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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S, DLF 파생상품 사고...'금융 소통 부재-부실'이 빚은 참사
DLS, DLF 파생상품 사고...'금융 소통 부재-부실'이 빚은 참사
  • 권의종
  • 승인 2019.08.2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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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 은행, 무식 직원, 무지 고객, 무리 상품의 ‘4無 합작품’...약관, 안내서 쉽게 하고, 소비자 교육 강화해야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수학을 잘하려면 국어를 잘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수학 공부를 잘 할 수 있는 지를 묻는 말에 대한 전문가의 답변이다. 모든 과목이 그렇지만, 특히 수학은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필수적이라는 비유적 설명이다. 실제로 수학에서 정답을 구하려면 맨 먼저 문제 내용을 이해하고 그에 맞춰 계산을 하는 게 바르고 빠른 길이다. 질문 내용을 이해 못해 방향 설정이 잘못되면 아무리 계산을 잘해도 답을 구할 수 없다.

알고 보면 별 거 아닌 듯싶지만 정곡을 찌르는 해법이다. 곱씹어볼수록 시사하는 바 크다. 어리석은 질문에 대한 현명한 답변, 우문현답이 아닐 수 없다. 이런 간단한 사실을 간과함으로써 수학이 어렵게 느껴지고 실력 향상이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결국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문해력(文解力)이 문제 해결의 핵심 열쇠인 셈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내놓은 문해력 보고서는 충격이다. 가맹국들 중 일본이 압도적 1위다. 2위 핀란드, 3위 네덜란드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한국은 평균치보다도 낮은 10위에 그친다. 게다가 고급 문서의 해독력은 꼴찌권(圈)이다. 문해력의 취약성은 ‘실질 문맹’으로 정의된다. 문장 속 단어는 모르는 게 없는데,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우리나라의 실질 문맹률은 75%로 조사되었다.

‘낫 놓고 기역 자’는 누구나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낫에 관한 설명서를 읽고 낫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100명 중 75명이나 된다는 얘기다. 세계 최저 수준의 문맹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실질 문맹률이 75%라니. 믿기지 않는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열심히 공부하며 노력한 결과가 ‘문맹’이라니. 어이가 없다. 원인이 무엇일까?

한국 문해력 OECD 하위, 고급 문서 해독력 꼴찌권...문맹률 최저국의 실질 문맹률이 75%?

한글 전용에 따른 역기능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우리말은 한글과 한자어가 함께 사용되어야 정상적 기능이 발휘되는 언어 구조다. 1990년대 후반부터 한글 전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한자어가 모두 한글로 표기되면서 문해력 저하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 불편함이 커지고 일상화되면서 국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다.

‘삼성전자 52주 신고가’라는 기사 제목을 예로 들어보자. 주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52주 만에 새롭게 기록한 최고 가격(新高價)’이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52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호하다. ‘주’가 주식의 주(株)인지, 주간을 뜻하는 주(週)인지 분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52개 주식을 신고한 가격’이라는 엉뚱한 해석이 나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단어를 발음대로 적는 풍조 역시 문장 이해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다. 휴대전화를 통해 ‘추카 추카', ’방가 방가’ 등의 문자 메시지를 자주 접하게 된다. 친밀감을 느낄 수 있어 좋기는 하나 혼란스럽기도하다. 무례하게 느껴져 기분을 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길똥'이라 문자를 보고 '길바닥 똥'으로 생각하는 등, 보낸 사람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 쓸데없는 오해와 불편이 생길 수 있다.

주어, 동사, 목적어 등 형식을 갖춘 글도 지나치게 생략하면 그릇되게 해석될 수 있다. 무분별한 외래어 남용과 부적절한 용어 번역도 이해력 악화의 단초가 되기도 한다. 특히 금융관련 약관이나 안내서는 난해하기 짝이 없다. 깨알 같은 글씨에 듣도 보도 못한 전문 용어로 도배되어 있다. 약자로 표기된 부분도 많다. 꼼꼼히 읽어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S&P가 조사한 한국의 기본 금융지식 보유율은 144개국 중 77위에 불과하다. 우간다보다도 낮다.

한글 전용, 발음대로 표기, 약자 사용, 외래어 남용, 부적절한 번역 등...문해력 해치는 주범

그러니 사고가 터질 수밖에. 해외 금리와 연계한 파생결합상품(DLS, DLF) 문제가 불거졌다. 금리가 만기까지 처음 약정한 설정기준 이상으로 유지될 경우 연 3∼4%의 수익률이 보장된다. 하지만 기준치 이하로 떨어질 경우 하락폭에 따라 대규모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다. 최악의 경우 원금 모두를 날릴 수 있다. 미중 무역 분쟁과 세계 경기 둔화 등의 여파로 미국과 유럽의 금리가 계속 내려가면서 이들 상품의 손실 위험이 커진 탓이다.

최근일 기준 예상손실액이 투자원금의 55.4%에 달한다는 소식이다. 판매 잔액이 8천224억원이다. 개인투자자 3천654명이 7천326억원어치를, 법인 188곳이 898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개인투자자로 보면 1인당 약 2억원 꼴이다. 금융당국은 이번에도 뒷북 대응이다. 고강도 검사와 은행들의 '불완전 판매' 조사를 발표했다. 은행들은 상품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했다는 입장이나, 피해 투자자들은 불완전 판매라는 주장으로 맞서고 있다.

파생상품. 용어부터 괴상하다. “외환, 채권, 주식, 농산물, 금속, 원유 등과 같은 여러 가지의 형태의 기초자산(underlying assets)으로부터 파생되는 금융상의 계약형태”라는 정의다. 제목보다 설명이 더 어렵다. 이를 제대로 이해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금융업 종사자조차 상당한 학습을 해야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 전문적 내용을 은행 창구 직원이 온전히 이해하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 직원의 말만 믿고 투자한 고객의 책임도 작지 않다.

무능한 은행이 무식한 직원을 통해 무지한 고객에게 무리하게 설계된 상품을 판매한 격이다. 이거야말로 4무(無) 파생결합상품이라 칭할 만하다. 금융은 소통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파생상품 사고는 문해력 실패에 기인하는 바 크다. 금융관련 약관과 안내서를 알기 쉽게, 외래 용어는 눈높이에 맞게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상품 위험관리와 금융소비자 교육도 한층 강화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사고는 언제든 재발하고 만다.

필자 소개

권의종(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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