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부자냐, 벼락거지냐“...투자 광풍의 시대,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벼락부자냐, 벼락거지냐“...투자 광풍의 시대,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 정종석
  • 승인 2021.01.24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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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뜨거운 주식투자 열풍...자고 나면 집값 오르는데, 주식투자도 안 했고, 집도 사지 못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
뒤늦게 부동산과 증권투자 대열에 합세한 국민들, 혹시 이들 거품이 꺼질 경우 오는 충격과 패닉을 감당할 수 있을지

[금융소비자뉴스 정종석 대표기자] 얼마 전 방송된 MBC 프로그램 ‘나혼자 산다’에 출연한 배우 김광규 씨는 구매하려던 집값이 두 배로 뛴 경험을 밝혀 화제가 됐다. 그는 몇 년 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던 중 공인중개사로부터 ‘집을 매입하라’는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곧 집값이 떨어질 것”이란 언론 보도를 보고 집을 사는 대신 강남구의 한 아파트에 월세로 이사했다. 김 씨가 살던 남가좌동 아파트는 가수 육중완이 신혼집으로 샀다. 당시 6억원이었던 남가좌동 아파트는 13억원으로 올라 육 씨는 돈을 벌었고 김 씨는 벼락거지가 돼 고통이 심하다고 토로했다.

당시 김 씨가 전세로 살던 아파트를 신혼집으로 구입한 가수 육중완 씨는 현재 집값이 두배로 뛰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방송에서 “전세로 6억원에 살던 남가좌동 아파트가 지금 13억원으로 뛰었다”며 “나는 강남 이사 후 월세 때문에 생활비가 빡빡해졌는데 전에 전세 사기 당했을 때보다 지금 상처가 더 큰 것 같다. 집에 있는 순간마다 고통이다”고 토로했다.

함께 출연한 동료들이 위로의 말을 건네자 김 씨는 이어 “육중완 씨는 집을 사서 부자가 됐고, 나는 월세로 생활비를 다 탕진하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되는 단어가 있다. 바로 '벼락거지'라는 말이다. 최근의 뜨거운 주식투자 열풍, 자고 일어나면 집값은 오르는데, 주식투자도 안 했고, 집도 사지 못한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빠져 있다. 이들을 스스로를 '벼락거지'라고 부르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보통 벼락부자라는 말은 많이 써왔으나 그 반대를 뜻하는 신조어가 벼락거지라 개념이다. 이런 사람들 가운데 조바심에 뒤늦게 주식이나 가상화폐 투자에 뛰어들었다가 큰 손해를 보는 분들도 많다. 그러면 더 큰 상실감에 빠지는 악순환을 겪게 되는 것이다. 투자 광풍의 시대에 우리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부동산 광풍 속 소외 계층인 무주택자를 겨냥한 자조섞인 신조어가 계속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나온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만, ‘벼락 거지'에 이어 정부가 공급하는 호텔 전세방에 사는 무주택자는 ‘호텔 거지'가 됐다.

집은 있지만 빈곤하게 사는 사람들을 뜻하는 ‘하우스 푸어'에 이어 최근에는 ‘렌트 푸어'까지 등장했다. 급증한 전셋값을 감당하는 데 소득의 대부분을 지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하우스 푸어처럼 내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여유 없이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번 생에 집 사기는 망했다는 뜻으로 ‘이생집망'이라는 단어마저 생겨났다.

과거 ‘벼락부자’ 등장 이어 '강남 졸부(猝富)’란 표현 많이 사용...지금 우리나라는 벼락거지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큰 사회 문제

정부의 잇따른 대출 규제로 집을 사기 더욱 어려워진 상황에서 무주택자가 겪는 좌절감과 관련한 신조어도 자연스레 늘어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이 장기화되면서 우울감에 빠지는 ‘코로나 블루’에 이은 ‘부동산 블루'가 그것이다. 연일 폭등하는 집값과 전셋값으로 좌절감에 빠진 무주택자가 겪는 우울감을 일컫는 말이다.

집을 사는 사람이 늘면서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신조어도 많이 생겨났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아파트를 산다는 ‘영끌'과 공황 상태에서의 구매를 뜻하는 ‘패닉바잉'은 올해의 부동산 풍조를 대표하는 신조어가 됐다.

