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茶山) 정약용과 ‘반 잔’의 철학
다산(茶山) 정약용과 ‘반 잔’의 철학
  • 박종권
  • 승인 2021.01.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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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 인간이 계획을 세우면, 신은 비웃는다고 했다. 내일 일을 어찌 알겠나. 그래도 칠흑 같은 인생 행로에 방향은 잡아야 할 것 아니겠는가. 비록 도돌이표가 거듭되는 ‘링반데룽(Ringwanderung)’ 일생일지라도 말이다. 마침 정초이다.

작심삼일이라 했다. 하지만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 시작한다. 젊을 때는 성취지향적 목표를 세운다. 중년이 되면 대체로 스스로 삼가는 수양지향적으로 변한다. 대표적인 것이 금주와 금연이다.

혹자는 말한다. 담배를 끊기는 쉬워도 술은 어렵다고. 고체인 담배는 가위로 싹둑 자를 수 있지만, 어디 술은 칼로 벨 수 있겠나. 그보다는 담배가 스스로 문제이라면, 술은 더불어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시대속에서 사회적 동물인 인간들이야 더더욱 외롭지 않겠는가. 그러니 ‘금주(今週) 금주(禁酒), 금년(今年) 금연(禁煙)’이라면서 애써 자신을 위로하는 것 아닌가.

가득 채우면 기울어지는 좌우명

다산 정약용은 술을 그다지 즐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보면 자식들에게 술을 상당히 경계하는 내용이 있다. 그럼에도 정작 주량은 제법이었던 듯싶다.

다산이 벼슬하기 전이다. 중희당(重熙堂)에서 세 번 일등을 했다. 중희당은 정조(正祖)가 원자(元子)를 위해 세웠는데, 임금이 대대로 현명하여 태평성대가 계속된다는 뜻이다. 여하튼 다산은 옥(玉)필통 가득 담은 소주를 마시게 됐다. 그때 “나는 오늘 죽었구나” 했는데, 그다지 취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또 하루는 춘당대(春塘臺)에서 왕과 학사들이 고권(考券)하면서 맛난 술을 큰 사발로 마셨다. 여러 학사들이 곤드레만드레 정신을 잃어 남쪽을 향해 절하는가 하면 자리에 누워 뒹굴기도 했다. 원래 임금은 북악산 아래 있어 신하는 북면(北面)하여 절하는 것이 법도이다. 그런데 방향을 잃어 남면(南面)해 절하고, 어전(御前)임에도 취해서 뒹굴었다는 것이다.

다산은 “시권(試券)을 다 읽고, 착오 없이 과차(科次)도 정하고, 물러날 때 조금 취기가 있었다”고 자랑(?)하고 있다. 대단한 술 실력이다. 그럼에도 자신이 반 잔 이상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바로 ‘반 잔의 미학’이다.

본디 술 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고 했다. 소가 물을 마시듯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은 절대 술 맛을 알 수 없다는 거다. 입술과 혀에 적시지 않고 바로 목구멍으로 들어가는데, 무슨 맛을 알겠느냐는 것이다. 사실 단맛 쓴맛 짠맛 신맛 모두가 혀에 퍼져 있는 미뢰를 통해 느끼는 것 아니던가.

그래서 술을 마시는 정취도 살짝 취하는 데 있다고 결론 짓는다.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하고 잠에 곯아떨어진다면 술 마시는 정취가 없다는 것이다. 이태백도 ‘한 잔, 한 잔에 또 한 잔’을 읊었지만, 친구에게 “나 졸리니 그대는 가라”고 하지 않았나. 예의없이 배웅도 안 하고.

정치도 반쯤 비워야 통합의 공간

다산이 술을 경계한 것은 목민관으로서 자세가 몸에 뱄기 때문이리라. 낮술은 물론, 하루 일과가 끝난 후에도 술자리를 피하려 했던 듯하다. 이리저리 얽히고설키다 보면 청탁에서 자유롭지 않다. 술이야 청탁(淸濁) 불문이지만, 관리에게 청탁(請託)은 ‘김영란법’ 위반이다. 실사구시 주도(酒道)인 셈으로 다산의 시에 송강 정철의 서정(抒情)이나 이백의 호방함이 엿보이지 않는 연유일 게다.

‘반 잔’ 철학을 내세운 다산은 ‘뿔 달린 술잔’을 소개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도자기 술잔에 한번에 들이키지 못하도록 뾰족한 뿔을 달았다. 공자도 제자에게 각잔(角盞)을 권했다. 헌데 ‘반 잔’의 절제가 어려웠나. “뿔 달린 술잔이 뿔 달린 술잔 구실을 못하면 어찌 뿔 달린 술잔이라 하겠나” 탄식했다니 말이다.

술 이야기가 길었다. 핵심은 ‘반 잔’이다. 제나라 환공이 늘 가까이 두었다는 ‘좌우명’도 그렇다. ‘각잔’과는 다르나 가득 차면 기운다는 점에서 경계하는 바는 같다. 술도 물도 가득차면 넘친다. 포부도 계획도 마찬가지이다. 여유없이 몰아붙이는 국정도 자칫 후회를 남기기 십상이다.

정치도 그렇다. 반쯤 비었을 때 화합과 통합의 공간이 있다. 이미 가득하다면 비워야 바로 설 것이다. 부디 새해엔 모두가 ‘반 잔의 미학’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글쓴이 / 박 종 권
· 호서대학교 AI융합대학 교수
· 언론중재위원

· 저서
<청언백년>, 인문서원
<기자가 말하는 기자>, 부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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