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세상은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형님, 세상은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
  • 박석무
  • 승인 2020.11.17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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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무 칼럼] 편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훌륭한 소통수단이었다. 대면할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 형님과 아우, 스승과 제자, 친구와 친구 사이에 편지를 통한 의사전달은 모든 것을 편리하게 해결해 줄 수 있었다. 편지가 더욱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부자·형제·사제·붕우 사이에 편지를 통해 학문을 논하고 사상논쟁을 벌여 위대한 학문이론과 철학이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의 왕복 서찰을 통한 학문적 업적, 손암(巽菴) 정약전(丁若銓)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형제 사이의 편지를 통한 학문논쟁, 다산과 문산(文山) 이재의(李載毅)의 4단 7정 논쟁을 예로 들 수 있다.

손암과 다산은 네 살 터울의 동포 형제였다. 동급의 학문 수준, 뜨거운 개혁 의지, 나라를 통째로 변혁해버리고자 했던 두 형제, 그들은 불행한 처지에 구애받지 않고 고경(古經)을 토론하고, 현실정치의 해결책을 강구하면서 넓고 깊게 학술적 토론을 계속했던 지기 사이였다.

세상은 변해 형은 절해의 고도 흑산도에서 갇힌 몸으로 귀양 살고 아우는 남쪽 끝 바닷가 강진에서 귀양 사는 몸으로, 편지를 통해서만 서로의 뜻을 전할 수 밖에 없었다. “혈혈 천지간에 다만 우리 손암 선생만이 나의 지기(知己)가 되어주셨다. 이제 그분마저 가셔버렸구나!… 사람이 자기를 알아주는 지기가 없다면 이에 죽은 목숨보다 못한 것이다.…”(寄二兒, 1816. 6. 17)라는 편지는 며칠 전에 귀양지 흑산도에서 기다리던 아우 다산을 학수고대하다가 끝내 만나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형님의 부음을 듣고 고향의 두 아들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불행한 시기, 만나고 싶어도, 함께 이야기 하고 싶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두 형제의 귀양살이. 그들은 그런 참담한 고통 속에서도 자신들의 안위에 대한 말 한마디 없이, 나라와 세상을 걱정하고 염려하면서 요순시대 구현을 위한 토론만을 계속했었다. 요순시대가 요순시대인 이유는 당시의 법과 제도를 통해 공직자들의 근무평가를 철저하게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고적제(考績制)’라는 공직자의 근무평가제도가 물샐 틈 없이 실행되었기에 세상이 맑아지고 깨끗해져서 요순시대가 이룩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경』의 익직(益稷)편을 인용하여 고적제가 어떻게 시행되고 있었던가를 예로 들었고, 강력한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조치를 취해야만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는 주장을 폈다. 부패와 타락에 분노한 다산은 외쳤다. “형님, 세상은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입니다(天下腐已久矣)”라고 탄식하고는 우리 형제에게 국가 개혁에 대한 이론과 철학이 있지만, 우리 둘은 귀양 사는 역적 죄인으로 입을 열어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없는 처지이니 어찌해야 하겠느냐고 탄식한다.

두 아들에게 보낸 다산의 편지는 학술적인 토론도 있지만, 인간과 인간의 삶에 대한 생활철학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잘 나가는 벼슬아치 아들로, 나주 정씨 명문 집안의 후예로 남부럽지 않게 살아가던 10대의 두 아들은, ‘신유옥사(辛酉獄事)’라는 화란을 당해 아버지가 먼먼 바닷가로 역적 죄인이 되어 귀양살이를 떠나자,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다산은 귀양지에 이르자, 자신의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보다는 실의에 빠져 삶을 비관하고 있을 아들들에 대한 걱정과 근심을 잊을 수 없었다.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에 온 정신을 쏟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산은 두 아들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냈다. 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 모두와 가계(家誡) 모두를 번역해 놓았다.

1973년 1년 가까이 국보법 위반으로 역적 죄인이 되어 독방에서 징역을 살며, 그런 글을 읽으며 너무나 큰 위안을 받았다. 그 뒤 나는 그 글들을 혼자만 읽기에는 너무 아쉬워, 젊은이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번역해서 출간하였다. 첫 번역서는 1979년에 출간되었으니 이제 40년이 넘었다. 중간에 개역도 하고 또 글을 추가하기도 해서 몇십만 부의 책이 독자를 찾아갔다.

다산은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귀양 살며 공식적으로는 18제자를 길러냈다. 수준 높은 학자도 나왔다. 제자에게도 다산은 많은 편지를 보냈다. 성리학에 매몰된 고루한 유학자로서의 편지가 아니라 실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현실성이 강한 편지를 보냈던 것이 특징적이다. 독서를 권장하고 근검(勤儉)한 생활, 과수원과 남새밭을 가꾸는 일, 쌀과 보리 이외의 특용작물을 가꾸어 생계를 해결하라는 실용적인 내용이 많다.

과거제도의 문제점에 그렇게 격노하면서도, 과거에 응시하여 출세하는 방법 이외에 다른 길이 없는 이상, 그 못된 과거 공부를 해서라도 세상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현실 중시의 교훈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현실·실용·실사구시의 실학자 모습을 제자들과의 대화에서 다산의 지혜를 알아낼 수 있다. 사도가 땅에 떨어지고 교권이 흔들려버린 오늘, 다산의 편지는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안겨 주리라 믿는다.

안부를 묻고 답하며, 막힌 소식을 전달하던 편지, 편지의 효용은 확대되어 학문을 토론하고 고통을 감내하며 아픔도 치유하는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바뀌어 갔다. 특히 유배 살던 다산의 편지는 편지의 효능 모두를 포괄하는 위대한 서간문학이었음을 알게 해준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칼럼은 다산칼럼의 동의를 얻어 전재한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석무

· (사)다산연구소 이사장

· 실학박물관 석좌교수

· 전 성균관대 석좌교수

· 고산서원 원장

저서

『다산 정약용 평전』, 민음사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역주), 창비

『다산 산문선』(역주), 창비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한길사

『조선의 의인들』, 한길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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