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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열풍과 한국의 ‘젊은 정치’
이준석 열풍과 한국의 ‘젊은 정치’
  • 이도선
  • 승인 2021.06.16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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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선 칼럼] 정치판이 젊음으로 요동치고 있다. 만 36세를 갓 지난 청년, 그것도 국회의원 경력이 전무한 ‘0선’이 제1야당 당수가 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신임 대표에 대한 2030의 폭발적 지지 덕분에 ‘노쇠한 정당’이란 달갑지 않은 평판을 말끔히 털어 냈다. 이 대표 당선은 꼭 반세기 전인 1971년 김영삼 신민당 의원이 주창한 ‘40대 기수론’을 뛰어넘는 획기적 사건이라는 게 정가의 일반적 평가다. 당시 김대중 의원이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되면서 야당의 세대교체가 본격화됐듯이, 이 대표 당선을 계기로 정치권의 대폭 물갈이가 이뤄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그럴 기미는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주의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한마디로 ‘젊은 피’와 ‘여풍(女風)’ 잔치였다. 이 대표와 함께 당선된 배현진(38) 최고위원과 김용태(31) 청년최고위원도 30대다. 조수진(49) 수석 최고위원원과 정미경(56) 최고위원을 포함해 여성이 3명이나 선출됐고, 김재원(57) 최고위원이 최연장자다.

이 대표는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여성을 영입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당연직인 원내대표와 정책위 의장을 포함해 모두 9명으로 구성되는 최고위원회의는 3분의 1이 30대로 채워지면서 평균 연령이 확 낮아졌고, 여풍이 어느 때보다도 거세진 모양새다. 이 대표는 “자칫 지도부의 70%가 여성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기존 정당들의 주류인 ‘오륙남(50~60대 남성)’과는 사뭇 다른 인적 구조다.

40대 기수론은 야권에만 적용됐고 여권은 손도 대지 못한 반면 이번에 국민의힘을 덮친 ‘젊은 바람’은 여권에도 휘몰아칠 공산이 크다는 점에서 파급효과가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이른바 ‘빅3’ 구도에 균열 조짐이 엿보이는 것부터가 심상찮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뒤쫓던 정세균 전 총리를 제치고 박용진 의원이 유일한 1970년대생으로 명함을 내밀었다. 박 의원의 지지율은 아직 한 자릿수이지만, ‘이준석 현상’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불어나며 여차하면 여권 대권가도에 새로운 변수로 떠오를 기세다.

하지만 정작 여권을 긴장시키는 요인은 따로 있다. ‘이준석 돌풍’이 기성 정치권을 향한 쇄신과 변화의 목소리로 돌변하면서 현 집권 세력의 핵심인 ‘586 꼰대 세대’의 퇴장을 재촉하는 계기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 노무현 정권 출범과 함께 권력의 맛에 탐닉하기 시작한 ‘386(30대, 80년대 학번, 60년대생)’은 20년 가까이 정치를 독점하고 기득권을 누리는 꼰대로 안주해 오다 소외된 2030의 통렬한 반격에 뒤통수를 맞은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 “내년 대선은 이미 끝났다”는 절망적인 푸념이 새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 대표의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다. 당대표로서의 첫 공식 일정이 대전현충원 천안함 46용사 묘역 참배였다. 서울현충원 역대 대통령 묘소부터 찾는 정계의 오랜 관행과 의도된 차별화다. 서울현충원은 며칠 뒤에 갔다. 이 대표는 대전 현충원에 이어 광주로 달려가 철거 건물 붕괴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5·18 이후에 태어난 첫 세대의 대표로서 광주의 아픈 역사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취임 첫날부터 ‘보수 불모지’ 호남을 방문한 것도 전례 없거니와 당선 후 첫 출근길에 따릉이(서울시 공공 자전거)를 이용한 것도 참신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번개 모임을 갖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문자를 주고받는가 하면, 청와대와 민주당에 협치를 요구하고, “문재인 정부에 맞설 빅 텐트를 칠 것”이라고 큰소리치는 등의 튀는 언행도 기존의 ‘여의도 문법’을 훌쩍 뛰어넘었다.

국민의힘은 정당지지율이 모처럼 40%를 돌파하며 ‘이준석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젊음에 거는 기대가 크긴 하나 우려도 그에 못지않다. 40살도 안 돼 집권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젊기 때문에 대단한 업적을 쌓고 있는 것도 아니고, 80살이 다 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늙어서 질퍽대는 것도 아니다. ‘젊은 정치’가 낙후된 한국 정치에 신선한 자극제가 되고 있는 건 분명하나, 그렇다고 무조건 성공을 담보하는 ‘신의 한 수’일 수는 없다. 게다가 차기 대선후보가 확정되면 사실상 모든 당권을 넘겨줘야 한다. 이 대표의 무대는 일단 경선 과정까지로 국한된다는 얘기다.

이 대표가 당대표 수락 연설에서 가수 임재범의 노랫말에 빗대어 “제가 말하는 변화에 대한 이 거친 생각들, 그걸 바라보는 전통적 당원들의 불안한 눈빛”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본인도 상황을 직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두말할 것 없이 정권을 반드시 탈환할 최선의 후보 옹립이 이 대표의 참된 소명이다. 더 이상 욕심내면 본인은 물론 당도, 나라도 망한다. 혹시라도 아직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진정한 국가지도자가 있는지도 눈여겨볼 일이다. ‘젊은 정치’의 성공 여부는 그 뒤에 따져도 늦지 않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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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도선 ( yds29100@gmail.com )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 운영위원
(전)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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