국들, 경제성장 위해서 중국처럼 부동산에 너무 과도하게 의존...우리도 언제든지 발생 가능

그런데도 지금 아파트 한 채가 빌딩값에 육박하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서울 한강변 아크로리버파크 84㎡(34평)이 42억 최고가를 기록했다. 국민평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34평 아파트 매매가격이 40억원을 넘긴 것이다. 이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가격이다.

중국에서 최고 존엄인 공산당 주석이 조심하라고 두차례나 언급한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헝다사태)가 돌연 베이징 한 복판인 천안문에 나타나 정부 지도자들이 머리를 싸매며 처리방안에 고심하고 있다.

중국이나 한국에서 은행이 개인에 돈을 빌려주고, 개인이 부동산 업체에 투자하는 근본적 이유는 마땅히 투자할 곳이 없고,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고 믿는 막연하지만 확신이 있기 때문 일 것이다.

시진핑의 공산당 정권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경제 생산성 저하, 경제 성장 둔화, 사회 불안 등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 적어도 1년 넘게 부동산 시장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집값이 정말 떨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제는 집값이 떨어졌는데도 집이 팔리지 않는다. 집값을 잡았을지 몰라도 실물경기가 가라앉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채권자들이 당황하기 시작한 것은 물론이고 시진핑 등 지도자들이 이마에 손을 짚고 있는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중국정부가 현재의 헝다위기를 타개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회사를 제때 파산시켜 자산을 팔아 돈을 갚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점은 빚을 갚는 우선 순위다. 1순위는 국유은행, 2순위는 지방정부은행, 3순위는 그 밖의 금융회사, 그 다음은 다른 기업이다. 일반 투자자는 맨 마지막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개미, 힘없는 일반 국민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한국과 다른 선진국들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 중국처럼 부동산에 너무 과도하게 의존해 왔다. 이들 국가는 모두 통화와 재정 부양과 더불어 경제성장을 위해 부동산에 어떤 형태로든 의존하고 있다. 헝다 사태는 중국에서만 유별난 게 아니다. 한국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의 부동산 문제는 어떠한가. 정부의 경고를 무시한 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가운데 일반 국민들은 정부 고위당국자들의 말을 그다지 귀담아 듣지 않는 눈치다. 우리나라에서도 블랙스완과 회색 코뿔소가 서울 광화문이나 강남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그럴 경우 헝다사태처럼 결국 우리나라도 개미, 힘없는 일반 국민들만 큰 피해를 입게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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