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조영남은 많아야...아이디어가 세상을 만든다
이재명과 조영남은 많아야...아이디어가 세상을 만든다
  • 권의종
  • 승인 2020.09.18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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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의 정책은 참신한 발상에서 비롯...아이디어 제안은 존경받을 일이지 비난받을 일 아냐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조영남이 돌아왔다. 대한민국 포크 음악의 레전드가 오랜만에 방송에 나왔다. 송창식, 김세환,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뽕숭아학당’에 모습을 보였다. 젊은 시설 친구의 권유로 얼떨결에 오디션 무대 ‘대학생의 밤’에 섰던 사연을 소개했다. 이어 자신이 만든 노래 ‘Don’t worry about me’를 불렀다. 시청률이 순간 치솟았다. 최고 1분 시청률이 14.4%에 달했다. 지상파를 포함해 수요 예능 1위를 차지했다.

세상 부러울 게 없을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노래가 아닌 그림 때문이었다. 그림이 문제가 되어 재판까지 받았다. 가수가 그림 개인전까지 열어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으나, 그게 되레 화근을 불러들일 줄이야. 화가를 고용해 그림을 그리게 한 후 자신은 가벼운 덧칠만 하고 자기 이름으로 그림을 판 것이 사기죄로 몰린 것이다.

1심은 유죄였다. ‘대작 화가가 그림의 대부분을 그렸는데도 이를 알리지 않아 구매자들을 속였다’는 이유였다. 2심과 대법원 판결은 달랐다. 무죄였다. 문제의 그림은 고유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고, 그림을 그려준 사람들은 ‘기술적 보조자’에 불과하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미술품 거래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그렸는지 아닌지는 사람마다 생각하는 중요도가 다를 수 있고, 조수를 고용해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미술계의 관행인 점이 인정되었다.

‘현대 미술은 손기술이 아닌 작가의 사상과 인식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작가의 사상이나 인식, 아이디어가 중시되는 것은 근자에 와서 생긴 현상도 아니다. 16세기 이탈리아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또한 공방을 차려놓고 교회나 왕정에서 그림을 주문받아 밑그림을 그린 뒤 조수들과 함께 색칠해 완성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대미술은 손기술이 아닌 작가의 사상과 인식이 핵심...정책에서도 중요한 건 ‘아이디어’

아이디어 하면 떠오는 사람이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다. 누가 봐도 타고난 아이디어맨이다. 새 이슈를 발굴하고 깜짝 화두를 던지는 데 그를 따라갈 자 드물다. 쉴 새 없이 쏟아내는 정책 아이디어들로 정부와 정치권을 긴장시키곤 한다. “이건 또 뭐지?” 내용 파악에 부산을 떨게 만든다. 혹자는 내용도 모르면서 어깃장부터 놓고 본다. 선점당한 의제에 대한 분풀이인지, 현안에서 소외된 위기감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이 지사는 유독 ‘기본’을 좋아한다.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지급되는 최소 생활비인 ‘기본소득’을 맨 먼저 주장한 장본인이다. 이어 무주택 중산층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인 ‘기본주택’도 제안했다. 이번에는 ‘기본대출’ 아이디어를 꺼내들었다.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진 ‘기본’ 시리즈 3판인 셈이다. 이자율을 10%로 제한하고, 일부 미상환에 따른 손실을 국가가 부담해 누구나 장기저리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것이 제안의 골자다.

요지가 길다. “우리나라에는 전액무상인 복지와 전액 환수하는 대출제도만 있고 그 중간이 없다.” “중간 형태로 일부 미상환에 따른 손실(최대 10%)은 국가가 부담해 누구나 저리장기대출을 받는 복지적 대출제도(기본대출권)가 있어야 한다.” “복지국가라면 서민의 금융위험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데, 국가마저 고금리로 미상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 “기본대출을 통해 수탈적 서민금융을 인간적 공정금융으로 바꿔야 한다.”

칭찬보다 비난이 많다. 금융, 신용대출 시장을 근본적으로 망가뜨리는 발상으로 깎아내린다. 서민금융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되나 비현실적인 제안이라는 평가절하다.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수 있고, 제2금융권의 전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기존 서민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것을 경고까지 내놓는다. 애써 내놓은 아이디어가 뭇매를 맞고 있다.

아이디어 상태에서의 찬반논쟁은 무의미...필요한 것은 아이디어 가치를 꿰뚫어 보는 혜안

아이디어 상태에서의 논의는 무의미하다. 논전(論戰)만 키운다. 정작 필요한 것은 아이디어의 가치를 꿰뚫어 보는 안목과 식견이다. 물론 아이디어만으로는 정책이 완성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디어 없이는 정책 성안이 불가능하다. 초기의 아이디어는 미흡하게 마련이다. 실행 가능성을 점치기 힘들다. 뜬구름 같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실험과 검증을 통해 성공 확률을 높이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아이디어를 정책화하려면 인적·물적 자원이 대거 투입된다. 경험과 지식, 지혜가 첨가되고 보완·보충이 이루어진다. 그럼에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곳곳에 장애와 험로가 가로놓여 있다. 그러다보니 성공할 경우 대개는 공로가 아이디어 제공자보다 정책화 구현자에 돌아가곤 한다. 그림 관련 1심 판결에서 아이디어의 가치보다 실제로 그림을 그린 노력을 더 인정한 것처럼.

걱정도 있다. 그리되면 어느 누구도 원천 아이디어는 물론 보완·보충 아이디어를 내려하지 않을 것이다. 그림 재판의 2심과 대법원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아이디어의 가치를 인정한 것은 그런 점에서 진일보한 결정이다.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게 아니다. 완성된 정책에는 원래 시발점이 되었던 아이디어가 흔적조차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디어에 대한 무시와 경시의 대가는 치명적이다. 사회 진보와 국가 발전을 해치는 자해행위나 진배없다.

양질의 정책은 참신한 발상에서 비롯된다. 아이디어 제안은 노력 없이 거저 되는 게 아니다. 정책화 과정 못지않은 고뇌와 고행의 연속이다. 인정받고 존경받을 일이지, 공격받고 비난받을 일이 결코 아니다. 양질의 아이디어 원석(原石)에 고도의 정책화 세기(細技)가 가해질 때 보석 같은 정책으로 태어난다. 조영남, 이재명 같은 아이디어맨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군계일학보다 다다익선이 낫다.

필자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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