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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지방이전, 어이없는 발상이다
산업은행 지방이전, 어이없는 발상이다
  • 권의종
  • 승인 2019.02.2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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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책은행 특성 무시한 이전, 정책금융 기능 훼손...금융은 집중화 통해 경쟁력 생겨

[권의종의 경제프리즘] 국책은행 지방이전을 요구하는 정치권 움직임이 뜬금없다. 부산과 전북 지역 의원들이 균형발전을 명분으로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의 본점을 자기 지역으로 옮기려 한다. 경쟁적으로 입법 발의에 나서고 있다. 부산은 그동안 '제2금융중심지'로 추진되어 왔고, 전북은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이 '제3금융중심지' 조성을 약속했던 곳이다.

지역 민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이나 자치단체장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바 아니다. 그렇더라도 지역이기를 균형발전으로 포장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처사다. 1차 공공기관 지방이전 당시 서울 존치로 결론 난 사안을 다시 거론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다. 혹시라도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거라면 국민을 얕보는 행위다. 다른 지역들도 마음이 없어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국책은행의 역할과 특성을 무시한 지방이전은 정책금융 기능을 훼손시킬 소지가 다분하다. 금융은 집중화를 통해 경쟁력이 창출되는 속성이 있다. 선진 금융사들도 대도시에 모여 시너지를 내고 있다. 런던의 씨티 오브 런던과 뉴욕의 월스트리트가 대표적 사례다. 일본이나 홍콩만 하더라도 금융사들의 지리적 밀집도가 높다.

한국 금융은 도쿄,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금융권에 비해서도 낙후되었다는 평가다. 이런 마당에 제2, 제3의 금융중심지를 조성한답시고 제1금융중심지 소재 국책은행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 한다. 안 그래도 밀리는 경쟁력이 더 떨어질까 두렵다. 세 지역 모두의 하향 평준화가 뻔하다. 1등을 끌어내려 만드는 2등과 3등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자리바꿈’의 제로섬 게임도 아니고 되레 ‘자리뺏기’식 자해행위가 될 공산이 크다.

제2, 제3의 금융중심지 만든답시고 제1금융중심지 ‘기관 뺏기’... 안 그래도 밀리는 경쟁력 더 떨어뜨려

실제로 부산의 경우 제2금융중심지로 지정된 지 벌써 10년째지만 성과가 별무하다. 한국거래소, 기술보증기금, 예탁결제원, 주택금융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금융공기업이 대거 이전되었으나 금융중심지로 발돋음하지 못하고 있다. 추가로 한 두 기관 더 이전된다고 형편이 나아질 리 없다. 전북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정부 예산보다 더 큰돈을 움직이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2017년 전주로 이사했다. 핵심 투자인력이 이탈하고 운용수익률이 하락하는 등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더 부각되는 실정이다.

국책은행이 지방으로 옮겨간다고 금융중심지가 조성될 리 만무하다. 주된 고객이 수도권에 잔류하는 상황에서 산은과 수은의 본점 이전이 지역금융 활성화의 모멘텀이 되기 어렵다. 금융소비자의 불만과 불편만 가중될 따름이다. 금융 지원은 본점이 아닌 영업점을 통해 이루어진다. 설사 본점이 지방으로 옮겨가도 고객이 몰려있는 수도권 중심의 영업점 운영이 불가피하다. 그럴 경우 비용은 늘고 효율은 떨어진다.

산은과 수은의 역할과 기능은 여타 공기업들과 또 다르다. 4차 산업혁명, 남북경협, 수출지원 등 정부 정책을 뒷받침해야 한다. '신북방·신남방' 전략도 지원해야 한다. 해외투자 유치, 국내 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한 자금도 공급해야 한다. 그러려면 국내 기업은 물론 외국 정부나 해외투자자와 빈번히 접촉할 위치에 있는 게 맞다. 그런 점에서 서울만한 곳이 없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목적이라면 지역의 비교우위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기관을 유치하는 게 국책은행 이전보다 나을 수 있다. 가령 부산은 해양, 물류 등의 지원기관을. 전북은 농수산식품 분야나 생명과학에 도움이 될 기관을 데려오는 게 바람직하다. 지방 기업에 대한 금융 총량을 늘리고 지원 요건을 완화, 금융의 가용성과 접근성을 제고시키는 것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국책은행 이전보다 지역 산업에 도움될 기관 유치가 더 나은 해법

제3금융중심지 조성이라는 대선공약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해서도 안 된다. 전북 지역의 낙후된 경제 여건을 개선하고 새만금개발 등 대형 국책사업을 위한 금융 기반을 확고히 하겠다는 정책 의지로 받아들여야 한다. 오히려 서울을 국제 수준의 금융메카로 키우고 이와 연계시켜 지역의 금융기반을 강화하는 방안이 국가균형발전을 앞당기는 길일 수 있다. 같이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정부 차원의 거시 정책을 시행하는 국책기관을 지역 안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발상이다. 외국 사례까지 거론하는 게 민망하나, 독일 부흥은행(KFW)이나 일본 국제협력은행(JBIC) 같은 국책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해 달라는 요구가 이들 나라에서 있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이런 와중에도 그나마 정부가 중심을 잡는 모습이 의연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국책은행 지방이전에 대해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금융 행정을 책임지는 입장에서 지역의 요구만 따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산은·수은의 기능이 어떤지, 이런 기능을 원활히 수행하는 데 뭐가 유리한지 중시해서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이미 많은 금융 공공기관이 지방에 있는데 내려가 있는 기관들이 좀 더 안착되고 활성화되도록 노력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이어가야 한다. 다 아는 얘기지만 금융은 이론이 아닌 현실이다. 정치 논리가 금융을 지배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한번 무너지면 다시 회복되기 어려운 게 관치금융의 폐해다.

필자 소개
권의종
(iamej5196@naver.com)
- 논설실장 겸 부설 금융소비자연구원장
- 호원대학교 무역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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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민 2019-02-25 17:12:29
관치금융의 폐해!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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