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주택’ 기준, 13년째 요지부동... 몸집 커졌는데 옷은 그대로
‘고가주택’ 기준, 13년째 요지부동... 몸집 커졌는데 옷은 그대로
  • 권의종
  • 승인 2021.03.26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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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高價)’라는 용어는 상대적 개념... 법령에서 절대 가격으로 특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옷과 음식과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기본요소다. 옷은 그중 으뜸이다. ‘의식주’ 용어가 의(衣)자로 시작된다. ‘춥고 배고프다’, ‘헐벗고 굶주린다’라는 표현만 봐도 입는 게 먹는 것보다 우선이다. 안 먹어도 며칠을 견딜 수 있으나, 극한과 폭서에는 단 몇 시간도 버티기 어렵다. 아이들은 크는 게 빨라 옷을 오래 못 입힌다. 금세 작아져 멀쩡한 옷도 버려야 한다. 몸에 옷을 맞춰야지 옷에 몸을 맞출 순 없다.

이런 당연한 원리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부동산 제도의 ‘고가주택’ 기준도 그중 하나다. 현행법상으로 주택가격이 9억 원을 넘으면 고가주택으로 분류된다. 고가주택 소유자는 세금과 대출에서 각종 불이익을 감내해야 한다. 현행 고가주택 기준이 정해진 건 2008년. 그때 정해진 9억 원이 여태껏 그대로다. 13년 전에도 9억 원, 지금도 9억 원이다. 고가(古價)가 고가(高價)인 셈이다.

같은 9억 원이라도 제도마다 잣대가 다르다. 종합부동산세는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1가구 1주택 종부세 과세 기준은 공시가격 9억 원이다. 초창기에는 6억 원으로 했다가 2008년 12월 9억 원으로 올렸다. 당시 초고가 주택의 상징이던 강남 타워팰리스 84㎡의 공시가격이 10억2,400만 원이었다. 올해의 공시가격은 16억1,200만 원으로 6억 원가량 뛰었다. 시세는 대략 22억 원 정도로 두 배 이상 올랐다.

2008년만 해도 전국 공동주택 933만2,556가구 중 공시가격 9억 원 초과 주택은 1.0%, 9만3,675가구에 불과했다. 서울지역 공동주택의 경우 0.9%, 8만6,201가구에 그쳤다. 그런데 올해는 어떤가. 전국 기준 3.7%, 52만5,000가구, 서울 기준 16.0%, 41만3,000가구가 9억 원을 넘었다. 그러니 종부세가 늘 수밖에. 2021년 종부세 납부 가구는 지난해 대비 전국 기준 69.9%, 서울 기준 47.0% 늘었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지난해에 이미 9억 원을 넘었다.

2008년 정한 고가주택 기준...13년 전에도 9억 원 지금도 9억 원, ‘고가(古價)=고가(高價)’

공시가격은 종부세와 재산세 말고도 건강보험료·기초연금 등 63개 항목을 산정하는데 연동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산정 근거를 명확히 제시치 못한다. 오른 가격만 달랑 공시한다. 공시가격 상승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른다. 정책 실패로 인한 집값 상승에 원성이 자자하다. 주택 소유자가 이익을 실현한 게 아닌데도 집값이 올랐다고 세금만 오르고 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라는 조세의 기본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다분하다.

양도소득세는 실거래 가격을 적용한다. 주택거래로 생긴 시세차익에 대해 과세한다. 실거래 가격 9억 원을 기준으로 과세 여부가 판가름 난다. 양도세에 고가주택 개념을 처음 적용한 건 1994년이다. 소득세법 시행령에 ‘고급주택’ 규정이 생겼다. 공동주택의 경우 전용면적 165㎡ 이상이면서 양도가액이 5억 원을 넘으면 고급주택이었다. 1999년 금액 기준이 실거래가 6억 원 초과로 상향되었고, 2003년부터는 면적 기준이 없어지고 용어도 고가주택으로 바뀌었다.

2008년, 금액 기준이 ‘실거래가 9억 원 초과’로 상향된 후 여태껏 유지돼왔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에서 시세 9억 원을 초과하는 아파트가 절반 이상이다. 2017년 21.9%이던 시세 9억 원 이상 아파트는 2018년 31.2%, 2019년 37.2%, 2020년 49.6%를 기록했다. 올해 1월에는 51.9%로 더 늘었다. 수도권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2017년 9억 초과 아파트 비중이 1.1%이던 경기권은 올 초 8%로 급증했다. 이러다 머지않아 온 국민이 고급주택에 살게 생겼다.

주택 관련 금융상품의 고가주택 기준은 시가 기준이다. 조정대상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는 시가 9억 원인 주택을 고가주택으로 본다. 또 이 기준 위아래 구간별로 주택담보대출인정비율(LTV) 적용방식이 달라진다. 조정대상지역에서 시가 9억 원 이하 주택에는 LTV가 50%가 적용되고 9억 원이 넘으면 초과분부터 30%만 적용된다. 투기과열지구도 시가 9억 원을 기준으로 이하는 LTV 40%, 초과분은 20%다.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 조세원칙 위배 소지...평균가 못 미치는 고가, 수학적으로 불성립

주택연금 가입은 공시가격을 기준으로 한다. 지난해 주택연금에 가입할 수 있는 주택 기준이 시가 9억 원에서 공시가격 9억 원으로 바뀌었다. 주택연금은 집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연금을 받는 일종의 역모기지론이다. 집을 사기 위해 금융기관에 돈을 빌릴 때는 실거래가를 적용하고, 역모기지론에서는 공시가를 적용한다.

중개수수료는 시가 기준이다. 시가 9억 원 이상 주택을 고가주택으로 보고 높은 수수료율을 적용한다. 고가주택 기준을 현실화해야 한다. 집값이 오르면 고가주택 기준도 따라 오르는 게 당연하다. 국민은행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312만 원에 달했다. 평균가에도 못 미치는 고가란 수학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명제다.

시가냐 공시지가냐를 두고 정부 필요에 따라 정하는 현행 고가주택 운용방식도 함께 손 봐야 한다. 집값이 오른 건 모른 체하면서 세금만 더 거두려는 정부가 솔직히 얄밉고 언짢다. 집값 올랐다고 공시가격 올리고, 공시가격이 올랐다고 세금을 더 내라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원칙도 없고 논리도 없는 부동산 세제에 집 가진 자들은 속만 끓인다.

‘고가’라는 용어는 상대적 개념이다. 법령에서 절대 가격으로 특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수다. 변동이 심한 집값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기에 부적절하다. 그보다는 상위 몇 퍼센트까지의 주택을 고가주택으로 정하는 게 바른 접근일 수 있다. 집값과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하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기적으로 결정하는 게 이치에도 맞다. 몸에 안 맞는 옷은 빨리 버려야 하듯, 현실에 안 맞는 제도는 어서 고쳐야 한다. 안 하면 피해는 결국 힘없는 국민의 몫이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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