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열풍에서 읽는 시대정신
트로트 열풍에서 읽는 시대정신
  • 장태평
  • 승인 2020.12.01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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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평 칼럼] 요즈음 우리나라는 트로트 열풍으로 뜨겁다. 방송사들은 트로트의 놀라운 시청률 때문에 트로트 관련 유사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트로트 방송은 재방도 시청률이 고공을 달린다.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 가수들의 인기도 천정부지다.

유튜브에서는 이들의 노래에 수백만 명이 접속해서, 원가수들의 노래를 수십 배 능가한다. 임영웅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유튜브 조회 수는 3천만을 돌파했다. 이들의 팬클럽이 폭발적이다. 광고에서도 아이돌이나 인기 연예인들을 제치고 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나훈아의 KBS콘서트는 공전의 히트로 여운을 남겼다.

트로트는 우리 민족이 100여 년 전 나라 잃은 아픔과 고향 떠나 유랑하는 슬픔을 노래로 달래면서 시작되었다. 힘들고 가난한 세월 속에 광복 후의 혼란, 6.25 동족상잔의 애통, 절망 등의 한을 담아 우리네 가슴 깊이 녹아들었다. ‘황성옛터’, ‘목포의 눈물’, ‘나그네 설움’, ‘굳세어라 금순아’, ‘단장의 미아리 고개’ 등등. 노래로 애환을 달래고, 혹은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점점 다른 음악 장르에 비해 한계를 느꼈다. ‘뽕짝’이라 불리기도 하고, 중장년층의 전유물, 관광버스용 음악, 밤무대의 비주류 노래 등으로 치부되었다. 격식 있는 자리에서 부르기에는 다소 부끄럽기도 했다.

그런 트로트가 최근 화려하게 부활했다. 10대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전 세대에 열풍을 일으키며 각광받는 대중음악 장르로 환생하였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 디지털 시대에, 코로나 사태로 안방 TV가 엔터테인먼트의 주요 역할을 하게 된 점과 K-POP 등 한류 확산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적 요인은 간접적인 여건일 뿐이다. KBS의 ‘전국노래자랑’이나 ‘가요무대’ 등이 오랫동안 노력했으나, 지금과 같은 트로트 열풍을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최근의 트로트 열풍은 TV조선의 ‘미스트롯’과 ‘미스터트롯’의 영향이 크다. 이들 프로그램의 기획력이 뛰어났다. 우선 우리 마음속에 희로애락의 애환으로 질긴 생명력을 담고 흐르던 트로트의 물줄기를 재발견해 신선하게 표출시켰다. 현 세대가 무조건 옛것은 싫어한다는 생각은 선입견이다.

‘미스터트롯’ 기획자들은 지나간 옛것에서 소중한 내적 가치를 끌어내어 새로운 매력을 창조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도 통하는 방식을 구사하여 10대, 20대 젊은이들도 함께 열광하게 하였다. 주변에 널려 있는 익숙한 일상에서 금맥을 발견해 대박을 낸 좋은 혁신 사례다. 아이디어만 짜낸다면, 레드 오션에서도 혁신을 이룰 수 있다.

‘미스터트롯’ 기획자들은 프로그램 진행 방식을 수요자 위주로 기획했다. 첫째,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오픈 오디션 형식을 채택했다. 나이나 직업이나 기존 가수이거나 관계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참입 제한은 공급자 위주다. 경쟁을 억누른다. 둘째, 평가자도 수요자 위주로 정했다. 다수의 전문가들, 방청객과 일반 시청자들이 평가했다.

평가는 객관적이고 투명했지만, 평가 자체도 재미있었다. 소수가 비밀스레 권위적으로 하지 않고, 대중들의 환호 속에 즐겁게 진행되었다. 출연자들은 냉혹한 점수에 당락이 갈렸지만, 탈락자들도 즐거워했다. 탈락자들이 통과자들을 포옹하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이런 장면을 보는 시청자들도 행복했다. 정치에서도 정당들이 선거 후보자를 이렇게 선정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수요자 중심의 생각은 무대 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방송사는 플랫폼만 제공하고, 대부분 내용은 참여하는 참가자, 전문가, 시청자들이 만들어 가는 형식이었다. 출연자들에게는 진행상 큰 틀만 제시하고, 각자 자기 나름의 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출연자들은 선발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 아니라, 자기 공연을 하는 연예인이었다.

자기 책임 아래 의상이나 노래하는 방식, 그리고 백댄서 등 보조 참여자도 구성했다. 출연자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무대를 개성 있게 만들었다. 내공이 느껴졌다. 그들은 출연만으로도 행복했다고 말한다. 보는 재미도 좋았다. ‘듣고 보는 노래’로 매번 축제가 연출되었다. 시청률이 끊임없이 상승해서, 결승전에선 25.7%에 달했다. ‘미스터트롯’의 마지막 시청자 평가에는 773만 명이 넘게 참여했다. 자율과 경쟁이야말로 창의성의 근본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트로트 열풍은 많은 새로운 스타들을 탄생시키며, 가요계에 강한 자극을 주었다. 신진 실력파들이 대거 등장해서 판을 흔들었다. 사실 오랫동안 유명 가수들이 기득권을 누렸다. 그들과 달리 새로 등장한 이 신인들은 대중에게 동질감을 주었다. 어려움 속에 들풀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생곡’이라는 코너에서 출연자들는 사연을 말하며 노래를 불렀다. 시청자들은 애절한 사연에 감동하고, 그들이 눈물을 참으며 부르는 노래에 눈시울을 적셨다.

그들은 바로 우리랑 같다. 그래서 대중은 열광한다. 이렇게 프로그램이 대중의 마음속에 파고들어 가는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트로트는 이제 시대의 흐름에 맞춰 새롭게 대중의 관심을 끌며 멋진 꽃으로 피어났다. 저변에 흐르는 대중사회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었다. 기업이나 정치인들도 대중사회의 이런 흐름을 체득한다면, 우리나라가 도약하는 데 큰 힘을 보탤 것이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장태평 ( taepyong@gmail.com )

(재)더푸른미래재단 이사장
(전) 한국마사회 회장
(전) 제58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전) 기획재정부 정책홍보관리실장,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전) 농림부 농업정책국장, 농업구조정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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