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뉴스 강승조 기자] 지난달 발생한 독감 백신 상온 노출사건으로 제조업체 간 담합 논란이 제기된 가운데 국가조달 백신 입찰 과정에서 담합을 벌이고, 그 대가로 금품을 건네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제약업체 임원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감형을 받아 백신 공급을 둘러싼 담합 사슬에 관심이 모아진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1부(부장판사 최병률·유석동·이관형)는 14일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된 제약업체 한국백신의 임원 안모 본부장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와 함께 3억8900여만원의 추징금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돈을 받은 기간도 길고 액수도 상당하다"면서도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소속 회사도 안 본부장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안 본부장은 지난 2013~2019년 보건소와 군 부대 등 국가조달 백신 입찰 과정에서 도매업체의 약품 공급을 돕고, 그 대가로 3억8900여만원 상당의 재물 및 재산상 이익을 챙긴 혐의로 지난해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앞서 1심은 "금액이 3억원이 넘어 꽤 크지만, 안 본부장이 금원을 적극적으로 요구한 건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며 "수사기관에 범행사실을 먼저 시인하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2년을 선고하고, 추징금 3억8900여만원을 명령했다.
한편 같은 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지난달 4일 독감 백신 조달계약에서 예정가격 내 투찰한 기업은 신성약품 외에도 8곳이나 더 있었지만 적격심사에서 신성약품 외에 모든 업체가 제조업체의 공급확약서를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입찰에서는 지난 2009년 8개 제약회사가 백신 정부조달 입찰에서 가격을 담합해왔다는 사실이 공정위 조사로 밝혀져 그간 실시됐던 제조업체 간 입찰방식이 아닌 공급업체 간 입찰방식이 채택된 것으로 알려졌다.
바뀐 입찰방식에 따르면 공급업체는 정부조달에 낙찰받기 위해 제조업체로부터 공급확약서를 받아 조달청에 제출해야 하는데 신성약품 외 모든 경쟁사가 제조업체로부터 공급확약서를 받지 못한 것은 담합 때문이라고 양경숙 의원은 지적했다. 대상이 바뀌었을 뿐 지난 10년간 여전히 제조업체의 입맛에 따라 정부조달이 결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양 의원은 "대규모 백신 상온 유출사건은 제조업체 간의 담합과 정부 당국의 무관심이 만들어 낸 인재(人災)"라며 "지금이라도 조달청장이 나서서 공정거래위원회에게 이번 담합행위에 대한 조사를 요청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