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샴페인 너무 일찍 터트려"...조직의 신뢰와 짜임새에 문제 제기돼
[금융소비자뉴스 강승조 기자] 현대차·기아와 애플 간의 자율주행차량 개발을 위한 협의가 중단됐다. 그동안 현대차·기아 그룹 주가 급등의 원인이 소멸됨으로써 주가가 급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애플차와의 협력 소식에 뒤늦게 주식을 산 현대차·기아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게 생겼다.
현대차·기아는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8일 공시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 통신이 전기차 개발을 위한 애플과 현대차·기아와의 논의가 최근 중단됐다고 전한 지 이틀만이다.
현대차·기아는 각각 이날 공시를 통해 "다수의 기업으로부터 자율주행 전기차 관련 공동개발 협력 요청을 받고 있으나 초기 단계로 결정된 바 없다"면서 "애플과 자율주행차량 개발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이날 오전 9시 14분 현재 현대차는 전 거래일보다 7.01% 급락한 23만2000원에 거래됐다. 같은 시각 기아(-13.20%), 현대모비스(-7.80%), 현대위아(-8.44%) 등도 폭락을 나타냈다. 오전 10시 이전에 현대차·기아의 시가총액이 장중 12조가 날아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문제는 이날 이후 주가가 얼마나 더 하락할지다.
이날 공시는 지난 3일(현지시간) 美 경제매체 CNBC는 현대차그룹과 애플이 자율주행차 생산 계약을 타결하기 직전이라고 보도했기에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 보도는 복수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과 현대차·기아가 애플의 자율주행 전기차인 애플카 제조 관련 계약의 타결을 앞두고 있어 계약 성사 시 미국 조지아주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기아 공장이 애플카 생산 기지가 된다고까지 전했었다.
현대차·기아와 애플 간의 협의가 왜 중단에 도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애플은 2024년 애플카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애플은 다른 완성차업체들과도 비슷한 계획에 대해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 '입단속'에 실패...블룸버그통신 "애플, 협상 부인하지 않은 현대차에 화나"
애플과의 개발협의 중단에 따라 주가가 폭락하는 상황에서 협의 중단에 대한 책임론도 대두되고 있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서는 현대차·기아가 결론이 나기도 전에 너무 샴페인을 일찍 터트리지 않았나 하는 얘기가 나온다. 애플카와의 개발협의 소식이 어디로부터 새어나갔는지는 밝혀진 바 없지만 적어도 현대차·기아가 입단속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물론 현대차와 기아는 지난달 공시에서 애플과의 자율주행차 개발 협의 중이라는 언론 보도에 "결정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애플과의 협의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이 개발 프로젝트를 수년간 비밀로 유지하는 애플을 화나게 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통신은 6일 보도에서 "애플이 현대차의 1월 발표와 언론 보도 등에 화가 났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대차·기아의 공시로 간접적으로 애플과의 협력설이 공식화되자 애플 입장에선 비밀 유지에 대한 원칙이 훼손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협상이 진행 중인 과정에서 이를 비밀로 하는 것은 비즈니스의 기본이다. 현대차그룹이 이런 기본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조직의 신뢰와 짜임새를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라고 말했다.
다른 한편으로 자동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 내의 애플과의 협력에 대한 회의론도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애플과의 협력설이 가시화되자 그룹 내부에서는 자체 전기차 브랜드 확대를 꾀하는 과정에서 현대차·기아가 자칫 애플의 하청업체로 전락해 전기차 주도권마저 뺏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주가는 지난달 8일 애플과의 개발협의 소식에 급등해 지난 5일까지 상승세를 이어왔다. 애플의 유력한 파트너로 얘기됐던 기아는 지난달 20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시가총액이 35조5098억원 규모로 불어나며 시총 순위 10위 안에 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지금까지의 상승액을 반납해야 할 시기가 돌아왔다. 딱 한달 전 애플카와의 개발협의 소식이 전해진 이후 기아 주가는 65%, 현대차는 30%가까이 급등했다. 당분간 현대차·기아의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겠지만 지금까지의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애플과의 논의 재개 가능성도 남아 있기도 하다. 현대차·기아는 공시에서 '중단'이라고 했지 '결렬'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다. 애플과 다른 업체와의 협상 성공이 발표되지 않는 이상 그 가능성은 남아 있는 것이다. 희박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현대차그룹은 애플에 큰 양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