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포기’ 요구불예금 13조 급증
[금융소비자뉴스 김나연 기자] 한국은행의 잇단 기준금리 인하에 시중은행의 저축성 예금이 두 달 새 8조 원 가까이 빠져나가면서 고객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가계 재정악화로 시중에 여윳돈이 줄어든 것과 지나치게 낮아진 금리가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는 분석이다. 이 와중에 고객들은 이자를 아예 포기하고 수시입출입식 통장에 묵히는 현금만 13조원 넘게 불어났다.
5일 은행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KB국민·신한·우리·NH농협은행의 정기 예·적금 잔액은 682조2184억 원으로 지난 4월말 687조6567억 원 대비 5조4724억 원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 3월말과 대비하면 8조2002억 원이 빠져나갔다.
코로나19로 경기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정기예금에 묵혀둘 만한 여유 자금이 이전보다 축소된 것도 은행 정기 예·적금에서 돈을 거둬드린 이유다.
또한 초저금리 시대에 직면하면서 0%대 예·적금 금리가 보편화됨에 따라 더 이상 은행에 돈을 맡겨둘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고객들이 대거 이탈행보를 보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저축성 예금은 신규나 만기된 자금 재 예치 수요가 줄고 있다"며 "코로나19가 확산되고 금리 인하가 계속되면서 요구불예금이라고 하는 유동자금만 대기성자금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시입출식 통장과 같은 요구불예금에 돈이 쌓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구불예금은 예금자가 언제든지 찾아 쓸 수 있는 대신 기대이자는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 요구불예금에 묵혀두는 돈이 많아졌다는 것은 그만큼 현재의 이자를 포기한 채 표류하는 자금이 늘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4대 은행에 누적된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달 말 432조7307억 원으로 한 달 전(419조8771억원)보다 3.1%(12조8536억원) 늘었다.
한은이 지난달 28일 기준금리를 유례없던 0.5%로 추가 인하하면서 예금이탈에 더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7월 연 1.75%에서 4차례 인하됐다. 이에 같은 기간 1%대 중후반이었던 시중은행의 예금금리도 0%대까지 내려오면서 예금수요는 더욱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들이 정기예금 영업에 제동이 걸리면서 악영향을 받을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못지 않게 요구불예금이 확대되면서 자금조달이 가능해진 것은 반길만한 소식이다.
특히 은행이 짊어져야 할 이자 지출이 거의 없는 요구불예금의 특성을 감안하면, 도리어 은행의 짐은 한층 가벼워지게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예·적금의 감소는 보통 경기 침체의 대표적 시그널이지만, 최근 시중 부동자금의 확장세를 고려하면 단순히 불황의 영향으로만 해석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자금 조달 금리를 경감할 수 있어 은행으로서는 나쁠 이유가 없는 흐름"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