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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팔라완 교도소에 가보니 "하루 일당 훌쩍 넘는 결핵검진비…우리에겐 사치입니다"
필리핀 팔라완 교도소에 가보니 "하루 일당 훌쩍 넘는 결핵검진비…우리에겐 사치입니다"
  • 편집팀 김혜림기자
  • 승인 2012.09.2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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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약 586㎞ 떨어진 외딴 섬 팔라완. 마닐라에서 비행으로 1시간 30분, 또 자동차로 30분가량 걸려 도착한 이 곳 팔라완주의 한 교정시설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19일 오후(현지시각) 교도소 앞마당에 다소 긴장한 표정의 수감자 20명이 한 줄로 늘어서 디지털 엑스레이 검진을 받기 위해 차례로 이동검진차량에 올랐다.

 이날은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KOFIH·총재 이수구)이 디지털 엑스레이와 결핵신속진단법(GeneXpert) 등 고성능 진단 도구를 갖춘 이동검진차량을 몰고 4번째로 이 교정시설을 방문한 날이다. 20명의 결핵의심환자들의 감염 여부를 가려내기 위한 것으로, 본격적인 검진 작업은 오전 10시35분부터 시작됐다.

 의사·간호사·방사선사·임상병리사·운전사 총 5명으로 구성된 이동검진팀은 의심환자들을 대상으로 면담 후 진료신청서를 작성하고, 곧바로 흉부 엑스선을 촬영했다. 몇 초도 안걸려 스크린에 엑스선 판독 결과가 떠오르자, 이를 토대로 객담(가래)도말검사와 GeneXpert 검사를 했다.

 첫 수감자의 결핵 감염 여부를 가려내는데 소요된 시간은 정확히 1시간 48분 후인 오후 12시23분. 기존에 한 명의 결핵환자를 발견하는데 2주 이상이 걸렸던 것과 비교하면 놀랄만한 속도다.

 총 859명이 수감 중인 이 교정시설에서 결핵은 여전히 두려운 질병이다. 10평(32㎡) 남짓한 공간에서 20~24명의 수감자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다 보니, 한 명이 기침이라도 하면 다른 수감자들은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다.

 팔라완주 교도소에 13년째 복역 중인 조마리 P. 셀리(Joemarie P. Celie)는 "비좁은 방에서 20여명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면서 양동이 한 개에 담겨진 물을 나눠쓰고 컵 한개로 돌려가며 사용하고 있다"며 "당연히 한 명이 결핵에 감염되면 모두 다 같이 감염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은 많은 수감자들이 기침 등의 결핵 증상을 보여도 정말 결핵에 걸린 것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어 불안했다"며 "하지만 이번 검진으로 결핵환자를 정확하게 가려내고 빠르게 치료를 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 곳 팔라완주 교도소의 더욱 큰 문제는 재소자가 처음 교도소에 입소할 때 기본적인 건강검진조차 실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결핵과 같은 전염병을 앓고 있더라도 이를 발견하지 못한채 무조건 수감부터 이뤄진다.

 라몬 P 에스피나 교도소장은 "특히 팔라완주 교도소에는 결핵에 취약한 범죄자들이 각 지역에서 몰려들고 있고 덥고 습한 날씨까지 더해 감염이 빠르게 확산될 수 밖에 없다"며 "그동안 간호사 2명이 결핵 증상을 2주 이상 보이는 수감자를 대상으로 면담과 객담검사로 감염 여부를 가려내지만 이는 다른 수감자들에게 전파되기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디지털 엑스레이 검사는 그동안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라며 "이 서비스가 우리 시설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에 확산돼 많은 필리핀 국민들이 결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되길 희망 한다"고 덧붙였다.

 필리핀 내 결핵 문제는 비단 교정시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팔라완은 필리핀에서도 특히 소외된 지역으로, 의료접근성이 취약해 대부분의 주민들은 제때 검진과 치료를 받지 못해 폐렴이나 기타 합병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비용 부담이 크다는 것도 문제다. 필리핀에서 필름 엑스레이를 한 번 찍는데 드는 비용은 300페소(한화 8040원). 하루 최저 임금이 164페소(약 4395원)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필름 엑스레이 검진조차도 이들에게는 '사치'나 마찬가지다.

 노엘 마칼라드(Noel Macalad) 필리핀 국가결핵표준연구소장은 "새로운 검진법을 도입한 첫 사례인 팔라완주의 이번 사업 성과에 대해 필리핀 중앙정부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며 "또 현재 다른 지역에서도 이 검진법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팔라완에서의 새로운 진단법 성과 여부는 필리핀 국가 전체의 결핵 관련 정책을 개선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KOFIH는 지난해부터 2013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 서태평양지역 사무처(WPRO), 필리핀 보건부, 팔라완주, 푸에르토 프린세사시, 결핵연구원 등과 협력해 팔라완 지역에서 ▲환자발견강화사업 ▲결핵관리핵심요원교육 ▲검사실 기자재 지원 등을 골자로 한 '필리핀 결핵관리 역량강화사업(DetecTB)'을 진행하고 있다.

 KOFIH와 팔라완 주정부는 이 사업을 통해 1차적으로 사업이 완료되는 내년 말까지 팔라완 내 결핵환자 발견율을 현재보다 10% 가량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류우진 WHO 필리핀 사무소 기술자문관은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은 팔라완 지역 내 '당일 진료, 당일 치료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며 "이 진단법은 전염병 관리에서 조기진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입증하는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며, 이 근거를 통해 필리핀 보건부가 진단 알고리즘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 필리핀 내 결핵환자 인구는 전체 인구 9800만명 중 5%인 약 45만명에 달하며, 하루 80명 가량의 결핵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선정한 22개 고위험 결핵국가 중 9위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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