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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기본소득 타령...한번 제대로 따져보기는 했는가
정치권의 기본소득 타령...한번 제대로 따져보기는 했는가
  • 권의종
  • 승인 2020.06.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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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선점이 꼭 능사 아냐...쟁점화한 이상 차제에 합리적 결말을 짓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정치인은 과연 정치인이다. 새로운 화두를 만들어내는 데는 달인이다. 기본소득제를 한국 정치의 ‘핫 이슈’로 쏘아 올렸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물꼬를 텄다. “배고픈 사람이 빵은 먹을 수 있는 물질적 자유 극대화가 정치의 목표”라며 제도 도입을 공론화했다. 차기 대선 주자들이 일제히 논쟁에 가세하면서 정치 담론의 한복판을 점령 중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찬성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기본소득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 정의롭다”며 반대 입장이다. 김부겸 전 의원도 부정적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취지를 이해한다”며 “찬반 논의도 환영한다”고 말한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기본소득제는 사회주의 배급제”라며 혹평을 가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한국형 기본소득 도입 방안을 집중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생각하는 게 다들 제각각이다.

기본소득제 논의가 진보와 보수를 넘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선이 2년 가까이 남았는데도 지금부터 주요 의제에서 밀리면 여론에서 외면 받고 지지도가 떨어질까 두려운 듯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발(發) 경제위기와 4차 산업혁명의 본격화로 일자리 축소가 예상됨에 따라 기본소득제가 2022년 대선의 핵심 어젠더로 부상할 공산이 작지 않아 보인다. 각자 실속 차리기 바쁘고 자기 살 궁리만 하는 모습이다.

국민들의 관심 또한 상당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돈 주겠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거의 없다. 리얼미터가 18세 이상 국민 500명을 대상으로 기본소득 도입 여론을 조사했다. 찬성 48.6%, 반대 42.8%로 나왔다. 찬반 여론이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히 맞섰다. 연령대 별로는 찬성이 20대와 60대에서 50%대 비율을 보였으나, 70대 이상에서는 54%가 반대 의견에 공감했다. 50대, 40대, 30대에서는 두 응답의 비율이 엇비슷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물꼬 튼 기본소득제 공론화...여야 대선주자들 논쟁 가세로 ‘백가쟁명’

기본소득(Basic Income)이 뭐길래. 재산이나 소득, 고용 여부, 노동 의지 등과 무관하게 정부 재정으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하게 최소생활비를 지급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지난 번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특수 상황에서의 일회성 복지정책이라면, 기본소득은 지속적인 복지정책에 해당한다. 무조건성, 보편성, 개별성이 특징이다.

말들은 무성하나 전격 도입은 힘들어 보인다. 기술적 검토와 여타 정책과의 연계성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재원이다. 기본소득 찬성론자조차도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다. 국민 한 사람당 매월 30만 원씩만 지급하려도 연간 187조 원이 들어간다. 50만 원을 주려면 309조 원이 소요된다. 2020년 예산 512조 원의 6할이 넘는 거액이다. 받는 입장에서야 하찮을 수 있으나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현실적으로 증세만한 대안이 없다. 소수 계층에 대한 증세든 보편적 증세든 각종 세금을 대폭 인상할 수 밖에 없다. 소비와 투자에 쓰여 할 돈을 세금으로 거둬들여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게 과연 합당한 일인지. 고민을 요하는 부분이다. 더욱이 증세 만으로는 재정적으로 감당이 어렵다. 막대한 재원이 소요되는 만큼 세출 조정, 국채 발행 등이 함께 고려될 수밖에 없다.

기본소득은 복지체제를 위협한다. 기존 제도의 재조정과 맞물린다. 시스템을 원점에서 재구성하고 제도를 근본적으로 변혁해야 할 지 모른다. 소득공제 등 비과세 및 세금감면 등의 폐지나 축소가 불가피할 수 있다. 그 경우 기존 수혜 계층의 반발이 상당할 것이다. 이래저래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성급한 긍·부정은 금물...정부와 국회, 시민사회, 전문가 아우르는 폭넓은 논의와 검토 필요

해외 사례는 타산지석이 되곤 한다. 기본소득을 맨 먼저 시행한 곳은 미국의 알래스카 주다. 석유 수출 수입으로 알래스카 영구기금을 설립, 1982년부터 6개월 이상 거주한 모든 지역민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한다. 스위스의 경우 2016년 정부가 매달 성인에게 2,500프랑, 18세 미만 어린이 및 청소년에게 625프랑씩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국민투표에 붙였으나 부결되고 말았다.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시행은 핀란드가 전 세계 최초다. 2017년 1월부터 기본소득제를 처음 실시했다. 2017년부터 2년간 일자리가 없어 복지수당을 받는 국민 중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의 기본소득을 지급했다. 기본소득이 빈곤 감소, 고용 효과 등에 대한 영향을 검토한 뒤 성과가 확인되면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말 뿐인 긍정은 허사가 된다. 기본소득 지급이 근로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 선심성으로 흘러가면 더 큰일이다. 그렇잖아도 지방자치단체들 간의 포퓰리즘 경쟁이 도를 넘고 있다. 청년수당, 농민수당, 소풍수당, 효행수당 등 온갖 명목으로 혈세가 뿌려지고 있다. 올해의 현금성 복지예산만도 54조 원에 이른다. 봇물 터지듯 커지는 복지 수요에 기본소득제가 기름을 끼얹을까 걱정이다. 노파심이 앞선다.

부정적 시각으로만 볼 일도 아니다. 기왕 기본소득제가 이슈화된 이상 차제에 합리적 결말을 짓고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 싶다. 정치권 만의 논의를 넘어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 전문가를 아우르는 폭넓은 논의와 검토가 바람직하다. 기본소득의 개념, 기존 복지체제와의 관계, 재원확보 방안을 점검하는 정부의 책임 있는 접근이 필수적이다. 이슈는 선점이 능사가 아니다. 개혁과 개선의 단초가 될 때 빛을 발한다. 말이 앞서면 실수가 잦은 법. 한국 정치의 고질병 아닌가.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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