이 밖에 집값이 너무 오르자 매매계약을 파기한 집주인으로부터 두 배의 위약금을 돌려받는 것을 비꼰 ‘배배테크'라는 말도 생겨났다. 또 이같은 배액배상 상황을 막기 위해 매수자가 미리 중도금을 내는 것을 ‘강제중도금'이라고도 부른다. 중도금을 넣을 경우 법적으로 계약을 파기할 수 없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최근엔 소액 자본으로도 큰돈을 벌 수 있는 주식투자로 직장인들이 대거 몰리면서 ‘동학 개미’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2030 직장인들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엔 “직장은 안정적인 수익 주는 곳일 뿐이고, 그 수익으로 주식투자 해서 아파트 종잣돈 모으는 게 목표”라는 댓글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월급만 믿다간 벼락거지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과거 벼락부자가 실체 있는 사회계층을 지칭하는 개념이 된 대표적인 경우가 ‘강남 벼락부자’다. 1960년대 중반 영동 개발이 시작된 이후 부동산으로 막대한 부를 거머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강남 졸부(猝富)’란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됐다. 질시와 비하가 함께 녹아든 개념이었다.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했고 돈을 제대로 쓸 줄 몰라 탕진하기 일쑤였던 벼락부자들에 대한 비아냥이 섞인 용어였다. 서울 강북의 명문고들이 대거 이전한 뒤 강남에 자리 잡은 이들은 새로운 계층을 형성했다. 고학력에 경제적 지식까지 갖춰 자산을 안정적으로 관리했고 재산은 물론 학벌까지 대물림하려 공을 들였다.

지금 우리나라는 벼락거지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큰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자신의 소득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올라 상대적으로 빈곤해진 무주택자들의 허무주의가 팽배하다.

한순간에 큰돈을 번 ‘벼락부자’에 빗대 정부를 믿고 주택 구매를 미루다가 집값이 너무 올라 주택을 살 수 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수입과 재산이 비슷했던 주변 사람들이 문재인 정부 초기에 집을 샀느냐 안 샀느냐, 또는 주식투자를 통해 돈을 벌었느냐 못벌었느냐에 따라 재산규모가 수억원씩 벌어졌다. 여기서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서 "부동산 공급 특단의 대책 마련"...그동안 발표한 대책 24개, 부동산값 상승률 역대 정부 최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기조 변화와 관련한 기자의 질문에 '투기 억제 기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부동산 공급에 있어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려고 한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새로 나올 특단의 정책에 기대를 거는 국민은 많지 않은 듯 하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사실상 참담하게 실패했다. 그동안 발표한 부동산 대책이 24개나 되는데도 부동산값 상승률 역대 정부 최고, 풍선효과 또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매매가격과 임대가격이 동시에 폭등하는 현상까지 생겨나고 있다.

대통령 임기가 1년 반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새 국토부 장관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정책의 방향을 잘못 잡은 채로 3년 반을 지내왔으니 지금 와서 가던 길을 돌이켜 되돌아 나오기도 어려울 지도 모른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월 임시국회를 목표로 자영업 손실보상법, 협력이익공유법, 사회연대기금법으로 이어지는 '상생연대3법'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 해소 방안으로 제시한 ‘상생연대3법’은 국가재정 부담을 가중시키고 대상자와 보상 규모 선정 과정에서 형평성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4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어 정쟁으로도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

협력이익공유법과 사회연대기금법은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전제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중대재해처벌법 등에 이은 ‘기업 옥죄기’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래저래 2021년 새해 경제는 코로나 19 방역전쟁으로 낙관을 불허한 가운데 기업과 반기업 논쟁, 그리고 포퓰리즘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투자 광풍으로 뒤늦게 부동산과 증권투자 대열에 합세한 국민들이 혹시라도 이들 거품이 꺼질 경우 오는 충격과 패닉을 감당할 수 있을지, 또 정부는 이러한 위기와 비상사태에 어떤 대비를 하고는 있는지 새해 벽두부터 일말의 걱정과 함께 불안감이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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