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아닌 ‘전(全) 취업자 고용보험’...급하다고 서두르면 안 돼
‘전 국민’ 아닌 ‘전(全) 취업자 고용보험’...급하다고 서두르면 안 돼
  • 권의종
  • 승인 2020.06.02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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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제도의 단순 벤치마킹 위험...시간 걸리고 비용 들어도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 창안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한라산 사려니숲길은 가볼만 하다. 사시사철 인파가 몰린다. 제주시 비자림로의 봉개동 구간에서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의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숲길이다. 총 길이 15km, 숲길 전체의 평균 고도 550m이다. 전형적 온대성 산지대에 해당하는 숲길 양쪽을 따라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산딸나무, 편백나무, 삼나무 등 다양한 수종이 자라는 울창한 자연림이 넓게 펼쳐져 있다.

오소리와 제주족제비를 비롯한 포유류, 팔색조와 참매 등 조류, 쇠살모사를 비롯한 파충류 등 다양한 동물이 서식한다. 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울창한 숲길을 걷노라면 피톤치드를 마음껏 느끼게 된다. 싱그러운 힐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009년 7월 제주시가 기존의 관광 명소 이외에 제주시 일대의 대표적인 장소 31곳을 선정해 발표한 ‘제주시 숨은 비경 31’ 중 하나이다.

숲길을 찾는 이는 많으나 완주하는 사람은 적다. 여행객의 바쁜 일상 때문인지 상당수가 붉은오름 정도까지만 잠시 걷다 내려온다. 가벼운 산책이나 사진 촬영 등으로 기분만 내는 데 그치고 만다. 출발지부터 목적지까지 걷는 방문객은 20% 정도라는 게 공원 관계자의 귀띔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대충 들러보고 서둘러 자리를 뜨곤 한다.

관광은 그래도 될지 모르나, 정부 정책과 제도는 그러면 안 된다. 그러다 큰일 난다. 국가 경쟁력은 정책과 제도로 판가름이 난다. 대한민국이 코로나19 방역의 모범 국가로 평가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대규모 조기 검사를 실시,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일상의 안정을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수박 겉핥기 식의 대충 둘러보기...관광은 그래도 되지만 정부 정책과 제도는 그러면 큰일 나

역대 정부의 공이 크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1963년 의료보험법이 제정하고도 14년 동안 시행되지 못했다.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여 직장의료보험제도를 처음 실시했다. 대기업 등 일부 계층 중심의 선별적 보험에 불과했다. 1989년 노태우 정부 들어 전 국민 의료보험이 도입되었다. 이어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 수백 군데로 쪼개져 있던 건강보험조합을 통합하고 재원 문제를 마무리해 현재의 골격이 완성되었다.

이번에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추진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화두를 던졌다. “고용보험 적용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시행해 우리의 고용안전망 수준을 한 단계 높이겠다”고 밝혔다.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 가입을 조속히 추진하고,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 나갈 것을 천명했다.

고용보험은 실직자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면서 재취업을 유도하고 직업훈련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1명 이상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체는 모두 가입해야 하며, 사업주와 근로자가 보험료를 반반씩 부담한다. 그럼에도 고용보험 가입자 수는 1378만2000명으로 전체 경제활동인구 2778만9000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대통령 발표가 있고나서 20대 국회가 즉각 화답했다. 고용보험 가입 대상을 문화예술인으로 확대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등은 여전히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자영업자도 고용보험 가입 대상이나 소득이 불안정하고 비용 부담을 이유로 가입을 꺼린다. 가입률이 저조하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자영업자 수는 2020년 3월 기준 2만4731명으로 전체 자영업자 553만7000명의 0.4%에 불과하다.

고용보험 확대의 정부 로드맵...필요성과 당위성 인정되나 재원마련 등 현실적 제약 만만찮아

정부는 올해 안에 고용보험법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특수형태근로종사자 63만 명도 고용보험을 적용받게 할 계획이다. 자영업자와 무급 가족 종사자 680만 명에 대해서는 2021년 소득 파악과 징수체계 개편 등의 검토를 거쳐 고용보험법 개정 의사를 밝히고 있다. 제도 밖의 노동자를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려는 정부의 고용보험 로드맵에 반대할 자 많지 않다. 국민 대다수가 동의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실업난 가중을 감안하면 되레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고용보험의 확대에 따른 현실적 제약 또한 만만치 않다. 재원 마련이 중요 관건이다. 대규모 증세가 불가피하다. 코로나 사태로 고용보험 구조가 2조원 이상의 적자가 예상된다. 결국 세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현재의 고용보험 상황이 이럴진대 실업 위험이 큰 대상을 포함할 경우 재정 지출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세금을 기준으로 고용보험제도가 시행될 경우 자영업자 매출이 다 드러나는 것도 또 다른 부담 요인으로 떠오른다.

사소한 얘기로 들릴지 모르나 용어부터 바로잡아야 할 듯하다. ‘전 국민’의 표현을 쓰다 보니 은퇴해서 쉬고 있는 퇴직자까지도 보험에 가입하는 것으로 오해될 소지가 다분하다. 고용보험 대상을 현재의 임금노동자(employee)에서 전체 취업자(worker)로 확대 적용하는 의미를 살려 ‘전(全) 취업자’ 고용보험이라고 하는 게 정확한 정의일 수 있다.

급하다고 서두르면 안 된다. 선진제도에 대한 단순 벤치마킹은 위험천만하다. 덴마크나 스웨덴은 100년 가까운 기간을 통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왔다. 우리는 우리 실정에 맞는 제도를 신중히 창안하는 게 맞다.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들더라도 제구실하는 걸작으로 빚어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고용 한파로 고통 받는 실직자에게 사려니숲길처럼 실질적 힐링이 되어줄 제도로 완성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와 21대 국회에 거는 커다란 국민적 기대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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