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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임시정부 임시헌장에 담긴 ‘공화 정신’ 되살려야
100년전 임시정부 임시헌장에 담긴 ‘공화 정신’ 되살려야
  • 김명서
  • 승인 2019.02.2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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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민주’는 넘치고 ‘공화’는 쪼그라든 형국...현실은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상처투성이

[김명서 칼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선포한 임시헌장 1조다. 100년 전 그 해 3.1운동, 그리고 한 달 후 임시정부 수립의 역사적 의미가 단 12자, 이 한 줄에 함축돼 있다.

우선 국호인 ‘대한민국’. 1910년에 망한 대한제국에서 ‘대한’을 되찾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 ‘민국’을 세운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3.1 운동을 통해 온 누리에 울려 퍼진 ‘자주독립’을 기치로 ‘제국’에서 ‘민국’으로 나가는 첫 걸음을 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 체제인 ‘민주공화제’. 왕의 나라, 즉 군주제 국가를 배제하고 국민의 대표가 나랏일을 맡도록 하겠다는 뜻이다. 경술국치로 왕이 포기한 주권을 국민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 뜻과 의지가 숭고하고 강렬해서일까. 100년이 흐른 지금도 임시헌장을 선포하던 그 때 그 순간의 격정과 감동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데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민주공화제’, 특히 ‘공화제’의 의미와 채택 배경을 되짚다보면 느낌은 더욱 또렷해진다. 공화제는 군주제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어원은 라틴어 ‘레스 푸블리카(respublica)’로 ‘공공의 것’이라는 의미. 영어로는 republic, 이를 한자로 옮긴 게 共和다. 어원대로 해석하면 국가는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공의 것’이라는 뜻이다. 복수의 주권자, 국민의 대표들이 통치하는 정치체제를 일컫는다.

3· 1운동 100주년...‘공화제’ 바탕엔 누구나 평등하다는 개념 깔려

공화제는 일제병탄 이후 해외 독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청나라가 멸망한 1911년 신해혁명에다 1917년 러시아 혁명 등의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그 결정판이 1917년 상해에서 신규식, 박은식, 신채호, 조소앙 등 독립운동가들이 발표한 대동단결 선언. “구한국 최후의 하루는 신한국 최초의 하루다” “황제권이 소멸하는 때가 곧 민권이 발생하는 때다” “왕이 주권을 포기하였으니 주권을 상속한다” 등 결연한 어조로 왕권 종식과 공화제 도입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는 누구나 평등하다는 개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 동학농민혁명 정신, 갑오개혁에 따른 신분제 폐지, 그리고 민권과 평등을 강조하는 대동사상 등이 그 토대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공화제에 대한 공감대는 계속 확산돼 3.1운동 무렵에는 민족지도자와 독립운동가들 대부분이 ‘민주공화제’를 희망했고, 임시정부에서는 별다른 논란 없이 이를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평등 개념은 임시헌장 제3조 ‘대한민국의 인민은 남녀, 귀천 및 빈부의 계급이 없고 일체 평등임’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다 시대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탄생한 ‘공화제’이기에 그 뜻과 정신을 제대로 이어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프랑스가 대표적이듯이 상당수 국가에서 ‘피의 대결’ 과정을 거쳐 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제를 도입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공화제 국가, 즉 공화국은 오랜 기간 부정적인 의미로 통용됐다. ‘겨울 공화국’으로 불리던 ‘3공화국’, 그리고 ‘5공화국’이 대표적이다. ‘재벌공화국’ ‘검찰공화국’ ‘부동산공화국’에다 ‘성형공화국’ ‘치킨공화국’으로까지 진출하기도 했다. 과거 운동권에서 북한을 호칭할 때, 아니면 이러한 행태를 비꼴 때 ‘공화국’이 은어처럼 사용되기도 했다.

공화 정신과 민주적 가치는 우리 사회를 이끄는 두 개의 수레바퀴

공화는 공존하고 화합하는 정신이다. 어원이 그렇듯 공익을 우선하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공존하고 화합하는 공화의 정신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양극화는 심해졌고 지역, 계층, 세대, 그리고 요즘에는 남녀 간까지 그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내편 네편을 따지는 진영 논리가 횡행하는 가운데 ‘내로남불’식 비난과 대립이 일상화됐다.

요즘 들어서는 지역 개발을 둘러싼 대립이 심상치 않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내년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 성격의 사업이라는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다시 도진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대표적이다. 가덕도냐, 밀양이냐를 놓고 10년 남짓 이어진 다툼 끝에 2016년 겨우 봉합된 사안이 또다시 확산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가 전국 자치단체별 23개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예타)를 면제해주기로 한 조치도 ‘선심성’ 성격이 강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모두 공화 정신과는 거리가 먼 배타적 이기주의 사례들이다.

얼마 전 읽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인터뷰는 인상적이었다. 그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 개막과 관련해 “경제는 수단이지 목표가 아니다. 이제는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게 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사는 거. 자살 덜 하고, 서로 반목하지 않고, 직장 안정되고, 복지제도도 잘 돼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열거했다. ‘다 같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 것이 바로 공화의 정신이다.

100년 전 선조들은 하나로 뭉쳐 ‘민주공화제’를 선포했다. 그로부터 100년 후 우리 사회는 ‘민주’는 넘치는데 ‘공화’는 쪼그라든 모양새다. ‘공화’의 위축은 분열과 갈등만 확산시킬 개연성이 크다. 그렇다면 주변 정세와 연관지어 앞으로 10년, 그리고 100년을 내다볼 때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공존과 화합, 바로 공화의 정신을 되살리는 것이다.

공화 정신은 민주적 가치와 함께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두 개의 수레바퀴 중 하나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에 맞닥뜨리면 답변은 궁해진다. 그 만큼 현실은 손대기 어려울 정도로 척박하고 상처투성이 상태다. 안타깝기 그지없다.

<필자 소개>

김명서(clickmouth@hanmail.net)

-전 서울신문 정치부장, 사회부장, 논설위원

-전 서울신문 편집담당 상무

-전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심의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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