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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전등화 한국 경제, ‘바람불어 좋은 날’로 만들어야
풍전등화 한국 경제, ‘바람불어 좋은 날’로 만들어야
  • 권의종
  • 승인 2019.11.1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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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클수록 기회 커지는 법...거센 바람이 큰 배 만들 듯 세찬 바람(wind)서 벅찬 바람(hope) 찾을 때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바람불어 좋은 날’. 중년 이상은 다들 기억하는 추억의 영화다. 1980년 발표 작품이다. 최일남의 중편 소설 ‘우리들의 넝쿨’이 원작이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송기원이 각색했다. 반정부 활동 혐의로 수배 중이던 송기원은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없자, 엔딩 자막에 “이장호 각본”으로 써넣었다. 80년대 고도성장 속에서 빈발한 억압과 빈곤, 사회적 모순을 블랙코미디로 처리했다.

서울에서만 10만 명이 넘은 관객을 모았다. 지금에 비하면 초라하나 당시로는 엄청난 흥행이었다. 제19회 대종상 영화제 3개 부문, 제17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을 비롯하여 3개 부문을 휩쓸었다. 광주민주화혁명 발생으로 엄격했던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던 데는 나름 가슴 죄는 사연이 있다.

검열위원회에서 주제 의식과 표현 방식이 문제가 되었다. 통상 2시간 남짓 걸리는 심사시간이 10시간으로 길어졌다. 소설가 박완서 위원의 지지와 설득이 주효했다. 부정적 생각이던 검열위원들의 마음을 어렵사리 돌릴 수 있었다. 시골 청년의 상경기를 통해 여러 군상의 세태를 풍자, 구시대적 질곡을 통렬히 날리고 새 시대에 대한 갈망을 표출했다는 호평가다.

중국집 배달부, 이발사 견습생, 여관 종업원으로 일하는 덕배, 춘식, 길남 세 젊은이는 각각 세 여자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그러던 어느 날 춘식은 폭행 사건에 연루되면서 교도소에 가게 된다. 길남은 군 소집영장을 받고 입대하기에 이른다. 세 청년은 좋은 날에는 바람 불어도 흔들리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쉬지 않고 바람이 몰아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버티려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추억의 영화 ‘바람불어 좋은 날’...바람 부는 세상서 흔들리지 말자고 다짐하는 장면 “가슴 뭉클”

“까마귀는 바람 부는 날 집을 짓는다.” 아모레퍼시픽에 가면 만나게 되는 글귀다. 서경배 회장이 자주 쓰는 말이라 한다. 해설이 그럴듯해 마음이 쏠린다. “까마귀는 나뭇가지를 물고 와 집을 짓는다. 바람이 없는 날 집을 지으면 바람이 셀 때 무너진다. 잘 나가는 기업도 바람이 불면 훅 한 방에 갈 수 있다. 항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당부의 말이다.

위기가 기회가 된 사실은 역사가 말한다. 유대인이 대표적 사례다. 중세시대 주력 산업이던 농업에서 소외된 유대인은 상업과 금융업에 진출,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근대에 와서는 소매업 진출 길이 막히자, 도매 유통업에 진출, 제조업과 소매업의 중간에서 양쪽 전후방 산업을 지배했다. 제조업 단체인 길드에서도 받아주지 않자, 고객만족과 혁신경영으로 경쟁우위를 확보했다.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은 일본의 사례도 유사하다. 80년대 중반까지 욱일승천의 기세였던 일본 경제는 1985년 플라자합의로 급제동이 걸린다. 인위적 엔화 절상으로 엔화는 그 후 2년간 달러화 대비 65.7%가 절상되었다. 급작스러운 엔고로 버블이 붕괴되고 그 후유증에 시달리며 ‘잃어버린 30년’의 쓴맛을 봐야 했다.

주저앉을 일본이 아니었다. 고환율과 불황 극복을 위한 절치부심이 집요했다. 일본 은행과 정부는 금융완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총동원, 기업 지원에 나섰다. 기업은 연구개발(R&D)에 과감히 투자했다. 글로벌 인수합병(M&A)을 통해 시장 확대를 추진했다. 사업장을 생산비가 저렴한 동남아 등으로 옮기며 가격 경쟁력을 다졌다. 기업 경영은 회복되었고 경기는 확장세로 돌아섰다. 개인과 기업의 소비가 늘면서 실물경제가 성장 기반에 올랐다.

위기를 기회로 연출한 유대인의 삶, 절치부심으로 회생한 일본 경제...한국 경제의 '타산지석'감
 
풍전등화로 비유되는 한국경제의 타산지석감이다. 일본 사례라 해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민족 감정을 앞세우는 자폐적 쇼비니즘은 늘 경계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큰바람 한 방에 훅 날아갈 수 있는 게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악화일로의 경제지표가 말해준다. 성장률이 떨어지고 경제가 침체되는 와중에 수출, 투자, 소비가 줄고 실업이 늘고 있다. 경제와 고용에서 경고음이 울린 지 벌써 오래다.

국민의 삶을 지탱하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의 적립금이 바닥을 들어낼 조짐이다. 더 나은 경영여건을 찾는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탈(脫)한국 행렬이 길어지고 있다. 내수시장에서 악전고투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데도 너나 할 것 없이 비난과 비판만 쏟아낸다. 문제점 지적이 백가쟁명을 이룰 정도다.

반성은 안 보이고 책임 전가에 분주하다. 야당은 정부 여당에 실패 책임을 묻기 바쁘고, 정부는 대외환경에 탓을 돌리는 구태를 답습한다. 잘되면 내 탓, 잘못되면 조상 탓이라더니, 꼭 그 꼴이다.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고, 달을 보라고 손을 들어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보는 형국이다. 본질을 외면한 채 지엽적인 것에 집착한다.

대안 부재의 현실이 안타깝다. 바람 막을 궁리는 하지 않고 바람 걱정만 하고 있다. 위기의 바람이 어디서, 어떻게, 왜 부는지 알지 못한다. 알려고도 않는다. 위기가 클수록 기회도 커지는 법. 거센 바람이 빠르고 큰 배를 만든다. 바람을 바람으로만 보면 안 된다. 세찬 바람(wind)을 견디면서 그 속에서 벅찬 바람(hope)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바람불어 좋은 날이 된다. 영화에서 바라던 대로.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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