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정직을 무시하는 세력에 이끌리는 나라
정의와 정직을 무시하는 세력에 이끌리는 나라
  • 임정덕
  • 승인 2020.06.2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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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덕 칼럼] 현재의 집권 세력들이 대학에서 민주화운동을 거세게 전개하고 있을 무렵에 경험한 일이다. 그때 본인이 가르치던 학교에서 기말고사나 중간고사 때에는 교실의 흰 벽이 새까맣게 변해 있곤 했다. 소위 커닝을 위해 메모해 놓은 것이다. 필자가 수업시간에 그런 행위를 크게 나무랐다.

민주화라는 큰 뜻을 가지고 헌신하고 희생하겠다는 젊은이들이 스스로는 학칙으로, 또 사회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부정행위를 서슴지 않아서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고 항의하였다. 민주화라는 대의를 위해서 투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커닝 같은 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냐는 취지였다.

비슷한 무렵 대통령선거가 있는 학년말에 당시 운동권 지휘부가 학생들이 대선 감시 운동을 하겠다는 이유를 내세워 기말시험 거부를 결의했다. 선거운동 감시 활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말고사 자체를 거부하겠다는 논리였다. 어쨌든 학생들이 오지 않으면 시험을 치를 수 없으니 난처한 형국이었다. 그러자 교육 당국이 기말시험을 일주일 앞당겨 치르는 묘책(?)을 서둘러 내놓았다.

필자는 당연히 맡은 과목의 시험을 바뀐 일정에 맞추어 치르겠다고 선언했다. 선거운동 감시라는 뜻을 존중할 수는 있지만 변칙이라 하더라도 학사일정이 조정된 이상 시험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됐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부 학생이 항의차 찾아왔다. 나는 학생들이 대선 감시 활동을 하는 자체는 좋게 생각하고 찬동하지만 시간상으로 기말시험이 끝나고도 일주일여의 충분한 시간이 있으므로 그 때문에 기말시험을 거부하는 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타일렀다.

한 학생이 말하기를 그렇더라도 이 운동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운동권 지도부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시험을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므로 불공평해지기 때문에 시험을 치지 않아야 한다는 전혀 맞지 않는 논리를 폈다. 그때 필자가 크게 야단친 내용을 그대로 소개하겠다. 진정으로 자기들 운동에 헌신하는 극소수 학생은 주야로 관악산 텐트에서 지내면서 개인적 손해나 불이익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는다고 꾸짖었다.

그들 논리대로라면 그 사람들을 위해서 수업이든 시험이든 모든 학사일정을 아예 포기하라는 말이냐고 반박했고, 예정대로 시험을 치렀다. 주변의 몇몇 교수에게 동참을 권유했지만 아무도 호응하지 않았다.

위의 두 가지 예가 현재의 집권 세력과 그 주변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사고와 가치관, 도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일단의 근거를 제공한다. 다시 말해 조국 사태를 보면서 든 허탈감, 또 그 지지자들과 주변의 언동과 사고방식에서 느끼는 당혹감에 대한 배경 설명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많은 사람에게 의혹과 실망감을 안겨 준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가 반성하기는커녕 자기 합리화에 몰두하는 모습은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훈련되고 기획된 과정의 결과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동안 수없이 지켜본 ‘내로남불’이라는 위선과 뻔뻔스러움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들이 쌓아 온 과정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자기들이 옳다고 믿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합리화되고 정당화되어야 하고, 그렇게 하다 보니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에도 자신이나 자기편이 관계된 일은 법이나 보편적 기준에 어긋나더라도 용납되고 양해되어야 한다는 황당한 맹신이 자기 패거리 내에 광범위하게 생긴 결과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예부터 선조들이 강조해 왔고, 또한 세계적으로도 보편화되어 존중받는 가치, 즉 지도자나 앞선 자일수록 자기 자신이나 주변에 더 바르고 엄격해야 한다는 가르침은 희화화되고 무용지물이 된 나라로 전락시켰다. 남이 보지 않을 때에도 바른 생각과 행동을 하도록 강조하는 신독(愼獨)이라는 말은 무시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예 있는지도 모르게 잊혀 버렸다.

그래도 나라의 장래를 포기할 수 없다면 답답한 현실과 배경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앞세우면서 끼리끼리를 넘어선 세대 간 공감대 형성을 위한 작업을 다시 시작할 때다.

#이 칼럼은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의 '선사연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필자소개

임정덕 ( jdlim@pusan.ac.kr )

부산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효원학술문화재단 이사장
(전) 부산발전연구원장
(전) 한국남부발전 상임감사위원
(전) 대통령직속 지역발전위원회 위원


저 서

적극적 청렴-공기업 혁신의 필요조건, 2016
부산 경제 100년-진단 30년+ 미래 30년, 2014
한국의 신발산업, 산업연구원,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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